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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나하치에서 텐동으로 점심을 먹고, 조금 더 걸어서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에 도착했습니다. 


백화점 사진을 제대로 찍지 않았네요. 오른 쪽, OIOI 매장은 일본 도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백화점 체인으로 고급스럽기 보다는 저렴한 매장을 모아둔 곳이라고 합니다. 사진에서 왼쪽, 좀 우중충한 건물이 이세탄 백화점입니다. 


이세탄 백화점은 1886년 창업한,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백화점의 하나입니다. 신주쿠 본점에 일년 방문하는 고객만 3천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들어가보면, 긴자의 화려한 백화점에 비해 좀 실망스러운 매장 구성입니다. 왜 인기가 있는 걸까요?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지요.


신주쿠 이세탄에 온 이유는 오로지 지하 매장의 디저트 샵을 돌아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e), 장 폴 에반(Jean Paul Hevin), 세바스티앙 브이에(Sebastien Bouillet), 캐러멜 카페 앙리루루 (Henri Le Roux), 수공예 초콜렛 벨 아메르(Bel Amer), 사다하루 아오키, 그리고 격주로 일본 각지의 인기 디저트 샵을 소개하는 Ma Patisserie 코너 등 긴자의 유명 백화점에 뒤지지 않은 스위츠 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흥미가 가는 것은 사다하루 아오키. 이름은 알고 있지만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파리에서 성공한 일본인 파티셰의 케이크였죠. 


마카롱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홀 사이즈 케이크와 피스들. 맛있어 보이네요. 


사다하루 아오키는 말차와 팥을 재료로 쓴 케이크로 프랑스에서 인정받은 최초의 파티셰가 아닐까 합니다. 대표 케이크로 꼽히는 뱀부(대나무)나, 위 사진에서 보이는 말차 - 팥(あずき) 파운드 케이크 같은 제품들처럼 macha를 재료로 쓴 케이크를 여럿 선보였죠. 


고민끝에 케이크 3종과 마카롱 몇개만 구입했습니다. 위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거든요. 점원에게 먹을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니, 옥상에 무료로 개방하고, 좌석도 있다고 해서 음료를 사서 옥상으로 올라가기로 합니다.


초콜렛 제품을 구매해야 할지 말지 정말 고민했습니다. 사실 사다하루 아오키의 경력을 보면 케이크 보다는 쇼콜라티에로 파리에서 더 알아주거든요. (뭘로 유명하냐고 하면, 그냥 7연속 Les Incontournables ㄷ ㄷ ㄷ 하면서 감탄하는 체 하면 됩니다.) 특히나 색조화장품을 연상케하는 그의 초콜렛 세트를 꼭 사먹고 싶었지만, 위장에 너무 무리를 줄 것 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습니다. 


그래도 올라가기 전에 좀 더 둘러봐야지요. 피에르 에르메 샵. 감동적이었던 이스파한 하나만 사서 맛볼까하다 역시 이것도 포기했습니다. 


장 폴 에뱅의 샵은 직접 만들어주는 카페 형태로 들어와 있습니다. 파리에서 그의 진한 초콜렛을 먹은 적이 있기 때문에 관심이 가긴 했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위장의 한계로 사다하루 아오키에게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장 폴 에벵의 초콜렛 카페. 들어가는 입구에 매니저가 있다 고객이 들어가려고 하면 문을 열어주더군요. 백화점 매장에서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저런 방식을 좋아하는 분도 있겠죠.


일본 각지의 디저트샵을 격주로 소개하는 마 파티셰리(Ma Patisserie)코너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초대된 샵은 일본 최고의 디저트 격전지라는 지유가오카의 오리진 카카오(Origines Cacao, オリジンーヌカカオ) 였습니다. 빈투바까지는 아니고, 다양한 카카오를 사용한 초콜렛 제품 위주의 달콤이를 파는 샵 입니다. 


대표 쇼콜라티에 가와구치씨는 일본에서도 몇 없는 프랑스 초콜렛 사조직 릴레 데세르(Relais Desserts)의 회원이라고 합니다. 국가 공인 자격증 협회는 아닌데, 잘 나가는 쇼콜라티에 상당수가 여기 가입되어 있어 실력은 보장받는 그런 모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존 회원 2인이상 추천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는데, 피에르 에르메, 장 폴 에방, 사다하루 아오키, 요시아키 가네코 등 쟁쟁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대표 케이크 하나는 결혼반지처럼 이렇게 전시하고 있더군요. 실제로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이세탄 백화점은 진지하겠지만 전 좀 웃음이 나더군요. 헤이즐넛 바나나 케이크 였던가 그런 이름의 케이크 였습니다. 피에르 에르메에서도 구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대하던  파티셰리(Ma Patisserie) 코너인데... 망설이다 초콜렛 케이크를 한 조각 구입해서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구입한 쇼콜라 케이크. 이름은 적어두지 않아서 잊어버렸습니다. 쇼콜라 케이크 자체로는 상당히 괜찮았지만, 바로 이전에 먹었던 사다하루 아오키의 케이크가 주는 충격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맛이었습니다. 나쁘지 않았지만 딱 예상했던 정도의 진하기와 맛이었네요.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 오래된 건물분위기를 내려는지 창문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더군요.


대부분 일본 백화점은 옥상에 야외 공원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긴자 식스도 올라가 보지 않았지만 13층에 야외 공원을 운영하고 있지요. 또 긴자 미츠코시 백화점은 옥상은 없지만 꼭대기 층(9층)에 자유롭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많습니다. 신주쿠 이세탄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겨울이라 약간 쌀쌀한 것만 감수하면 되니 지하 매장에서 뜨거운 커피라도 가지고 올라오면 케이크 먹기 딱 좋은 공간이네요. 


평일날, 아이들을 데리고 백화점 외출나온 어머니들이 좀 있는 건 한국, 일본 공통입니다. 


공연장 비스므리한 것도 있습니다.


옥상 한쪽 구석에 신사 비슷한게 있어서 뭔가 봤더니,


백화점 창립자의 동상이 딱 있더군요.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그냥 쓱~ 지나쳐갑니다. 


약간 쌀쌀하지만 그늘에 자리를 잡고 케이크를 꺼냅니다.


마카롱 박스. 이건 여기서 안먹고 나중에 걸어다니다 피곤하면 먹기로 했습니다. 


약간 촌시려운 케이크 박스입니다. 솔직히 세련미나 운반의 편리함은 필립 콩티치니에 비해 좀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 초라한 케이크 박스도 어쩌면 이 화려한 케이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박스를 벗기면 나타나는 과장된 원색. 사다하루 아오키의 특징인 마치 색조 화장품을 연상케하는 색감입니다. 원색을 잘 만드는 파티셰로는 바르셀로나 부보(Bubo)의 Carles Mampel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사다하루 아오키가 만드는 색감도 그에 뒤지지 않습니다. 


세 케이크 모두 오페라 케이크를 기본으로 한 변형입니다. 사다하루 아오키의 대표적인 케이크 형태로, 재료를 층층이 쌓아올려 입안에서 화려하고, 다양한 맛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딸기를 위에 올린 사야(Saya), 사다하루 아오키 쉐프의 딸이 1살이 되었을 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케이크입니다. Saya가 아마 딸의 이름인 듯 해요. 딸을 위해서 만들었다는데, 아오키 쉐프에게 딸은 = 딸기를 좋아하는 아이인 걸까요?


두번째는 뱀부(Bamboo, バンブー). 푸른 대나무가 땅에서 길게 뻗은 모습을 그려 넣었습니다. 이름은 대나무지만 말차 파우더로 산뜻한 녹색을 냈습니다. 참고로 케이크 위에 글리사주 녹차 크림으로 만든 대나무 모양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사진을 보니 두 줄 대나무, 세 줄 대나무도 있고 진하기도 만드는 사람 마음인가 봅니다. 


마지막은 '기간 한정품'으로 나온 케이크. 센슈얼(Sensuel, センシュエル) 입니다. 사다하루 아오키의 일본 진출 10주년 기념 케이크 3종 중 하나라고 하네요. 아시다시피, 사다하루 아오키는 파리에서 동양인으로써 자기 이름을 내건 디저트 샵으로 성공한 거의 유일한 파티셰입니다. 파리에서 먼저 성공하고, 그 이후에 도쿄 마루노우치에 2006년 일본 첫 점포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10주년 한정이라고 했는데, 아주 인기가 좋았는지 2015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정판매 중인 케이크입니다. 


SAYA 사야부터 맛을 볼까요? 베이스는 아몬드와 헤이즐넛 기반으로 만든 사블레(Biscuit Joconde)가 바닥에 깔려있습니다. 딱딱하지 않습니다. 아몬드와 헤이즐넛 품질이 좋고, 위의 크림 층과 함께 먹기가 편합니다. 

맨 위에 딸기 크림층과 그 사이 딸기 퓨레, 그리고 비스킷과 화이트 초콜렛 크림의 밸런스가 절묘합니다. 먹는 순간 '맛있다.'라는 소리가 나와버리네요. 정말 정교하게 설계된 밸런스여서 여기에 딸기 크림을 조금 더 넣거나 화이트 초콜렛 크림이 조금만 얇으면 바로 맛이 틀려질 거야! 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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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이라는 뱀부(대나무)입니다. 실제로 쓰인 재료는 쇼콜라와 마차입니다. 사실 이것 보다는 크림과 팥, 마차의 조화를 이룬 Forêt verte Kyoto라는 녀석을 더 먹고 싶었는데 다 팔렸는지 찾아볼 수 없었네요. 


베이스는 색깔은 다르지만, SAYA와 동일합니다. 아몬드와 헤이즐넛을 쓴 사블레 (Biscuit Joconde)에 녹차를 첨가해 짙은 녹색을 만들은 것 같네요, 녹색 크림 (Creme au the vert)층이 얇게 들어가 있습니다. 짙은 초콜렛 가나슈 층이 있는데, 처음에는 녹차 색깔과 너무 잘 어울려서 팥이 들어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깔끔한 맛, 괜히 대표 케이크가 아니네요. 층층이 쌓아올린 재료의 맛이 입안에서 섞이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복잡하게 여러 층을 쌓아올린 것 같은데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밸런스입니다. 


참고로, 홈페이지에 보면 재료에 레시틴이 들어갔다고 별도 표기 해주는데, 사다하루 아오키 쉐프가 일본 잡지에 공개한 레시피에는 레시틴이 들어갔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애매하네요. 계란 노른자의 원래 포함되는 레시틴을 따로 표기해 준 건 아닌 듯 하고 촉촉한 상태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대두 레시틴을 따로 첨가한 듯 합니다. 뭐 콩을 많이 먹는 한국사람은 레시틴 알러지가 거의 없으니 큰 문제는 없겠죠. 


마지막으로, 일본 금의환향(?) 10주년 한정 판매 케이크 센슈얼. 라즈베리 (Framboise) 퓨레가 중간에서 상큼한 맛을 내주고 여러가지 농도의 쇼콜라 크림층이 들어가 있습니다. 쇼콜라 크림과 퓨레의 조화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켜켜이 쌓인 크림층, 퓨레의 조화가 놀라울 정도입니다. 솔직히 뱀부도 놀랐지만 이 케이크가 더 제 취향이었어요. 하나 더 먹어보고 싶었지만, 안그래도 일본에 와서 계속 먹고 특별한 운동을 하는 것도 없기에 참아야 하는 게 아쉬웠습니다.


사다하루 아오키의 초콜렛과 케이크는 이번 이 처음이었는데, 다음 번에 도쿄에 갈 기회가 있으면, (아니면 파리라도) 꼭 다시 즐겨보고 싶습니다. 이런 장인의 샵이 맘만 먹으면 가기 쉬운 가까운 나라에 있는 걸 감사해야 할까요? 대만에도 샵을 열었다는 데 한국에도 열어줬으면 좋겠네요. 다음에 맛보는 날이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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