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코메야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갑니다. 이날 여행하면서 저는 참으로 답답하였으니 여행 전 푹풍 업무 + 여행피로가 누적된 때문인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목이 부어서 말을 못하게 되었거든요. 덕분에 입 다물고, 목캔디를 빨면서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감기는 아니어서 누워있을 필요는 없었던게 다행이네요. 

 

긴자에서 유라쿠초 지역을 지나면, 돈을 쳐들여 지은 멋진 빌딩 군락이 나타나는데, 바로 일본을 대표하는 비지니스 존이자, 최근 10 여년간 도쿄역 주변 리모델링, 미쓰비시 이치고칸 미술관, 우체국 부지에 세워진 KITTE 등 각종 건축 프로젝트 덕분에 몰라보게 달라진 마루노우치라는 지역입니다. 뭐 여전히 핵심 기능은 비지니스 오피스 타운이지만, 미술관 뿐만 아니라 각종 레스토랑 및 쇼핑 센터들이 자리하고 있어 관광객도 들려봄직 한 곳입니다. 


마루노우치를 상징하는 미쓰비시 이치고칸 미술관. 굉장히 오래된 양식이지만, 2010년 봄에 개관한 파릇파릇한 신참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원래부터 미술관은 아니었고, 1894년 영국에서 초빙된 건축가 조시아 콘도르(Josiah Conder)의 설계로 지어진 업무용 임대 빌딩이었습니다. 앤 여왕 복고시절 영국 바로크 건축 스타일, 줄여서 Queen Anne 스타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런 건물이 총 9호관 (이치고칸 = 1호관의 일본 발음임)이 주변에 들어섰었고, 덕분에 이 지역은 백년 전에는 런던 거리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본 고도경제성장시절, 이 금싸라기 땅에 좁고 낮은 벽돌건물로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은 되자 미쓰비시는 건물을 부수고 빌딩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문화재관리청에서 이치고칸(1호관) 건물은 메이지 시대 지어져 역사도 깊고, 건물도 잘 보존되었으니 문화재로 지정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되면 이 건물을 높일 수 없게되는 미쓰비시 그룹. 결단을 내려 1968년 3월, 건물 내력벽이 무너질 수도 있다라는 이유로 이 건물을 전격 해체해버립니다. 일부러 공무원이 쉬는 토요일에 부쉈기 때문에 문화재관리청은 대응도 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후 미쓰비시는 여기에 15층 빌딩을 지어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군요. 


자 시간은 흘러, 일본 경제 규모가 더 커진 지금 15층 빌딩으로도 부족하게 된 미쓰비시 그룹, 지상 34층의 마루노우치 파크 빌딩을 지으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는데 아뿔싸! 아무리 고민해봐도 34층 까지 올릴만한 용적률이 없습니다. 이 지역에 허가된 용적률은 최대 1300%였거든요. 한 층이라도 높이는 게 이 토지에서는 곧 수익. 먼저 도쿄역의 용적률을 사와서 130%를 추가했습니다. (일본은 자신이 안쓰는 용적률을 팔아먹을 수 있습니다. 도쿄역은 당시 미쯔비시 그룹에 1300% 용적률 중 800%만 짓고 500%를 팔았습니다. 이 용적률은 신 마루노우치 빌딩, 마루노우치 빌딩, 그리고 여기 마루노우치 파크 빌딩에 골고루 나눠지게 됩니다.) 


그리고 예전에 박살내 버렸던 이치고칸 건물을 재현해 낸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토지의 일부에 문화 시설을 세우면 '시민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다른 빌딩을 더 높이 세울 수 있거든요. 이치고칸을 재현함으로써, 미쓰비시는 3개 빌딩에 각각 100% 용적률을 추가하는 마법을 부립니다. 덕분에 몇 층 더 올라간 1500 ~ 1600%의 건물 3채를 짓게 된거죠. 결코 사회 공헌 목적만으로 이 비싼 땅에 저런 빌딩이 들어선게 아닙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예. 저는 재미있는데 이야기를 들으신 분들은 다 표정이 비슷하더군요. 뭐.... 삐뚤어질테다. 


12월인데 꽃이 온실도 아니고 빌딩 사이, 길거리에 피어 있네요. 도쿄의 날씨란.


미쓰비시 1호 미술관 뒷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에 입구가 있기 때문에 이쪽을 정면으로 보는 게 더 맞을 수도 있지만 큰 거리 기준으로 그냥 뒷편이라 하겠습니다. 멋진 도심 정원이 펼쳐져 있네요. 


이 미술관을 짓는 데 230만개의 벽돌이 쓰였는데 당시 벽돌은 1968년 부수면서 거의 버렸고, 일본에서는 더 이상 이런 벽돌을 생산하지 않아서 중국에서 수입해 와서 지었다고 합니다. 설계도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서 22장의 부분 부분 남은 설계도와 사진을 활용하여 재현했다고 하네요. 


다채롭게 꾸며두었죠? 벽돌 건물이 이치고칸, 오른 쪽 건물이 마루노우치 파크 빌딩입니다. 34층 빌딩 중 1층부터 4층 까지는 마루노우치 브릭 스퀘어라는 이름의 상업시설이고, 다양한 샵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리고 에쉬레도 여기 1층에 있지요. 


에쉬레(Echire Maison du Beurre)에 도착했습니다. 2009년 오픈 이후 "한 번도 안간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열성팬들을 만들어낸 에쉬레 버터 전문 샵입니다. 버터뿐만아니라, 버터로 구운 크루아상, 각종 과자를 판매하는데, 크루아상의 경우는 오픈 후 30분 ~ 1시간 내 매진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듣던 것 보다 줄이 짧네요. 일요일 오후인데 가게 밖에 길게 줄이 늘어서있질 않아서 인기가 식은건가 했더니 원래 이렇다는군요. 이 시간에는 이미 몇 종류 남기지 않고 다 떨어지기 때문에 팬들이 안 찾아온다고. 


사실 이 가게가 오픈 하는 시간은 오전 10시 입니다. 그래서 전 원래 아침 9시 40분까지 이 가게 앞에 도착해서 크루아상 및 각종 과자를 구입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세상일은 마음 대로 안되는 법! 도착하고보니 1시 30분이 넘었고 거기에 일요일이니 솔드아웃 안내가 여기저기 붙어있네요. 가장 먹고 싶었던 '빠-다 쿠-키'는 역시 품절이군요.


남아있는 상품은 마들렌과 피낭시에 이 두 종 뿐이었습니다. 개당 가격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300엔 + 세금이었던 듯.


그렇다고 해도 역시 대기열은 길고, 손님은 계속 오네요. 인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계속 구워져나오는 피낭시에!


마들렌


이 두 과자만은 계속 만들어서 팔고 있습니다. 


버터도 팝니다. 한국 백화점 가격에 비해서는 또 30% 정도 낮은 가격. 한국 만물 호구설


가장 먹고 싶었던 분은 당연히 완판되셨고요,


카라멜과 버터과자 (Guimauve au Beurre)가 남아있긴 합니다만 굳이 먹어보고 싶은 타입은 아니어서 포기했습니다. 


과일이 들어간 파운트 케이크인가요? 이것도 버터가 좋으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했지만 고민 끝에 사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겨울이라 아이스크림도 그리 당기지 않아서 패스합니다. 


맛은 어땠느냐? 솔직히 처음 한 입 먹었을 때는 다른 마들렌이나 피낭시에와 차이점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별 특징없는 맛이어서 이걸 먹으려고 일찍 안일어나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서둘러 한입 먹기보다 살짝 녹이듯 끈기를 가지고 입에 머금고 있으면 숨어있던 버터 풍미가 확 치고 올라옵니다. 한국 어느 과자점에서도 맛보지 못한 진한 풍미가 일품이네요. 한 번 쯤 먹어봐야할 맛이라더니 정말 그렇습니다. 도쿄에 가면 재방문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가더라도 후회할 맛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그런데 이걸 먹고나니 이미 2시. 점심도 제대로 못먹고 케이크와 버터과자외에는 먹은 게 없네요. 급히 주변에서 정보도 없이 식당을 찾아봅니다. 


그래서 발견한 곳이 앙티브(Antibes), 지중해 요리를 내는 식당입니다. 프랑스 니스 부근의 작은 해안마을의 이름을 딴거라는 데 실제로는 메뉴 자체는 이탈리안에 가깝다고 보여지더군요. 뭐 저야 프랑스 남부 해안과 이탈리아 쪽 요리의 차이는 알지 못하니 뭐든 맛있으면 되니까요. 


사실 전혀 준비 없이 들어간 식당입니다. 이번 여행 중에 즉흥적으로 결정한 (기존 리스트에 없었던) 식당이 두 곳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앙티브였습니다. 가장 싼 3품이면 충분하다 싶어서 1,850엔짜리 코스를 주문했네요. 뭐 사실은 주문받는 분이 자리가 하나 남았는데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때가 대략 2시 경이었음), 주방 형편상 3품 코스만 가능하다고 해서 좋다고 주문했습니다.


파스타 메뉴의 구성입니다. 샐러드가 나가고 메인인 파스타를 다섯가지 중 하나 주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디저트가 나오는 전형적인 3품 구성이네요. 포르치니 버섯 리조또와 굴 파스타가 있길래 그걸로 주문했습니다. 


분위기. 연령대가 있는 손님도 있지만 젊은 층도 상당수 입니다. 아무래도 미쯔비시 이치고칸 미술관을 구경하고 주변 카페,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는 사람들이 다수 인 듯 하네요. 


샐러드가 나왔습니다. 평범한 구성. 맛도 특별할 건 없었지만 야채는 신선했네요. 아무래도 한겨울에 서울과 도쿄의 야채 경쟁력을 똑같이 취급하긴 어렵겠죠. 


스푼, 나이프, 포크가 기본으로 놓여집니다.


빵. 특별할 건 없지만 맛 괜찮더군요.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습니다. 


처음으로 나온 푸실리 파스타. 이런 쇼트 파스타들은 주름이 많아 면형 파스타보다 크림 소스와 잘 어울리죠. 


한입 먹고 나서 감탄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익힘이네요. 면 익힘과 간이 훌륭합니다. 굴은 몇개 되지 않았지만 신선하고 무엇보다 크림 소스와 함께 먹으니 풍미가 잘 살아있습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들어온 가게의 파스타 수준이 이 정도라니. 깜짝 놀랐네요. 그야말로 행운이죠. 


제가 시킨 버섯 리조토. 이 가격의 버섯 리조또에서 버섯 풍미가 이정도나 나도 되는건지 헷갈립니다만 맛있으니 손을 듭니다. 이런 집이 타베로그 평점이 높지 않다는 게 (3.5 정도였음) 일본 이탈리안 수준을 말해주는군요. 다만 둘다 양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에쉬레의 버터버터한 과자들로 이미 위장에 코팅을 하지 않은 후였다면 상당히 배가 고팠을지도 모르겠어요. 


디저트는 파스타만큼 훌륭하진 않고 평범했지만, 맛이 나쁘지 않았네요. 계피가 들어간 케이크와 무스 케이크. 그리고 생크림 및 약간의 잼과 함께 먹을 수 있는 2종 디저트였습니다. 파스타가 워낙 좋았길래 불만없이 먹어치웠습니다.


물은 별도로 시키지 않았으니 탭워터를 가져다 주었을텐데, 전혀 맛이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정수기 관리를 아주 잘하시는 듯.


마지막으로 차와 커피까지 코스에 포함되어 있네요. 만족스럽습니다. 


주말에 이렇게 도심 한 복판에서 2만원 정도 가격으로 점심을 즐긴다니.. 더구나 파스타 퀄리티로 생각하면 서울에선 딱히 떠오르는 데가 없습니다. 물론 싼 가격은 아닙니다만. 


일본 여행와서 일부러 먹으러 올만한 집이냐 하면 그건 모르겠네요. 이 부근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가끔 2만원 가지고 점심에 3품 코스를 먹는게 참 즐거울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여행자로서야 도쿄 전체에서 맛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선택해서 가봐야 하지 않겠어요? 더구나 최근 일본에는 런치 메뉴 경쟁이 점점 가열되어 1,000엔에 정말 좋은 3품 코스들이 많다고 하는데 다음에 여행왔을 때는 그런 런치코스만 먹고 돌아다녀도 즐거울 것 같네요. 


먹고 다시 1층, 정원으로 내려왔습니다. 약간 봄에 오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자. 다시 긴자로 돌아갑니다. 아까 여기 오기전에 만났던 마루노우치 일요 벼룩시장을 다시 구경하려구요.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