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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미술관에 다녀오면 글을 쓰기 힘듭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유는 다녀온 다음 미술품을 공부하면서 정리하여 기록하는 의미도 있는데, 뭐 아는 게 있어야 정리를 제대로 하지요? 이번 여행에서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로스 엔젤레스 3대 미술관인 게티 뮤지엄(Getty Museum), 더 브로드(The Broad), 그리고 라크마(Lacma)를 모두 다녀왔으니 참 정리하는 게 고민입니다. 그래서 일단 박물관은 좀 패스하고, 먹거나 돌아다닌 이야기를 먼저하겠습니다. 


라크마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패스하고, 라크마를 나와서 로스엔젤레스에서 가장 인기 식당의 하나인 애니멀(Animal)을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만해도 예약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했는데 5시 땡 치면 가겠다고 했더니 매우 쉽게 예약이 되었습니다. 엘에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식당이고, 다음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들려야 할 레스토랑입니다. 


조금 일찍 갔더니,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프로비던스와는 달리 임대료가 좀 쌀 것으로 보이는 길가에 있습니다. 외관도 허름하고요. 라크마에서 Sunset Blvd 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다고 해야하나요? 간판도 제대로 없기 때문에 처음 갔을 때는 어딘지 몰라서 꽤나 당황했습니다. 


5시 쯤이되면 발레 파킹을 해주러 길 가에 이렇게 부스가 만들어 집니다. 저는 좀 이르게 도착했더니 아직 부스도 만들어지지 않아서, 어디 주차해야 할지 몰라 좀 헤멜 뻔 했는데 다행히 길 가에 빈자리가 있어서 레스토랑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쉽게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이 주변이 주차하기 쉬운 지역은 아니기 때문에 다음 번에 갈 때는 아예 우버를 이용해서 가거나 할 것 같습니다.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면서도 별이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들어가보고서야 한 눈에 알았습니다. 별을 받을 생각이 없는 레스토랑이군요. 미슐랭 가이드는 맛도 중요시하지만, 별을 주는 가게는 그만큼의 서비스도 꼼꼼히 챙기는 편이기 때문에 (뭐 오노 지로의 스시집처럼 예외도 있지만요) 이런 식으로 좌석간 간격이 좁고 시끄러운 미국식 레스토랑은 별을 잘 안주는 편이지요. 문을 열자 마자 들어갔기 때문에 아무도 없었는데 저 좌석이 곧 가득차버리더군요. 아무도 없는 레스토랑의 제일 처음 문열고 들어가는 기분이 색다르긴 했습니다. 


첫 손님이라는 증거. 정말 아직 아무도 안왔습니다. 6시 좀 넘어가면 빈자리가 없어지더라구요.


알콜을 못먹는 저는 탄산수를 주문합니다. 사실 술을 못마시는 저로서는 서양 음식을 즐기는 게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알콜이 없는 음료를 충실히 갖추고 있는 식당은 드물기도 하고 유명한 식당의 음식은 대게 와인이나 맥주와 어울리는 맛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뭐 그래도 어떻게 하나요. 제가 즐길 수 있는 만큼만 즐기면 되죠.


동행이 좋아하는 탱크 7, 저거 키웨스트 갔을 때도 시켰던 맥주라 기억이 나네요.


Kampachi tostada, herbs, fish sauce vinaigrette, peanut. 계절에 따라서 겨울이 가까와지면 방어(hamachi)를 내놓는다고 하네요. 그때가 더 맛있을 것 같군요.


첫 메뉴로 잿방어가 있길래 시켜봤습니다. 일본 요리의 영향으로, 회로 나오는 생선 이름은 영어이름을 쓰지 않고 일본 발음을 그대로 쓰는 가게가 많습니다. 한국은 외국에 음식을 소개할 때 이름을 억지로 영어식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정말 쓸 데 없는 짓이죠. 그 뉘앙스가 그대로 전달될리가 없기 때문에 한글로 떳떳하게 발음표기하고 맛있나 없나를 보여주는 게 가장 좋다고 봅니다. 


음식이 나오고 보니 방어는 안오고 야채만 잔뜩 왔네요. 방어는 바닥에 조금 깔려있고 (사진에는 잘 안보입니다) 맨 위에는 또르띠야를 튀긴 tostada가 올려져 있습니다. 허브가 좀 많이 들어가 있고 (꽃잎도) 땅콩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 데... 이 모든 잡다한 재료를 하나로 모아주는 게 Fish sauce vinaigrette였습니다. 가게마다 다른 레시피를 쓰는 것은 맞지만 베트남의 피시 소스에 비네거, 라임이나 그런 것들을 넣어서 만드는 것인데 묘하게 회와 어울리네요. 한국에서 회를 먹을 때 깻잎 등에 쌈을 싸먹는 것도 안하는데 여기서는 이 소스 덕분에 야채 + 회 조합이 잘 어울리네요. 벌써 몇 달이 지나서 맛의 상세한 부분은 기억에 없지만, 이런 식으로도 '회'를 제공할 수 있구나 하며 감탄하며 먹었습니다. 


Flora Bella Arugula, Walnut Vinaigrette, Goat Cheese, Date, Sunchoke. 고기를 많이 먹을 거니 야채도 시키자고 해서 시킨 메뉴입니다. Flora Bella Arugula는 특별한 아르굴라 품종이 아니라 생산 농장이름을 딴 겁니다. 아르굴라로 유명한 지역 농장이겠죠. 비네거에 절인 월넛과 고트 치즈 맛이 좋았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사과 처럼 썰려 있는 것은 서양 대추(Dates)고 얇게 잘려져 있는 건 Sunchoke인데 예루살렘 아티초크라고도 불리지요. 한국에서는 흔히 돼지감자로 번역되는 놈입니다. 고트 치즈를 좀 더 줬으면 하면서 퍼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샐러드 하나도 어쩌면 이렇게 잘 만드는지. 

 

barbeque pork belly sandwiches, slaw. 삼겹살을 부드럽게 요리한다음 코울슬로를 올리고 작은 햄버거 번에 넣어 먹는 요리입니다. 라멘집에서도 가끔 나오는 메뉴죠. 뉴욕 모모푸쿠에서도 먹어봤는데, 솔직히 거기와는 비교도 안되게 맛의 균형이 잘 살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걸 그냥 돼지버거라고 부릅니다. 꼭 먹을 필요는 없지만 저 소스와 코울슬로, 고기의 조화가 꽤 중독성이 있어요.


marrow bone, chimichurri, caramelized onions. 


흔히 본 매로우(bone marrow)라고 불렀는데 거꾸로 marrow bone이라고 씌여 있어서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영어사전을 보니 골수가 든 뼈를 marrowbone이라고 하네요. 그럼 bone marrow는? 말 그대로 '골수'만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고기에 흔히 쓰는 치미추리 소스(위에 올라간 녹색소스)와 카라멜라이즈한 양파 소스와 같이 푹푹 퍼서 빵에 발라먹는 요리입니다. 


그야말로 고기러버를 위한 메뉴네요. 이 집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메뉴 중 하나입니다. (물론 본 매로우를 많이 경험하신 분은 토끼 다리나 송아지 뇌같은 쪽이 더 흥미롭겠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메뉴는 일인 당 하나씩 시키면 너무 많고 둘이 하나를 쉐어하면 경쟁하듯 먹게되는 단점이 있지요. 뭐 어쩔 수 없나요?


원래 점심에만 파는 메뉴였는데, 손님들이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저녁에도 주문할 수 있는 (메뉴판에는 없음) “boner burger,” 420 sauce, jack cheese, poblano, red onion. 포블라노(poblano)는 순한 맛의 고추. 아래 사진에서 녹색으로 흐르는 게 그 소스입니다.  


잭 치즈(jack cheese)도 잘 녹은 상태고, 양파는 생으로 들어간 듯 하네요. 420 소스는 뭔지 모르지만 강한 고기맛을 완화시키기 위해 산미를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기만해도 기름지지요? 맛있습니다. Boner Burger라 이름 붙인 이유는 이 햄버거의 패티가 보통 쓰는 어깨살(chuck)과 갈비살(short rib)이외에 본 매로우(Bone Marrow)를 함께 갈아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고추와 420 소스가 포함되었긴 하지만 패티가 워낙 기름지기 때문에 와인 정도는 시켜줘야 잘 먹을 수 있을 듯. 


저는 없이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와인을 안 먹으면서 고기를 먹다보면 이런 정도의 메뉴를 그냥 먹는 것은 익숙해 지기 마련이죠. 차 없이 맹물로 케이크를 먹는 것도 익숙해 집니다. (사람은 적응을 하기 마련이어서요) 


이건 음식 이름이 정확히 기억 안나네요. Tandoori-style octopus. 였나 그랬습니다. 바닥의 문어다리 아래 약간 진한 소스는 tamarind, 녹색과 흰색 소스는 raita라고 불립니다. 러시아 쪽 소스인데 요구르트에 야채 다진 것(위에서 녹색 소스 + 하얀색)을 섞은 소스라고 하네요. 원래는 여기에 망고가 나왔던 메뉴인데 망고가 없는지 토마토와 잘 모르는 뭔가가 나왔습니다. 이름을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


마지막으로 디저트. 더 먹고 싶었지만 배가 꽉 차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cheesecake pudding, guava, strawberry, graham. 딸기, 딸기 소르베. 그  밑에는 푸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감탄하면서 먹었습니다. 디저트를 두 엇 더 먹고 싶었지만 배가 꽉 차버려서 힘들어서 더 이상은 무리였습니다. 바로 숙소로 가지 못하고 예정에도 없던 그로브몰에 가서 한참 소화시키려고 걸어다녀야 했거든요. 


하나같이 맛있어서 정말 정신없이 먹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럴만 하다고 생각되네요. 프로비던스 1/3 정도의 가격인데 요리의 임팩트는 이쪽이 훨씬 높습니다. 물론 프로비던스와는 다른 방향의 음식을 추구하니 곳이니 비교는 무의미 하지만 말이에요. 이름그대로 애니멀, 동물처럼 단순하고 원초적인 맛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가성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여행자로써 아마도 다음 번에 왔을 때 식당을 하나만 들린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기를 들리지 않을까 하네요. 꼭 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시간이 없어서 두 번 못 간게 아직도 너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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