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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고, 키웨스트를 둘러 보아야죠. 이날은 원래 호텔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키웨스트를 유유히 돌아보려고 했는데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예! 전 사람들은 다 자전거를 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자전거가 브레이크 없이 페달을 뒤려 돌려서 멈추는 방식의 물건이라 초보자에게는 좀 위험했구요. 결국 $50 비용만 날리고 걸어다닐 수 밖에 없었죠.


자전거를 아무데나 묶어 놓고 점심 먹을 곳을 찾아 걸어갑니다. 어디들 가든 겨울을 고려하지 않은 (단열을 고려하지 않은) 나무로 만든 집들과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야자수들은 키웨스트에서 보는 가장 흔한 풍경 중 하나입니다.


걸어가는 도중에 본 집 수리하는 장면인데, 건설사 이름이 카스트로입니다. 키웨스트 뉴타운 쪽에 사무실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 동네 건설 및 인테리어 업자인 것 같습니다. 피델 카스트로 친척이 쿠바를 탈출해서 세운 회사는 아니겠죠? Key West스럽네요.


오늘 점심을 먹을 식당입니다. 산티아고 보데가. 산티아고 순계길을 알고 계시는 분이라면 참으로 스페인 시골스러운 이름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미국인 네 명이 무작정 키웨스트로 와서 세운 가게입니다. 테마가 스페인일 뿐이죠. 


깜빡하고 식당 전경을 찍지 않았는데요, 이날이 너무 더워서 가게를 보자마자 안으로 들어갔기 때무이기도 하지만, 구글맵 스트리트뷰에서 보는 것처럼, 외관이 워낙 볼품이 없어서 이기도 합니다. 여기가 키웨스트 남쪽으로 좀 외진 구역이라서 임대료가 좀 쌀 듯 하네요. 맛이 있으면 소비자가 찾기 마련인데 처음 2년은 허리케인 때문에 가게가 부서지는 등 많이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잘 꾸며져 있습니다. 이름 '산티아고 보데가'처럼 타파스 요리를 내오는데 상당히 맛있고, 곁들이는 술과 잘 어울려서 지금은 키웨스트에서 가장 핫 한 식당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여기 말고도 몇몇 Hot한 곳이 있는데 Bliss, Bien, Garbo's Grill 등 입니다. 셋 다 이번 여행에서는 별로 인연이 없었구요 Garbo's Grill은 멀로리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한 번 찾아가 볼까 했는데 Food Truck에서 타코를 내오는 집이어서 굳이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Korean BBQ Taco같이 불고기가 들어간 타코를 파는데 별로 흥미가 가지 않더라구요. (실제 메뉴이름이 Korean BBQ임)


뭔가 이 동네 예술가가 술값 대신 맡긴 듯한 그림들도 붙어 있습니다. 내부는 잘 정리 되어 있는데, 제가 도착한 십분 후 자리가 하나도 없이 만석이 되어버리더군요.


미국 어딜가든 맛좋고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를 고를 수 있는데요, 이 집에서 추천하는 생맥주는 위의 다섯가지 입니다. 플로리다(FL)주와 미주리(MO)주의 맥주가 눈에 띄네요. 8.5% 도수를 지닌 Boulevard Tank 7 Famhouse Ale를 주문해 봅니다. 뭐 저야 거품만 마시겠지만. 탱크 7으로 흔히 불리며 한국에서도 제법 팬이 있는 맥주죠. 

한국에서는 기껏해야 병맥이겠지만 여긴 잘 관리된 생맥을 맛볼 수 있다는 게 좀 차이점입니다. 저런 전용잔에 마시면 향이 더 일품이죠. (라고 믿어봅니다.)


산티아고 보데가의 주력 메뉴는 당연 타파스인데요, 주문하면 조리를 시작하는 시스템이어서 타파스 스럽지는 않습니다. 고급화 타파스 전략이라고 해야하나요? 하지만 하이 퀄리티 이미지는 유지하고, 손님 회전 속도는 유지하기 위해서 메뉴를 두 종류로 나눕니다. 바로 차가운 타파스와 따뜻한 타파스죠. 따듯한 타파스는 주문하면 10~20분 정도 걸리고, 차가운 건 바로 나옵니다. 손님 대부분은 뜨거운거를 시키고 적당히 차가운 것도 시키기 때문에, 양쪽 메뉴에서 다 매상이 발생하는 영리한 전략을 택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꼼짝없이 두 가지를 다 주문했죠.


황다랑어(Yellow Fin Tuna) 세비체, 이 동네에서 종종 잡히는 신선한 황다랑어 참치살로 만든 세비체입니다. 강한 풍미의 시트러스 주스에 재워두었다가 직전에 표면에만 열을 가해줍니다. 굽는다기 보다 마쯔가와, 그러니까 뜨거운 물로 겉만 살짝 익히는 일본식 조리법을 쓰는 듯 하고요, 신선한 야채-아보카도, 망고, 토마토가 곁들여 지고, 거기에 실란트로 잎으로 풍미를 더 합니다. 


마쯔가와인지 유비끼인지 어쨌든 뜨거운 물로 데친 흔적. 안은 생이고 겉만 살짝 익었습니다. 그 주위로 소스가 듬뿍 있네요. 오우. 맛있었어요. 여기 걸어오느라 더워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 메뉴를 먹고 나니 입맛이 되살아났습니다.


저희를 맡은 서버. 프랑스스럽게 생겨 보이지만 (그게 어떤거냐?) 가게 홈페이지에 가보니 칸사스 주 출신인 듯 하네요.


프렌치 어니언 스프. 기대했던 그대로의 맛이었는데 좋긴 했지만 제가 이 더위에 저걸 왜 시켰는지 모르겠네요. 맛은 좋았습니다. 치즈도 듬뿍, 풍미도 좋았구요. 그런데 이날 메뉴 선정이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맛은 있었지만 해산물 비중을 좀 적게 시켰거든요. 아마도 맥주를 주문해서 안주로 먹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어요.


소고기 텐더로인(허리살)에 블루치즈를 곁들인 요리. 나쁘지 않은 조합인데 고기 수준이 높지는 않더군요. 이 동네는 역시 해산물 재료가 좋겠죠. 맛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맛있고 좋았는데 한참 두고 보고 나면 기대 이상의 기억에 남는 맛은 아니었다는거죠. 사실은 옆에서 이 집 대표메뉴라는 소고기 갈비(Beef Short Ribs)를 시켜서 막 뜯어먹는 걸 보고 그걸 시키려다 막판에 이 주문으로 바꿨거든요. 좀 아쉽네요.


역시 뜨거운 타파스, 베이컨으로 감싼 버섯요리. 바질 잎이 하나 덩그러니. 아래 소스도 바질로 만든겁니다. 뭐 흔하고 뻔한 조합이지만 바질 소스-정확히는 프로방스 풍 아이올리 소스-에 찍어먹으니 괜찮더라구요. 나쁘진 않았지만 두 번 시키기에는 좀 모호한 요리입니다. 이 집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다른 메뉴가 많은 듯 해서요.


정말 잘 먹어치우던 옆자리 커플


동행이 맥주를 더 시켜서 안주로 주문한 샤퀴테리 (Charcuterie). 매주 재료 수급에 따라서 조금씩 변화가 온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간 날은 빠떼 (저기 소시지 같이 생긴 것, 한국처럼 넙적하지는 않더군요), 베이컨, 초리소. 그리고 소고기 bresaola, 이탈리아에서 먹는 소금에 절인 소고기인데, 2~3달이 아니라 보다 오래 절인 듯 색이 더 짙어 보이네요. 향이나 맛은 훌륭했습니다. 올리브도 좋았구요. 맥주팬들에게는 정말 맥주를 부르는 맛일 듯.


상당히 맛있게 먹어서 혹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니, 미안하지만 오래전에 예약이 마감되었다 하네요. 그래서 그럼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니 "그날은 영업을 안하죠?" 라고 당연하다는 듯 말하더군요. 예. 여기는 미국. 대목이라도 칼 같이 쉬는 식당이 많은 나라입니다. Texas 살 때 크리스마스 때 시내에 나가니 온통 불이 꺼져있고 아무도 없어서 유령도시같다고 놀라던 생각이 나네요. 분위기도 맛도 맘에 들어서 키웨스트에 가면 꼭 다시 들리고 싶은 식당입니다. 올랜도에도 가게가 있다던데 거기도 한 번 들릴 기회가 언제 있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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