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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홍대에서 멀리 있기 때문에, 정시에 퇴근하고 홍대까지 가면 8시 30분 ~ 9시 사이입니다. 즉, 홍대에 간다는 건 저에게 그 자체로 엄청난 수고를 요구하는 일이죠. 그럼에도 이 날 홍대에 간 이유는, 평소라면 연남동의 만두집을 방문하기 위해서지만, 이날은 피자를 먹어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탈리아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 나폴리 피자대회라는 정체불명(제가 모르니까요)의 대회에서 우승한 피자이올로가 굽는 피자라는 인터넷 글을 읽어서인데요.




이 집 피자를 한입 먹고 나서 떠올린 장면은 라면 요리왕의 이 한 장면이었습니다. '코이케'라는 라면집 사장이 아르바이트생이 자기 없을 때 함부로 라면을 팔았다는 걸 알고 그릇을 깨면서 화를 내는 장면입니다. 소심한 사람이라 험한 소리를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한 행동에 극도로 긴장해서요. 




왜 저 장면이 떠올랐나면, 나온 피자가 별로 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기 전에 이 집 피자의 특징이라고 들었던 피자도우의 쫄깃함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말로도 이 집 피자가 맛있다고 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유는 두가지. 먼저 토마토가 별로 맛이 없네요. 그리고 더 치명적인 건 형편없는 '굽는 솜씨'입니다. 




마침 가진 이미지가 없으니, 게티 이미지의 사진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부팔로 치즈 토핑이 녹아서 토마토 소스와 어우러져야 하는데 타서는 안되고 흐르는 상태로 가야하는데... 위의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치즈에 열이 가해지다 말았습니다. 피자 도우에 빙 돌려서 골고루 열만 가해준거죠. 피자 내부까지 열을 전달하는 건 기술이 필요하니 실패하지 않도록 도우만 구운 거죠. 무슨 피자 장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피자를 굽지? 하고 기가 막혀서 화덕을 쳐다보니... 피자장인 같지 않은 분이 피자를 굽고 있더군요.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장인이 아니고 이 집 다른 직원분이 굽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피자 스쿨을 나온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비용 절감을 위해 사장님이 기술을 전수한 우수한(?) 직원분이 아닐까 합니다. 얼마나 경험을 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피자를 구워서 낼 바에는 

"지금은 사장님이 없으셔서 피자를 판매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는게 가게 신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뭐 이 수준의 피자도 가게에서 허용하는 품질 범위라면 어쩔 수 없는거지요.




피자 도우는 괜찮나쁘지 않습니다. 밀가루도 괜찮은 걸 쓰는데 나폴리 피자집 대부분이 사용한다는 Antico Caputo 브랜드 00를 쓰는 듯 합니다. 사진은 없지만 매장에 쌓여있는 밀가루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글루텐 함량이 높고, 물을 반죽할 때 보통 밀가루보다 물을 많이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잘 반숙하고 상온에서 1시간 정도 숙성하면 위와 피자와 같은 쫀득한 식감을 내줍니다. 물론 쫀득함을 내기 위해 무언가 더 섞는 피자집도 있지만 그런것까지는 모르겠구요. 24시간 저온에서 숙성시키면 복잡한 향을 내주는데 아마도 상온에서 숙성만 한 듯 합니다. 뭐 하긴 저온에서 숙성했다고 하더라도 이탈리아에 여행다니던 몸상태도 아니고, 직장일에 찌들은 제가 그런 향기를 체크할 수 있을리도 없지요. 


어쨌거나,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장인이 구운 피자를 먹으러 와서 이런 걸 먹고 있나 한탄하다 (예. 기대치가 너무 높았죠ㅠㅠ) 피자를 두어조각 먹다, 차마 넘어가질 않아서 힘들어서 남은 건 싸달라고했는데 별다른 박스도 없는지 은박지에, 모든 조각을 한꺼번에 싸주시더군요. 하나하나 따로 싸주시는 것도 아니고. 속으로 서버들을 엄청 칭찬했습니다. 자신들이 구운 피자가 어떤 취급을 받아야 할지 너무도 정확히 알고 계시더군요. 


기분전환하는 데는 다른 피자가게에서 맛있는 걸 먹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근처에 있다는 다른 장작구이 피자집을 방문했습니다만.... 정말 날이 않 좋았네요. 주문을 하려고 자리에 앉았더니 역시 여기도 피자를 굽고 있는 사람은 이탈리아에 가서 피자를 배워왔다는 사장님이 아니고 다른 직원이더군요. 역시 피자스쿨을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번 내상을 입고 싶지는 않았기에 주문을 취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당분간 홍대에서 피자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네요. 




사장님이 아닌 직원이 굽는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확실한 품질만 보장된다면 누가 굽든 소비자로는 상관이 없죠. 그런데 자신이 굽는 것에 비해 모자라는 수준이라면 자기가 없을 때는 피자를 팔아선 안된다고 봅니다. 이태원 어느 유명 피자집의 경우는 어느 지점이나 균일한 품질의 굽기를 보여줍니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4개 시키면 3개는 수분이 많은 도우상태로 나오고 한 번 정도는 (우연인지) 먹을만한 도우로 구워져서 나오거든요. 그래서 마음 놓고 안갈 수 있는데, 분점도 없고 사장님이 대회 우승한 걸 타이틀로 잡고 있는 가게가 이런 식으로 피자를 팔면 실망할 수 밖에 없지요.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달콤한 걸 먹지 않으면 범죄를 저지를 지도 몰라서, 급히 지인들에게 주변의 디저트 가게를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방문한 곳이 홍대에서는 좀 떨어져 있는 어느 가게였습니다. 그 집 대표메뉴인 푸딩인데요 5,0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는 정직한 푸딩이 나옵니다만, 이 정도의 맛을 먹고 이날 최악으로 망가진 기분이 살아날 턱이 없지요. 정직하지만 한국 우유/생크림의 한계로 제 기분을 풀어줄 만큼 맛있지는 못했구요.... 




이건 약간 비싼 (7,000원) 무화과 타르트. 국산 무화과가 생으로 썰어져 올라가는데 이건 안시키는 게 좋았다는 생각입니다. 



참으로 우울한 홍대 나들이였네요. 그래도 힘을 내서 먹으러 다녀야죠. 이런 일도 있는거니까


2015.11.12 추가


원래 피자 장인은 8시 30분이면 퇴근한답니다. 그리고 9시 30분까지 주문을 받는데 그 동안은 다른 사람이 굽는다고 합니다. 허허허-_-;; 





댓글
  • 프로필사진 djpopkin 좋은글 잘봤습니다 가보고팠던 가게인데 참고가 되네요.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건 위에 드신 피자는 사진으로보니 토마토소스가 베이스가 아닌듯해서 두번째 마르게리따 사진과는 비교하는건 잘못됬다 생각되네요~
    2015.11.19 19:16
  • 프로필사진 BlogIcon eyeofboy 저작권 없는 사진을 함부로 가져올 수 없어서요
    그럼 이 사진과 비교해 보시면 어떠신가요?

    https://fbcdn-sphotos-d-a.akamaihd.net/hphotos-ak-xta1/v/t1.0-9/11138618_416104545254092_2511188066868901916_n.jpg?oh=2116ec41157a167205101eb429e5a905&oe=56E39132&__gda__=1458515899_56792ac215c787dc9e98f89216e261ab
    2015.11.20 14: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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