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미디어 다음 기사


인터넷 기사 하나가  온라인 여론에 파란을 몰고 왔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or Exemption)제도를 국내 실정에 맞게 도입하려고 검토 중이라는 기사가 떳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미국에서는 연간 임금소득이 2,550만원($23,660)를 넘는 사무직 근로자들은 연장근로 수당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고용노동부에서 어떤 식으로 이 제도를 도입할지는 모르지만, 고용노동부가 근로자가 유리하도록 법규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법무부에 접속해서 도대체 이 법이 어떤 법인지 좀 알아보았습니다. [법무부 링크]


이 법의 영문제목은 "Exemption for Executive, Administrative, Professional, Computer & Outside Sales Employees Under the Fair Labor Standards Act (FLSA)" 입니다. 번역하면 고위임원, 전문가, 컴퓨터 직종, 영업직에대한 FLSA(공정노동기준법) 예외조건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Fair Labor Standards Act란 도대체 뭘까요? 이 법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1938년 대공황 이후 제정한 법으로, 근로시간과 임금에 관한 법규입니다. 이 법안에는 최저임금 지정, 어린이 근로에 대한 금지조항, 그리고 주당 40시간 이상 근무시 초과수당 지급 등 당시로서는 무척 진보적인 개념을 담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최저임금제는 1894년 뉴질랜드에서 도입되었으며 한국은 1988년)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당시 보이지 않는 손을 신봉하던 경제학자들과 기업들은 '최저임금따위는 필요없다.'며 지속적인 반대와 로비를 했었지요. 하지만, 당시 재선에 성공한 루즈벨트는 그 여세를 몰아 결국 이 법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 법에는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별로 필요가 없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꼭 필요해 보이는 "초과 임금을 줄 필요가 없는 예외규정"을 담고 있었죠. 그게 바로 속칭 "White Color Exemption" 법 이었던 겁니다. 


이 법안에서 말하는 'Executive'란 무엇인가?

사실 이 '예외규정'이란 상당히 모호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2004년 개정이 되면서 많은 보강을 했습니다. 누가 초과임금을 줄 필요가 없는 대상인지를 더 세밀하게 정의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Highly compensated employee)"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연 $100,000 이상을 버는 근로자는 초과근무에 대한 추가수당을 받지 못하는 대상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 법안의 대상이 되는 근로자들은 사전에 정의한 조건을 통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임원(Executive)일 경우 세가지 기준(Salary Level, Salary Basis, Job Duties)을 통과해야 합니다.


1) 먼저 Salary Level 입니다. 

주급이 최소한 $455이상이 되어야 한다. $455*52(주) = $23,660입니다. 환율을 대충 1,080원으로 잡으면 대략 2,550만원이죠. 뭐 한국에서 어지간한 중견기업 근로자면 대부분 통과하겠군요. 국민소득도 높은 나라치고는 지나치게 낮은 편입니다. 주 40시간을 일한다고 치면 $23,660는 시간당 $11.375 인데,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정부 최저임금을 시간당 현행 $7.25에서 $10.10로 조정한다고 하니 이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네요. 


2) Salary Basis

특별한 건 아닙니다. 일한 기간 동안에는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지속적으로 받아야한다는 겁니다. 가령 한달에 백만원, 그 다음 달은 3천원 받는 사람은 이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란 이야깁니다. 뭐 1,2번은 한국 어지간한 직장인이면 거의 해당될 내용이네요.


3) 하지만, Job Duties 조항에는 해당하시는 분은 적을 겁니다.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임원'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자의 업무는 '회사'전체 (the enterprise)나 관습적으로 '부서(Department' 혹은 '본부(subdivision)'라고 불리는 조직을 관리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국내에서도 정말 임원/본부장/실장급은 되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본부 실장님, 임원들이 야근비(교통비) 신청하시는 거 보셨나요? 최소한 제가 있던 조직의 임원분들이 이런 거 신청했다는 소리는 못들었습니다. 즉, 어차피 한국 임원들 현실에는 있으나 마나한 법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최소한 2명의 풀타임 근로자를 직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관리하는 직원을 직접 고용/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미국이니까요)

등등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해당이 안된다고 안심하기는 이른게 이 법안이 꼭 임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업인력, 전문가, 개발인력 등도 법안에는 대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개발직은 $455 이상을 '주급' 베이스로 정기적으로 받으면 모두 해당이 됩니다. 즉 이 법안에 따르면 "정규직으로" "제때제때 월급을 받도록 고용되었고" "그 액수가 일정 금액을 항상 넘는 (주 $455만 넘으면) " 사무직이라면 40시간 이상 근무하더라도 돈을 더 줄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 별로 변하는 건 없다. 그냥 굳히기 하는 거다. 

그렇다 하더라도 별로 걱정할 건 없는데, 이미 한국은 도입될 건 다 되어 있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럽냐? 

한국에서 대기업 경험도 해보고, 좋은 회사 다니는 친구들도 많지만 솔직이 주 40시간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월급에 1.5배로 수당을 주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사실 받았던 시절이 있기는 있었다고 합니다. IMF 구제금융을 받기 이전 시점이지요. 하지만 나라가 한번 폭싹 망한 후 그때부터 대부분의 기업이 '초과근무수당'도 전부 합산하여 산정한 연봉으로 계약하는 '연봉제'를 도입했습니다. 1996년에는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이 1.6% 정도였는데 2013년에는 66.7%를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아마도 사무직만 계산하면 거의 95%이상이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봅니다. 대부분 자기 연봉계약서를 자세히 보시지 않았겠지만, 정규 근무 시간이 지나고 2시간 정도 더 일하더라도 연봉에 포함된다는 규정이 대부분 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 근무하면 '도의적'으로 택시비 정도를 더 붙여주는 "복지제도"로 바뀌었지요. 따라서 어지간한 중견기업에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는 노비 회사원분들이라면 이 제도가 도입되어도 아무런 변화도 없을겁니다. 어쨌든 한국에서 아직 사무직으로 이 초과근무수당이 있는 직업은 '공무원' 정도니까요. 


아니, 지금 남아있는 교통비 명목의 지원도 사라질지 모르겠네요. 그거라도 없어지면 정말 짜증나긴 하겠네요.



시간 떼우기 관행이 근절된다고? 

짜증나는 건 이 제도를 도입하는 명분입니다. 일을 해도 돈을 못받으니 시간 떼우며 회사에 남아있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야근도 사라질 거다! 라는 명분은 제발 대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초과근무수당 받고 있는 사람은 공무원밖에 안남다시피 했는데(중소기업은 아직 남아있나요?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이런 명분을 씨부리면 멱살을 잡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지요. 



일본에서는 왜 도입하지 못했나?

사실 이 제도는 한국보다 일본 재계에서 도입하고 싶어서 환장한 제도입니다. IMF로 나라가 한번 파산하여 이미 연봉제가 대세인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과거 그대로 시간외 수당이 남아있는 회사들이 많거든요. 2007년부터 후생노동성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한번씩 여론에 흘리고 있지만 그때마다 반대가 심해서 도입을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연합: "초과근무를 많이 하는 경우, 생산성이 낮은 사원이 더 많은 시간을 일해 더 높은 월급을 받게 되는 불합리함이 있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권리의식이 높은 미국과는 기업의 문화,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 책임이 크게 다른 일본에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서비스 초과근로가 증가할 위험성이 높다."


저는 위의 일본노동조합의 주장이 이제도가 도입될 경우, 사회에 미칠 영향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미국, 유럽에서는 초과근로 감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건 맞습니다. 서구문화에서는 권리의식이 높으니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가족과의 시간을 중시해서 퇴근하는 분위기인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많습니다만) 것과 달리, 일본이나 한국은 어쨌든 "이제 야근을 시켜도 돈을 더 안줘도 되니"라고 회사가 해석할 소지가 더 커집니다.  

참고: 임정욱님의 스토리볼 "매니저들과 저녁같이 하기"


결론

이 제도는 도입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연봉제로 바뀐 이후 대부분 민간기업에서는 초과근무수당이 사라져서, 기업 입장에서도 별로 효용성이 없어요. 그렇다고 생산직 근로자나 운송직 근로자 등에게 이 조항을 적용했다간 민란이 일어날겁니다. 그렇다면 이 조항을 적용할 대상은 공무원들뿐인데 설마요? 그런 일을 하게! 따라서 이 제도는 도입 될리가 없다고 봅니다. 모르죠. 신문에는 일체 발표 안하고 어느 국회의원이 낸 법규안에 살짝 숨겨서 통과시킬지. 물론 공무원은 예외로 하구요.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