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님 블로그에서 알게된 최규석 작가의 만화 '100도'를 보면 "한 사람의 열걸음 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이라는 인상 깊은 말이 나온다. 작가는 86년, 6/29 선언을 이끌어 낸 원동력은 화염병과 같은 폭력이 아닌 '비폭력 투쟁'을 통한 학생과 시민들의 참여라고 보았다. 소고기로 인한 촛불 집회의 성공 - 수 많은 사람들의 참여 - 도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이끌어 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촛불 집회가 거대화 되면서 촛불의 Positioning은 많이 손상되었다. 촛불은 원래 광우병 때문에 출발한 것이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촛불의 성공을 기화로 여러 주장과 단체들이 섞이기 시작했고, 정치 단체의 참가가 늘어나면서 이 단체들이 자신의 색을 뚜렷이 내보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점에서 보수파들은 반격의 기회를 잡은 듯 하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하면 안된다. 이번 촛불이 모인 이유는 각종 노동단체의 이슈가 아니라 쇠고기다. 예를 들어 나는 쇠고기나, 대운하, 의료보험 민영화는 죽어라 반대하지만, 화물연대 파업에는 동참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처지는 이해하고 파업에는 동의하지만, 함께 파업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꺼려하기 때문이다.
노동 단체들, 학생들도, 깃발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세를 불릴 생각으로 100만, 200만을 모으기 위해 단체를 모으는 게 가장 손쉽겠지만 여러 주장이 섞이면 일반 시민들이 떠나고, 그러면 촛불의 힘은 순식간에 바닥난다. 일반 시민이 떠나고 노동자 단체만 남으면 보수파는 더 이상 촛불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들을 옭아맬 수 있는 법은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단체로 참여하는 것 보다 단순히 퇴근 후에 평범한 시민으로서 참여하는 것이 몇 배나 더 큰 목소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슈로 촛불 집회를 포지셔닝해야 한다. 다른 이슈가 있으면 다시 한 번 촛불을 들자.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그게 가장 보수파들이 두려워하는 길이고, 일반 시민의 참여를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지금 내가 인턴을 하고 있는 모 은행은 광화문 바로 주변에 있다. 역사적인 광경을 세세히 볼 수 있을 뿐더러 회사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든다. 삼성에 있을 때는 이런 일이 있으면 상사들이 아침 조회를 하면서 "삼성의 명예를 생각해서 이런 저런 일에 끼이지 말라. 돈 주는데 회사 방침을 따라야 할 거 아니냐." 따위 소리를 운운했는데 (한마디로 한국 오너 기업은 사원을 머슴으로 여긴다고 밖에는 생각이 안되는--) 여기는 위에 차장님이 "우리도 국민인데 촛불 집회 함 나가야 하지 않을까?" 밑의 과장님은 "저는 싫은 데요." 라는 식의 토론이 이루어진다. 나가고, 안 나가고를 떠나서 정치적 일에 대해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게 문제가 안되는 분위기가 너무 사랑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