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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모두가 좋아하는 해산물의 하나가 '굴'입니다. 저는 굴을 좋아하지만 생으로는 거의 먹지 않는 편인데, 시암 파라곤 고메 마켓에 갔더니 몇몇 유명한 굴을 먹을 수 있는 코너가 있길래 참지 못하고 먹어 보았습니다. 


해산물 코너에서 이런 식으로 세계 각지의 유명한 굴을 가져다 놓고 먹을 수 있게 해주더군요. 가격은 싸지 않습니다. 가장 비싼 것은 아일랜드 Gallagher의 스페셜 굴인데, 한 개에 259바트나 하더군요. 한화로 따지면 굴 한개에 8,000원 정도 하는 셈입니다. 물론 현지로 먹으러 가는 비용보다는 싸겠지만요.


식료품 관리가 엄격한 프랑스 답게 굴에 대해서도 명칭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같은 지역인데 위에 굴은 Special Oyster고 아래 굴은 그냥 Oyster라고 되어 있지요? 스페셜 굴은 말 그대로 속이 꽉찬 굴입니다. 굴의 무게가 대부분 껍질인 건 짐작하시겠지요? 굴 무게가 100g이라고 하면 굴의 몸무게 중 살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10% 이상 (즉 살과 내장만 10g이상)일 때 스페셜(Special)이라는 등급을 붙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어 표기로는 Spéciale라고 쓰고요. 6.5% 이상이면 'Fine'이라는 등급으로 붙입니다. 당연히 살이 꽉 찬 쪽이 더 비싸지요. 


고메마켓에서 파는 굴의 종류와 가격입니다. 프랑스쪽, 유럽 쪽 굴들이 비싸고 미국, 아시아, 호주 쪽 굴이 비교적 싼편입니다. 유럽이 거리가 멀어서 운송비용이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고, 수백년 간 유명한 브랜드 네임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유감스럽지만 한국 통영굴 같은 건 없습니다. 우리 나라 굴 대부분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목적으로 키워지기 때문에 이런 브랜드화는 아직 갈 길이 멀지요.


위의 메뉴에서 Fine De Claire 혹은 Special De Claire라고 씌여 있는 굴은 바닷가 양식장에서 키운 다음, 최소 28일 간 소금물에서 놔두어서 살을 뺀 굴을 말합니다. 응? 통통한 굴이 최고인데 다이어트를 시킨다구요? 굴의 풍만함보다 '텍스츄어'를 즐기는 프랑스에서나 가능한 일인데요, 이런 굴을 좋아하는 사람은 '뉴올리안즈'에서 생산된 굴처럼 풍만한 굴을 질색으로 싫어한다고 하네요. 


참고로 하나 더. 굴을 설명하면서 verte라는 단어가 뒤에 붙기도 하는데 굴의 살 색이 녹색일 경우입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녹색 플랑크톤을 많이 먹어서 그렇게 변해버린 경우라고 하네요.


여기서 잠깐 굴에 대해서 알아보면, 양식굴은 키우는 형태에 따라 다시 수하식, 지주식(또는 투석식), 수평식으로 나뉩니다. 통영굴 등 싸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굴은 '수하식'으로 대량으로 키우는 굴입니다. 


수하식 양식은 간만의 차가 큰 개펄에서 하기 보다는 약간 수심이 있는 바다에서 하는 방법입니다. 보시다시피 가리비 껍질 등에 굴의 새끼를 붙여서 키우는 방식인데요, 바다에서 하기 때문에 굴은 항상 물에 잠겨서 플랑크톤을 계속 처묵처묵할 수 있어서 성장이 빠릅니다. 수확할 때는 크레인으로 이렇게 양식하고 있는 굴 무더기를 들어올려 육지로 옮긴다음 굴을 채취합니다.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남해안, 특히 통영 지역의 굴은 거의 100% 수하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통영에서 생산되는 굴 중에 큰 놈들은 일본에 수출되고 (대굴, 굴 하나 무게가 15g이상), 중간 규모 크기는 봉지굴로 주로 유통됩니다. 그리고 10g 내외의 작은 굴들은 '소굴'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포장되어 유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하식 양식굴이 처음 시장에 나오자 크기는 커도 기존 서해안에서 양식한 굴보다 맛이 없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작은 굴이 더 맛있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이용한 건데요, 같은 수하식으로 키운 굴이 맛 차이가 있을리가 없지요. 마트에서 '소굴'이라고 따로 파는 데 '통영굴'이면 수하식이고 크기가 작은 굴이거나, 1년만에 딴 어린 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더 맛있는 굴이 아니라는 말씀.


서해안에서는 전통적으로 투석식 양식 법을 썼습니다. 개펄에 돌 무더기를 던져두면, 굴이 알아서 돌에 붙어서 자라거든요. 이렇게 키운 굴은 '토굴'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맛도 향도 좋지만, 생산량이 적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하식으로 바꾼 곳도 있고, 최근 선진국 굴 양식법인 '수평식'을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있다고 하네요. 태안 오솔레 굴이 수평식으로 자라난 대표적인 굴입니다. 


프랑스 수평식 굴 양식장의 모습입니다. 사진은 구글링해서 가져왔습니다. 간만의 차가 적어도 자연산과 가까운 굴을 키우기 위해 고안된 방식입니다. 즉 밀물 때는 물속에, 썰물 때는 햇볕에 노출되게 키우는 방식이지요. 하루 종일 물속에 잠겨 있는 수하식에 비해 성장은 더디지만 그만큼 더 향도 진하고 맛좋은 굴이 된다고 하네요. 


2) 자라는 곳에 따라서는 바닷굴, 그리고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서 자라는 굴이 있습니다. 섬진강 벚굴이 대표적이지요. 



3) 종류에 따라서 태평양 굴과 대서양 굴로 나뉩니다. 뭐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 복잡해지지만, 그것까지는 알 필요 없을 듯 하구요 (굴 연구가도 아니고).


Belon굴이라고 불리는 유럽 전통굴 사진입니다. 길쭉한 태평양 굴에 비하여 둥근 모양인게 특징입니다. 태평양 굴보다 향이 강한게 특징인데 '요오드 향'이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고 유럽 미식가들이 그런 독특한 향을 정말 좋아한다고 하네요.


자. 그럼 다시... 고메마켓 굴 코너로 돌아갑시다.


이런 자리에서 먹습니다. 마트 한 가운데여서 분위기는 좀 떨어지지만, 그런 거 신경안쓰는 사람은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굴을 골라볼까요? 구마모토 굴도 있군요. 구마모토 지역에서 처음 양식에 성공해서 미국에서 그 종패를 데려다 키웠는데, 정작 일본에서는 멸종해버려서 미국 종패를 다시 가져와서 양식에 도전하고 있다고 하네요. '굴 중 샤도네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데 화이트 와인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유럽굴은 동글동글해야 하는데 왜 태평양 굴처럼 길쭉 거릴까요? 지인에게 물어보니, 굴 바이러스 (노로 바이러스 말고요)가 확산되어 유럽산 굴이 떼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태평양굴을 받아다 키워서... 프랑스굴이나 미국이나 아시아 굴이나 품종은 별 차이 없어졌다고 하네요. 


헉... 맥이 풀립니다. 물론 굴의 맛은 생산되는 바다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품종이 같더라도 모두가 전혀 다른 맛과 향을 가지니 먹을 가치는 있습니다. 


왼쪽 수조에 있는 굴은 아까 설명드린 제일 비싼 굴, Gallagher이고, 오른 쪽에는 러시아의 눈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Tsarskaya 굴입니다. 참고로 러시아 굴이 아니고 프랑스 노르망디 쪽에서 양식되는 굴입니다. 러시아 짜르가 너무 좋아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나요? 이 두 굴은 안 고를 수 없지요.


스코틀랜드 Loch Fyne Rock Oyster. 스코틀랜드 Loch 지역에서 양식된 굴입니다. 가격표 땜에 잘 안보이는 데 어쨌든 이것도 대서양이 아닌 태평양굴이네요.


프랑스 굴 양식으로 유명한 Marennes Oleron의 굴입니다. 프랑스 중부 지방의 굴이죠. 


대충 다 고르고 주문하면, 이렇게 자리 세팅을 해줍니다. 빵은 같이 먹으라고 가져온 듯 하고 굴 접시는 저 프레임 위에 올려지게 되죠.


굴을 손질하고 있습니다. 


주문한 굴이 나왔습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다섯개만 시켰네요. 응? 지금보니... 블롱 굴을 안시키고 다 태평양 계열로만 시킨 듯 합니다. 


한장 더. 굴 하나하나에 어디 산 굴인지 작은 팻말을 꽂아줍니다. 이런 서비스 좋네요. 칵테일 소스가 중앙에 있긴 하지만 신선한 굴은 소스를 쓸 필요가 없죠. 물론 여기 굴은 항공편이라 하더라도 제법 오랜 시간, 먼거리를 날아온 터라 현지 맛에 비하면 떨어지겠지요.


가장 비싼 아일랜드 Gallagher Special 굴입니다. 모양이 참 곱기도 합니다. 30개월 이상 키운 굴로 '아이리쉬 위스키'같이 피트향이 나기도 한다는데... 저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바다에서 키운 굴은 출시 전에는 강이랑 가까운 곳으로 옮겨서 (프랑스의 Claire와 비슷) 좀 더 놔둔다고 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Gallagher만의 독특한 풍미가 강화된다고 합니다.


좀 더 음미하며 먹었어야 하는데 후루룩 음음... 꿀꺽 먹어버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8000원이 허공에 떠버린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처럼 굴 먹으면 안되는건데.


비싼 굴이니까 한장 더!


러시아 황제가 그렇게 좋아했다는 Tsarskaya. 살이 굉장히 여문 느낌인데 유통기간이 오래 되서 살이 빠진 건지는 알 도리가 없네요. 실제로 크리미한 맛보다는 섬세한 텍스츄어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맛은 좋았는데 역시 길게 음미하지 못하고 후루룩... 음음.. 꿀꺽. 왜 그랬을까요?


스코틀랜드 Loch Fyne Rock 굴입니다. 


타스매니아 굴입니다. 


Marennes Oleron 굴입니다. 역시 프랑스 굴이네요. 참고로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굴을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이며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어서 양식이 활발합니다. 일본보다 좀 더 많은 13만톤의 굴을 생산했으며, 대부분은 프랑스 내에서 소비됩니다. 참고로 유럽 양식 굴 생산량은 대략 14만톤 정도인데 이 중 13만톤 가까이를 생산하고 소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는 일본 굴인줄 알고 먹었는데 알고보니 미국굴이던 구마모토굴. 


굴 하나하나 충분히 음미하진 못했지만 맛은 매우 다릅니다. 크기, 질감, 향 모든 게 다릅니다. 아쉽게도 운송하는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아니면 제 몸이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서 그런지 향은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습니다. 텍스츄어가 다른 건 (씹어보면 아니까) 충분히 알겠는데 향은 정말 잘 안느껴지더군요.


먹어본 소감을 말하면 Tsarskaya > Gallagher Special은 질감, 크기가 매우 좋았고 나머지는 그저 그런 느낌. 구마모토도 별다른 특색이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앞의 두 개 굴은 비싸지만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먹어보려고 합니다. 어쨌든, 세계 유명한 굴들을 한자리에서 먹는 다는 건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구요 혹 고메마켓에 갈일이 있다면 한 번 쯤 시도해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그런데... 음.... 지금은 굴에 대해 좀 알고 있으니까 안타까운데 블롱 굴이 있는데도 먹어보지 못했네요. 당시에는 여러 지역을 먹어보면 충분할 줄 알고 넘겼는데 (프랑스 굴은 이미 두개나 선택했으니) 품종이 다른 Belon굴을 꼭 선택했어야 하는데 아깝네요. 뭐 언젠가 기회가 있겠죠.


오른 쪽 굴이 Belon굴입니다. 가리비 처럼 모양이 둥글죠. 당시에는 저걸 보고도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제가 밉네요.


한국의 굴은 아직 '고급소비'의 영역으로 올라오지 않았지요. 고급화 했을 경우 소비해줄 소비자도 적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목적으로 생산되고 팔립니다. 그래서 한국 굴은 싸고 통통하지요. 텍스츄어나 향에 대한 연구도 박하구요. 통영에서 생산되는 굴만으로도 긴 해안선을 가진 프랑스나 일본의 합계와 맞먹을 20만톤 가량의 굴을 생산하니 얼마나 대량으로 굴을 생산하고 있는지 아시겠지요?


하지만 태안 오솔레 굴 처럼 서서히 브랜드화 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고, 언젠가는 남프랑스 지중해의 Tarbouriech 지역의 굴 양식이라도 7년간 키운 굴 (그게 맛있는지는 모르겠음) 이라든지 해서 차별화된 굴이 한국에도 나타나리라 봅니다. 그때까지는 뭐... 오솔레 굴이나 벚굴을 열심히 먹어야죠. (솔직히 저 모든 굴보다 저에게 맞았던 게 섬진강 가서 먹었던 벚굴이었습니다. 역시 굴은 현지에서 먹는게 최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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