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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쨋날 저녁,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갑니다. 


참고로 이 날 예약한 레스토랑, 보뉴(Bon.nu)는 도쿄 메트로 또는 토에이선으로 가기 어렵습니다. 저처럼 72시간 메트로 티켓을 사신 분은 신주쿠에 내려서, JR로 산구바시(参宮橋)역으로 가야합니다. 예. 초속 5cm에 나오는 그 산구바시 맞습니다만 저는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장소를 찾아다니는 취미는 없어서 별 감흥은 없었네요. 


대략 7시 30분 쯤이었나요? 상구바시역은 도쿄 시내에 있는 역 같지 않아서, 잘 못 찾아온게 아닌가 하고 당황했습니다. 신주쿠에서 고작 두 역, 요요기 공원 주변에 있으니 도쿄 도심에서 그리 먼것도 아닌데 매머드급 상업공간인 신주쿠에서 도쿄 외곽 쯤 되는 지역으로 순간이동한 느낌이었습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뭔가 어두컴컴한 골목길과 마주하게 됩니다. 다행히 통행량은 꽤 많아서 처음 가는 길이지만 무섭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가는 길 군데군데 비싸지 않고, 메뉴가 다채로운 음식점도 꽤 있는 동네같더라구요. 게스트 하우스도 있는 듯 한데 나중에 이 동네에 머물면 어떨까? 이런 공상도 좀 하면서 걸어갔습니다. 


가로등이 재미있어서 찍어보았습니다. 일본은 동네 상가들끼리 상점회를 조직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점회에서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도로 가로등을 보기 좋게 바꾼다던지 하는 일도 하나봅니다. 물론 나라에서 예산도 좀 내려오겠죠. 


역에서 10분 쯤 걷자 도착한 보뉴(Bon.nu) 입니다. 약간 가격이 되어 보이는 맨션 아파트 1층에 위치해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이런 곳에 레스토랑이?"라고 갸우뚱거리게 되는 장소입니다. 정말 레스토랑이 있을 거 같지 않아서 구글맵을 보며 계속 확인하면서 걸어왔거든요.


프랑스의 Bon (좋다)과 nu (누드)의 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좋은 알몸'인데... 아니, 서버들이 누드로 서빙하고 그런 식당은 아닙니다. 꾸밈없는 그대로, 소재와 맛의 본질을 추구하는 레스토랑이라는 의미라고 해요. 또 '모유(母乳)의 의미도 있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최초의 미각을 느끼는 것은 '모유'니까 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어로 모유의 발음이 '보뉴'이기도 하거든요. (어쩐지 심오하다てすね.)


식당 로고도 모유의 이미지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수유하는 듯이 어머니가 아기를 포옹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 레스토랑을 선택한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타베로그 평점입니다.

기라성같은 도쿄 스위츠 전문점을 제쳐두고, 1위에 랭크된 샵이, 레스토랑이 바로 보뉴였습니다. 이미지 상의 대표사진은 디저트가 아니라 소고기 육회에 트뤼플 버섯을 뿌린거여서 뭔가 황당하긴 한데, 어쨌든 디저트를 중시하는 저로서는 안가볼 수가 없었죠. 


그리고 또 하나, 이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 쿠루스 케이 - 미식왕이라는 호칭의 소유자 - 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来栖けい'로 조회해 보면, 식당 주인분 위키를 볼 수 있는데요, 몇가지 눈에 띄는 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섯살 때 레스토랑에서 먹은 디저트에 감동,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레스토랑 방문마다 음식관련해서 메모했는데 20세 때 방문한 숫자가 6천개에 이르렀다. 현재는 1만개 수준이다. 

. 163cm, 47kg의 가녀린 체격(실물로 봤는데 진짜였다)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계속 먹을 때는 하루에 체중 변동이 10kg에 달하기도 한다. 

. 2009년 레스토랑 에큐레(Ecurer)를 오픈, 12년 폐점

. 2015년 다시 준비해서 보뉴 (Bon.nu) 오픈

. 식당을 차린 이유. 90% 정도 맛있는 것을 더 이상 맛있다고 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100% 맛있다고 생각한 맛으로 직접 해보기로 했다. 


과연 미식왕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어떤 것일까요? 몹시 궁금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 단촐한 식당 분위기입니다. 화려하지 않아요. 그리고 왜 예약이 어려운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테이블이 3개 뿐이에요. 좌석이 적으니 예약이 어렵죠. 하루 저녁에 3개 그룹이 고작인데 예약이 쉬우면 이 집은 망하는 겁니다. 물론 소개아니면 불가능하다는 마츠가와나 사이토 수준으로 어렵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호텔 컨시어지를 통해서 예약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들어가면 오른 쪽에 케이크를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가 보이는데, 보시다시피 텅 비어 있습니다. 11시부터 18시까지 제과점으로도 영업하는데, 최소한 전날까지 예약하지 않으면 구입이 어렵다고 합니다. 워낙 소량만 만들어내는 가게여서요. 또 레스토랑의 손님으로 와도 원하는 디저트는 가급적 예약할 때 함께 주문해야 만들어준다고 하며 당일 주문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저는 이 사실을 갔다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ㅠㅠ 미리미리 주문했어야 하는건데.


인테리어가 세련된 곳은 아닙니다. 물론 깔끔하긴 해요. 평소에 바 시트는 따로 예약은 잘 안받고 손님의 짐을 놔두거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리에 앉으면 메뉴를 가져다 주는데, 해독이 불가능합니다. 일본어를 알아도 마찬가지에요. 가령 샐러드가 '자연', 태양, 공기, 흙, 풀 이렇게 되어 있어요. 어떤 게 나올지는 나와봐야 압니다. 포기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즐겁게 먹는 수밖에 없습니다. 


와인 리스트는 다양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주인이 와인 수집가인지 메뉴판에는 비싼 브루고뉴 와인(비싸서 일반인은 도저히 주문할 수 없는)이 상당수 있습니다. 가장 비싼 것은 앙리 자이에의 크로 파랑투 (Henri Jayer Cros Parantoux)로 400만엔 정도에 판매하는 모양이에요. 그 외에 글라스로도 주문하는 데, 철저하게 매니저(=주인)가 골라서 가져다 줍니다. 이날의 와인은 부루고뉴 미쉘 고누(Michel Gaunoux)의 Beaune이었는데 동행분의 말에 따르면 그다지 끌리는 맛은 아니었던 듯 해요. 


일반적으로 따라주는 와인의 양입니다. 그렇게 양이 많지가 않아요.  


차라리 제가 주문한 '차'가 훨씬 좋았습니다. 와인을 병으로 시키는 게 아닌 다음에야 매니저가 철저히 자기가 생각하기에 요리와 어울린다고 보는 걸 가져다주는데 와인을 그렇게 많이 소비하는 가게는 아니어서, 차로 주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와인과 마찬가지로 넉넉히 따라주는 건 아니어서, 자주 시켜야하니 음료 값이 꽤나 나옵니다. 


첫번째 어뮤즈 부쉬 정도 되려나요? 투박한 접시위에 육포를 가져다주네요. 한 사람이 하나씩 입니다. 일본어를 몰라서 매니저(=쿠루스 케이)분이 뭔가 설명을 해주시려 했지만,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샴페인이라는 단어는 알아들었는데 샴페인에 담궈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일까요? 


예전에 죽력고에 절인 홍두깨살 육포를 먹고, '육포는 별로 안 좋아하는 데 꽤 맛있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요, 이 육포도 입에서 씹히는 촉감, 먹고 나서 감도는 소고기 향이 매우 훌륭합니다. 간이 강하지 않습니다. 간장 베이스 소스가 아니고 술에만 담궈뒀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홍콩 비첸향처럼 먹기 쉽도록 단맛이 나는 소스를 바른 것도 아닙니다. 부위도 어딘지 모르겠네요. 일본어를 모르니 물어보기가 어렵더라구요 (설명을 했는데 제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먹는 재미가 있고, 질긴 부위도 없어서 술술 넘어가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습니다. '이래선 안되. 비싼 곳이니 좀 더 음미하며 먹어야지.'라고 스스로 자책할 정도로요. 


첫번째 메뉴, 자연 (태양, 공기, 흙, 풀) 입니다. 제목은 거창하지만 나온 것은 그냥 샐러드네요.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 지방의 오니시 허브 농장(大西ハーブ農園)에서 직송되는 야채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에페르베상스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다양한 허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명 레스토랑에 많이 납품하고 있는 농원이라고 하는데요, 야채의 생명력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식으로 키운다고 합니다.


. 겨울에도 온실 내 난방은 하지 않고 햇빛만으로 키움

. 무농약 재배는 기본

. 흙에는 화산재가 섞여 있음

. 비료는 줌. 단 허브별로 특성에 맞게 자연비료를 사용


바닥에는 차가운 느낌의 소스가 깔려있는데 토마토가 주재료인 새콤한 맛의 가스파쵸 소스라고 합니다. 다만 겨울이라 그런지 야채의 맛과 향이 그렇게 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빵이 나옵니다. 사진은 없지만 버터와 함께 나옵니다.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밀가루와 물, 소금만으로 만든 빵이라고 합니다. 버터를 발라먹으면 특별한 맛이 난다기보다 쉬엄쉬엄 잘 넘어갑니다. 그렇게 감탄스럽거나 하는 수준의 빵은 아닙니다.  


가게에서 직접 빵을 굽지는 않고 도쿄 북쪽 사이타마 현의 풍향계( パン工房 風見鶏)라는 가게에서 가져오는 빵이라고 합니다. 風見鶏는 바람의 바람을 알려주는 풍향계 중 수탉 모양의 풍향계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드디어 첫번째 코스가 나옵니다. 이 집의 시그니쳐 코스 중 하나라는 '체온(体温)'입니다. 먼저 향이 진한 트뤼플 버섯을 가져와서 보여줍니다. 여러 개 큰 덩이가 모여있으니 향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체온(体温)은 이 집의 자랑이라는 미시마 소(見島牛)의 육회입니다. 매니저분이 다리의 허벅지 부분을 가리키며 이 부분 고기라고 제스처로 알려주셨는데, 그 부위에서 육회로 만들기 딱 좋은 부위는 바로 '아롱사태'죠. 


사진으로 보면 아시겠지만 살코기 색감도 좋지만, 은은히 숨어있는 지방기도 멋집니다. A5 쇠고기처럼 지방변태 쇠고기(제가 부르는 용어입니다.)는 아니지만, 먹기 전에 좀 걱정되긴 하더라구요. '소 지방인데 부드럽게 입속에서 녹아줄까?'


트뤼플 버섯을 듬뿍 뿌려줍니다. 


한입 먹으면 걱정과는 달리 입안에서 고기맛, 육향이 폭발하는 느낌입니다. 부드럽게 녹는 느낌은 아니지만 (좀 씹어야 합니다.) 이에 지방이 끼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메뉴 이름이 '체온'인 이유는 소가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온도(대략 섭씨 38도)로 서빙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트뤼플을 뿌렸기 때문인지, 미시마 소가 가진 특징인지, 다른 소로도 이런 맛을 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멋진 고기의 향연이었습니다. 빵이나 샐러드에서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 레스토랑은 뭐지? 소문만 요란한건가?' 라는 느낌이었는데 이 한접시에서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고기의 맛"을 느끼고 감탄해버렸네요. 


다음 코스, 추출(抽出). 먼저 살아서 꿈틀거리는 랍스터를 보여줍니다. 메뉴에는 オマール海老라고 써 있는데, 랍스터의 프랑스어가 오마르(Homard)여서 저렇게 부른다고 하네요. '저걸 어떻게 할거지?'라고 궁금했는데...


랍스터를 가지고 들어가서, 대략 10분 정도 걸린 후, 이런 수프를 가져다 줍니다.

"5분 전까지 살아있던 랍스터입니다."

라는 매니저의 멘트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비스크 스프의 맛은 진하지 않았고, 갑각류 내장, 살 특유의 감칠맛이 느껴지는 스프였습니다. 크림이나 다른 재료를 일체 넣지 않고, 물, 소금, 바닷가재만 써서 스프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커피를 추출하는 듯한 방법을 써서 만든다고 메뉴 이름이 '추출'이라고 합니다. 


바닷가재를 통째로 먹는 듯한 감칠맛이 느껴지지만, 크림과 결합한 비스크 스프가 가져다 주는 진하고 따뜻한 스프에 익숙한 저로서는 약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네요. 먹을 때는 무척 맛있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한 달 쯤 지나고나니 바로 앞에 먹었던 체온(육회)에서 느꼈던 강한 충격이 없었기에 기억이 희미해져 버렸네요. 


스프에 찍어먹으라고 빵을 더 가져다 주시네요. 싹싹 닦아서 먹었습니다. 


다음 주제는 Simple. 버섯이라고 되어 있는 메뉴입니다. 심플하게 버섯이라도 구워주는 줄 알았더니 리조또가 나오는군요. 


한입 먹고 깜짝 놀랐습니다. 버섯맛으로 가득찬 리조또입니다. 잎새버섯, 새송이버섯, 느티만가닥버섯(해송이 버섯) 3 종류의 버섯으로 (동물성 재료나 버터없이) 육수를 만들어 리조또를 푹 적셔서 내오는데 도대체 얼마나 버섯을 끓여야 이정도 진하기가 될지 짐작도 가지 않네요. 쌀이 잠겨있는 버섯국물 (올리브 오일도 좀 들어간 듯)을 좀 보세요. 적어도 버섯의 감칠맛을 좋아하는 동양인에게는 정말 잘 먹힐 것 같은 맛입니다. 


두 번 째 'Simple' 주제의 메뉴. 토마토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파스타가 나옵니다. 근데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내서 찍은터라, 이날까지는 카메라 세팅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찍어서 밝기, 촛점도 모두 엉망이었습니다.  


양은 많지 않습니다. 한 접시당 하나의 토마토를 남김없이 사용했다고 하네요. 산 마르자노 토마토가 아니라 일본에서 수확한 토마토라고 합니다. 간이 강하지 않아서 (전반적으로 간은 약했습니다.) 혀를 강타하는 맛이 아닌데도, 토마토로 이런 맛을 낼 수 있구나 하며 감탄하며 먹었습니다. 왜 심플이라는 주제로 메뉴를 만들었는지 알겠네요. 버섯-리조또, 토마토-파스타 모두 양쪽 재료가 최대한 돋보이게 만드는 요리였습니다. 


참 신기했어요. 저 토마토 조각만 집어먹으면 '약간 덜익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스로서 면과 함께 먹으면 상당히 맛있었거든요. 토마토로 이런 조리가 가능하다니 이 집의 요리는 참 독특하고 재미있습니다. 


이제 메인이 나옵니다. 


제가 선택한 코스에서는 두 종류의 스테이크가 나옵니다. 서로 다른 희긔한 소의 고기를 비교해서 먹는 컨셉인데요, 첫번 째는 일본 천연기념물이라는 미시마소(見島牛)입니다. 이 레스토랑은, 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데요, 그 중 하나가 '우리는 미시마 소를 사용하고 있다.'라는 점입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쿠루스 케이상이 우리를 위해 해준 짧은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 고노 비프가 고베, 마츠자카 레베루 데수까? (고베소나 마츠자카 소 처럼 유명한 소고기인가요?라는 의미로 물음)

케이: NO! NO!

        (손을 수평으로 허리 부근에 위치시킨다) KOBE Beef! (가 이정도라면... 이라는 의미)

        (손을 목 부근까지 높여 위치시킨다) MISHIMA! (고베소는 저 아래고 미시마소는 이 정도 급이야!)

        (손 위치를 바꾸며 한 번 더 반복한다) KOBE! MISHIMA!

        KOBE, MIX! (고베는 외국 종과 혼종이고)

        MISHIMA, Pure! Pure!(미시마소는 토종, 순수한 혈통의 소다!)


서로 좀 어눌한 언어의 대화였지만, 이해했습니다. 상당히 독특한 말투라 저와 동행분은 이후 일본 여행에서 계속 이 말투를 흉내내게 되었습니다. 


미시마 소는 섬 지방에서 외따로 떨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고기를 만들기 위해 외국소와 교배를 시키지 않고 일본 순종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있고, 숫소 중에서 번식용으로 뽑힌 우수한 종자를 제외한 몇 마리만 거세되어 식용으로 쓰인다고 하네요. 한달에 1마리 정도만 시장에 도축되어 나와서 '환상의 소'라고 불린다는 데, 자료를 뒤져보니 2013년 동경농업대학 보고서에 현재 대략 100마리 정도가 사육되고 있다고 되어 있더군요. 한달에 1마리 정도가 식용으로 나온다는 말이 허세가 아니군요. (드물게 암소가 나올 때도 있는데 구하기는 상당히 힘들다고 합니다.)


한 입 먹어봤는데, 이거 복불복이군요. 저는 좀 질겨서 먹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동행분은 그야말로 감탄하고 먹고 있었습니다. 한 입 뺏어먹어보니... 와 그야말로 치사할 정도로 육즙이 폭발하면서 황홀하게 넘어가더군요. 


같은 고기인데 이렇게 까지 차이가 나면 좀 믿고 주문하기가 어렵긴 하겠네요. 다행히 제 고기도 반은 질기고, 나머지 반은 괜찮았는데 동행이 먹은 부위가 좋은 부위였는지 그 맛은 따라가지 못하더군요. 언어를 몰라서 컴플레인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동행분이 먹은 스테이크 기준으로는, 레스토랑에서 먹어본 스테이크 가운데 최고였습니다. 


어느 부위일까 메뉴를 보니, 어깨로스(가타로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로스는 등심을 의미하는 데, 고급 부위라는 인식이 있으니 안 좋은 부위에도 로스라는 이름을 붙여서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깨로스는 한국어로 정확히 번역이 되지 않는데요, 양지, 부채살 쪽의 넓은 범위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나온 고기는 양지정도 되는 부위 같습니다.  


사이드로 나온 작은 무우 비스므리 한 것. 호스래디쉬를 처음 봤습니다. 거기에 와사비를 좀 추가했네요.


두번 째 스테이크. 사이드도 없이 덩그라니 고기만 한 덩이 나왔습니다. 이것도 희긔한 소라고 하는데요, 이부사나(いぶさな) 소의 카메노코(カメノコ) 부위랍니다. 카메노코는 거북이 새끼라는 뜻인데, 어디 부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면 엉덩이와 사태 쪽 부위긴 한데, 한국과는 정형 방법이 다르니 그냥 그 쪽 어디 부위라고 짐작할 수 밖에 없네요. 지방기 보다는 살코기와 육향으로 유명한 부위라고 합니다.


이부사나  소, 정식 상품명은 いぶさな 竹の谷蔓牛입니다,  蔓牛는 덩굴소라는 의미인데요 에도시절 일본 서쪽 지방에서 좋은 품종의 소를 부르던 이름이라고 합니다. 당시 일본은 불교국가로 소고기를 잘 먹지 않았으니 아마도 농사짓기 적합한 힘 좋고, 덩치가 큰 소라는 의미겠지요. 대나무 계곡(竹の谷)은 이 소가 자라는 지역의 옛날 별명인 듯 해요. 지금 현대 지명은 오카야마 현 니미 지방이구요. 


이 소가 별도 품종으로 육성된 것은 1830년 경 부터라고 하는 데, 미시마 소 처럼 유전적으로 별도 품종으로 인정 받은 건 아닌 듯 합니다. 다만 키우는 농가가 하나뿐이라 희긔한 것은 맞는 것 같네요. 


비싼 돈을 냈는데, 등심/안심은 고사하고 엉덩이쪽 살이라니. 좀 아쉽긴 합니다. 6시간 동안 저온조리를 통해서 최대로 맛을 활성화시켜서 내놓는다고 해요. 마지막에는 그릴에서 굽는 방법을 썻겠죠.


이 소도 맛있습니다. 자르는 데 육즙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서 놀랐네요. 미시마 소의 좋은 부위(=제 동행이 먹은 부위)처럼 감칠맛과 육즙이 폭발하는 듯한 맛은 아닙니다만, 오래 조리를 해서인지 부드러웠고 고기 자체가 충분히 육즙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두 가지 소가 모두 전혀 개성이 달랐고, 조리 법도 달라서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네요. 다만 다음 번에는 암소의 등심이나 샤토브리앙을 먹고 싶습니다. 엉덩이나 양지쪽이 이런 맛인데 제가 좋아하는 부위는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하네요. (그런데 아주 비쌀 거 같습니다. 아마 못먹을거야)


스테이크 둘이 나온 다음, 바로 디저트가 나옵니다. 디저트 이름은 보뉴. 소주제는 '밀크'입니다. 보뉴는 레스토랑 이름이고 아마 '모유'라는 뜻으로 내 놓은 걸까요? 물론 실제 모유일리는 없고 우유, 설탕만으로 만든 생크림과 같은 느낌의 디저트입니다.


스테이크에서 상당히 놀라서, 이제 디저트는 좀 한숨 돌리면서 먹자고 했는데, 이 디저트의 부드러운 질감과 순수한 맛에는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다만 양이 너무 적어서 한입에 꿀꺽 했기 때문에 (좀 더 줄거 같지도 않고) 내가 도대체 뭘 먹은거지? 라고 당황해서 자세한 소감을 적기가 힘드네요.


두번 째 디저트, 내츄럴, 神果卵. 우유, 계란, 설탕만으로 만든 푸딩입니다. 미국에서 정말 대단한 우유로 만든 바닐라빈 푸딩도 먹어본 터라, 어지간한 푸딩으로는 저를 놀라게 하기 힘들죠. 물론 맛은 좋았지만 '음... 이 정도군.' 하면서 놀라움 없이 먹은 메뉴입니다.  


마지막 디저트로 쁘띠갸또 대신 초콜렛 한알 씩 주더군요. 끝까지 양은 좀 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초콜렛도 대박이었습니다. 도쿄에서 먹은 감동적인 초콜렛 3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거였습니다.


1위. 피에르 마르콜리니의 끝판왕 초콜렛 (Palet's Fins)

2위. 바르셀로나 Bubo 미츠코시 한정 출점 점포에서 먹은 한정 초콜렛 케이크

3위. 보누의 물 초콜렛 


영어를 잘 못하는 쿠루스 케이상의 설명을 빌자면, 이 초콜렛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No Cream, 

Only Chocolate and Water 

Pure! Pure!"


역시 퓨어를 무지 강조하시는 데, 그래봤자 생초콜렛이지! 라고 생각했는데 '안개'를 먹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먹는 순간 입안에서 초콜렛이 들어있다는 흔적은 느끼는데 사라져버립니다. 안개를 먹은 듯한 느낌이에요. 입에서 진한 초콜렛 향을 남기고 녹아버리는 데 지금까지 먹은 생 초콜레이트 가운데 최고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나슈로 만들 때 크림을 넣지 않고, 물만으로 만드는 레시피는 몇 개 본 적이 있는데 먹어본 것은 처음입니다. 물론 만들기 위해서는 초콜렛 자체도 맛이 진해야겠지요. 100% 초콜렛을 썼다면 물만을 넣고 했을 때 쓴맛만 났을 텐데, 몇 개 리뷰를 참조해보니 이 집에서 사용하는 초콜렛은 이탈리아 Domori사의 카카오 72% 블록이라고 하는군요. 적당한 농도에, 관능적으로 녹아내리는 맛. 정말 손님을 놀라게하는 마무리 디저트 일품이었습니다.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쉐프와 매니저 쿠르스 케이상 모두 문 앞에 나와 우리가 골목으로 사라질 때 까지 배웅해 줍니다. 멀찍이 가다가, 둘 다 가게 안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후 다시 가게 앞으로 돌아갔습니다. 도쿄도청으로 가서 야경을 볼 생각이었는데 방향을 잘못들어서 반대쪽으로 가야했는데 계속 지켜보시니 돌아갈 수가 있어야죠. 쑥쓰러워서요. 


'보뉴'는 일본어를 모르는 답답함이 무언지 알려준 레스토랑입니다. 쉐프도 매니저도 손님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싶다. 이 요리를 먹는 흥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운영하는 곳이구요. 이런 태도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저는 일본어를 몰라 정보를 확인할 수 없어서 너무 불편했습니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맘이 들 정도였어요. 구글통역으로 한두 마디 애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아주 도움이 되진 않았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 옆에 손님에게는 파스타: 토마토를 설명하면서 이 토마토가 어떤 토마토인지 10분쯤 설명하시다가 가더니.... 잠시 있다 돌아와서 또 10분 쯤 추가 설명을 하더라구요. 우리에는 '토마토', '노 크림', '퓨어' 세 마디가 고작이었는데요. 20분을 설명할 정도로 대단한 토마토가 무언지 알고 싶은데 일본어를 모르니 뭐 물어볼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참 아쉬웠습니다.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레스토랑입니다. 폐가 되겠지만 이번에는 디저트를 한 열 개 쯤 미리 주문해두고 먹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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