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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가 루이. 뭔가 명품 브랜드 둘을 합쳐놓은 듯한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케이크샵입니다. 로스엔젤레스에 간다고 하니 친구가 꼭 가보라고 추천해 주더군요. 


"그래봤자 미국 케이크아냐? 크로넛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형 요즘 부드럽고 세밀하기만 한 일본 스타일 케이크에 질렸다며?" 

(메종엠오를 너무 갔나? 뜨끔)

"프랑스 + 미국의 합작품인 느낌이랄까? 미국스럽지 않게 좋은 케이크들이야."


그래서 가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외관은 이렇습니다. 1층은 새로 단장했지만 위의 층은 오래된 벽돌 빌딩입니다. 이름은 브록맨 빌딩(Brockman Building)인데 1912년 오픈했다고 합니다. 1층은 보테가 루이가 사용하고 있고, 위의 층은 콘도로 분양하였는데 외관은 허름하지만 상당히 럭셔리한 콘도라고 해요.


저야 케이크와 몇몇 비에누아즈리를 기대하고 왔는데, 사실 보테가 루이는 빵, 케이크만 파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리와 피자도 파는 레스토랑입니다. 물론 케이크 이외에 다른 건 입에 댈 생각도 없지만요. 이날은 평일이라 사람이 없는 편이었는데 토요일날 들어오면 그야말로 미어터지는 인구밀도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요. 주말에 한 번 더 방문했을 때 입니다. 매주 방문객은 평균 15,000명 정도이고, 이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대략 400명이라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죠? 줄지어 서 있는 사람을 제대로 접객하려면 그 정도 인원은 필요하겠죠.


주방은 완전히 오픈 키친입니다. 평일에는 좀 여유가 있고 주방 스텝도 적지만, 주말에는 스텝도 발디딜틈 없이 빽빽히 몰려서 일하고 있더군요.


피자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뭐 구색이죠. 전문점이 많은 데 굳이 여기서 먹을 이유는 없죠. (라지만 여기 피자 상당히 훌륭하다고 합디다. 먹어보지 않았으니 저야 모르지만요)


한쪽 구석에는 리큐르를 마실 수 있는 바도 있습니다. 규모가 있게 오픈한 덕분에 여러 취향의 손님을 상대할 수 있도록 시설이 잘 되어 있네요.


케이크 종류는 다양합니다. 보테가 루이의 수석 파티스리 쉐프 알레한드로 루나(Alejandro Luna)는 베네수엘라 출신인데 부모를 따라 어릴 때 마이애미로 이민왔습니다. (사진에 있는 사람은 아니구요 어딘가 작업장에서 열심히 만들고 있겠죠.) 마이애미 작은 베이커리에서 이 일에 뛰어든 그는 이후 보스턴, 싱가포르(마리나 베이 호텔 메인 파티셰였음), 파리, 뉴욕의 여러 유명 매장에서 경력을 쌓고 마침내 로스 엔젤레스로 스카웃되어 보테가 루이의 제과부문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의 케이크는 어떤 느낌, 맛을 보여줄까요?


가격은 싸지 않습니다. 뭐 돈 걱정 하지말고 먹을 땐 먹어야죠.


에클레어 류도 보이고 하지만 이런 데 와서 에클레어를 먹진 않습니다. 저는 케이크샵에 처음 갈 때 꼭 고르는 게 있어서요.  


자. 케잌, 케잌을 보자꾸나. 왼쪽에 있는 건 미국스러운 케이크입니다. 색이 뭐 저래 했는데 피넛버터에 가운데 있는 건 라즈베리 젤리. 그래서 이름이 PB&J에요. (피넛버터 & 젤리). 하지만 우습게만 봐서는 안되는게 상당히 기술이 많이 들어가고 만들기 어려운 케이크입니다. 뭐 제 취향은 아니어서 아마 저 케이크를 고른다면 여길 한 열번쯤 가서 먹을 게 없어진 다음에나 '그래 한 번' 하면서 고를 듯 해요. 피넛버터 케이크라니. YUK. 그 옆에 있는 건 딸기 치즈겠고... 딸기 딸기 넘어가고, 바나나 크림 타르트에 소보로 (streusel)인건가? 여기선 고를게 없군. 좀 실망했지만... 그러긴 좀 이르지요. 


가장 왼쪽에 녹색 크림이 올려져 있는게  '피스타치오 라즈베리 갸또'입니다. 사실 이 중에서는 가장 먹어보고 싶었던 케이크인데 계산할 때 뭐에 홀렸는지 고르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몇몇 가게가 피스타치오 크림을 쓰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곳이 아직 없거든요. 여긴 어떨까 맛을 봐야지 생각했는데 왜 다른 걸 골랐는지 모르겠네요. 지금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 옆에 있는 건 레몬 타르트. 그 옆에 보라색이 RELIGIEUSE인데요.. 음 렐리쥬스, 룰리지위즈... 발음을 한국어로 적기가 좀 힘든 단어입니다. 어쨌든 제과에서는 두개의 슈 패스트리로 만든 케이크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때 눈사람처럼 아래 있는 슈가 위의 것보다 커야합니다. 보라색이 아리따워서 맛도 참 궁금하지요? 바닐라빈, 오렌지, 얼그레이, 초콜렛 등으로 만든 크림이 들어있다고 하네요. 보라색의 라벤더 케이크를 먹느라 이걸 고르지 않았습니다. 그 옆에 케이크는 패션 푸르트 머렝이 올려져 있는 케이크입니다. 사진에선 잘 안보이는데 리이치 젤리가 머랭위에 뿌려져 있고 패션 푸르트 커드가 머랭 아래 있데요. 베이스는 초콜렛 크러스트고요. 그 옆에 케이크 두개는 제가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위에서 말한 피스타치오 왼쪽에 있는 케이크는 생긴 것만 봐도 티라미수고, 그 왼쪽에 있는 동그란 케이크는 CRÉMEUX라는 이름이네요. 크리무, 크레뫼 정도로 발음되는데 다크가 아닌 밀크 초콜렛을 크림상태로 만들고, 다크 초콜렛 가나슈로 둘러쌓다고 합니다. 위에는 발로나 코코아 파우더를 좀 뿌린 '약한 초콜렛 덕후'를 위한 제품이죠. 저는 좀 더 진한 맛의 초콜릿 케이크를 골랐지요. 


그 옆에 있는 밀풰유는 '나폴레온'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데요 실수해서 고른 제품입니다. 제가 고른 건 라즈베리 나폴레옹이라고 이거에서 한 번 더 변형을 준 거긴 한데요. 쩝. 바닐라 빈이 듬뿍 든 크림을 쓰긴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diplomat cream'이 들었다고 적혀 있더군요. 미리 알았으면 안골랐을텐데... 커스터드 + 생크림(혹은 휘핑크림) 혼합해서 만드는 크림이거든요. 즉 헤비한 느낌의 크림을 먹기 좋은 상태로 약한 연하게 만드는 건데 제 취향은 아니에요. 이왕 먹을 거 진하게! 힘있게! 


그렇죠. 이렇게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케이크가 좋지요. 가장 오른쪽에 있는 케이크가 양갱인데 (아니 그냥 그렇게 생겨서 별명을 붙였어요)  자허 토르테(Sacher Torte)입니다. 뭐 오리지널 오스트리아 풍은 아니구요 다크 초콜렛 무스와 아프리콧 잼, 아프리콧 젤리(맨 위에 올려져 잇는 것) 등을 켜켜이 쌓은 케이크입니다. 굉장히 색다르고 맛있어서 골라볼 만 합니다.


두번째가 라벤더. 한눈에 보더라도 라벤더 색감이지요? 그런데 라벤더는 향이 좀 날뿐이고 내부는 밀가루를 쓰지 않은 화이트 초콜렛 무스입니다. 역시 추천 케이크. 세번째 돔형 케이크는 역시 화이트 초콜렛 베이스에 라임, 파인애플 등이 좀 들어갔는데 별 흥미가 안생기더군요. 가장 왼쪽은 마카롱을 좀 크게 만들고 라즈베리와 바닐라빈 크림이 내부에 있는 건데 그냥 마카롱을 먹으면 되죠. 뭐. 


제일 왼쪽은 브리오슈 안에 바닐라 빈 크림이 듬뿍인데, 처음부터 고르긴 좀 애매해서 패스했습니다. 그리고 초콜렛 덕후를 위한 케이크가 여기 있네요. 공주님 케이크(Princess Cake). 공주님은 초콜렛을 좋아해? 라고 생각해서 만든 케이크일까요? 다크 초콜렛 무스위에 초콜렛 글레이즈를 입히고, 공주님의 티아라 혹은 왕관처럼 초콜렛으로 꽃모양의 장식을 달았습니다. 마카롱 쿠키를 베이스로 했구요. 가운데 있는 노란 빛이 이쁜 (사진이 좀 과다노출인데 진짜는 정말 이쁜 망고+패션 푸르트 색입니다) 케이크는 패션 망고입니다. 그 옆에 애플 타르트 타탕이 있길래 살까 말까 꽤나 고심을 했는데요, 초콜렛 베이스로 하나 더 골라버렸습니다. 미안해요. 애플 타르트 타탕! 다음번엔 꼭 골라줄게요. 가장 오른쪽에 있는 건 체리 밤브(Cherry Bombe). 흠... 체리 케이크는 별로 취향이 아니어서 고르지 않았습니다.


케이크 가격은 모두 $12 ~ $14 정도 합니다. 상당히 비싼 편이지만 그만큼 크기가 커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오히려 여기에 비하면 한국 케이크가 가성비로 못하다는 느낌입니다. 


초콜렛 매장도 별도로 있네요. 뭐 여기 초콜렛에 대해서는 그렇게 칭찬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해서 패스하기로 합니다.


패스트리 종류가 좀 있고, 빵도 있고 작은 사이즈의 컵케이크도 있네요. 한국이나 텍사스에선 저게 정말 먹을 만한 게 못되었었는데 여긴 어떨까요? 궁금해서 하나 시켜보았습니다.


빵 맛도 궁금했는데 케이크를 이것저것 너무 사버려서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빵은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두어 번 방문으로 모든 걸 다 먹어볼 순 없는 일이죠. 


마카롱도 로스 엔젤레스에서 가장 수준급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Top10에는 항상 꼽히는데 더 맛있는 가게가 있는지 저는 모르죠. 다른 곳은 가본적이 없으니. 리틀 도쿄의 레떼 마카롱(Lette Macaron이 수준급이라던데...


마카롱 종류는 모두 17개네요. 이중에서는 로즈, 바닐라, 망고, 차이, 바이올렛 카시스, 얼그레이, 솔티드 카라멜, 그랑 크뤼, 피스타치오 정도를 먹어보았습니다. 


진한 색감의 마카롱들. 뭐 저 색을 천연재료로만 내지는 않았을테니 색소는 분명히 들어갔겠군요. 색소를 넣었다면 질색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저지만, 사실 그 색소란 게 맛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 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색소가 들어갔다고 마카롱을 먹지 않고 살순 없죠. (보테가 루이가 색소를 쓰는지 여부는 모릅니다. 그냥 저런 진한 색감을 내려면 천연재료만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뿐입니다.)


어쨌든 몇가지 마카롱을 먹으려고 사왔습니다.


보테가 루이에서 가장 놀란 것은 세련된 포장기술이었습니다. 포장지도 한 종류가 아니고 케이크 종류별로 다양한 색깔이 있었습니다. 버리기가 아까울 정도로 포장에 신경을 쓰고 예쁘더군요. 솔직히 저 포장을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포장해서 먹어라 라고 조언해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주말에 샀던 케이크 박스, 산뜻한 보라색 포장. 


또 다른 포장. 색감이 참으로 다채롭고 아름답기도 합니다. 포장 디자인과 인쇄비용에만 쳐도 작은 자본으로는 하기 힘들 듯 해요. 보테가 루이의 전주 소유주가 누구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SWIG Company와 같은 로스 엔젤레스 유명 부동산 회사로 추정됩니다. 보테가 루이가 유명세를 얻으면서 다운타운 지역으로 방문자가 늘어나고 가게 임대가 늘었고, 치안 문제로 어려웠던 콘도나 스튜디오 분양도 용이해졌죠. 덕분에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기 시작했고, 부동산 업체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한국도 음식점 하나가 소문나서 그 동네 경기가 살아나는 케이스가 종종 있는데 (예: 연남동 이노시시와 툭툭) 미국 부동산 업계는 어느 한 구역을 몽땅 사들이고 거기에 고급스런 음식점을 돈을 퍼부어 문을 열어서 비슷한 효과를 직접 만들어 내고 있는 듯 합니다.  


자. 이제 먹어보겠습니다. 우선 컵케이크. 한입에 꿀꺽할 수 있는 미니 컵케이크입니다. 맛보았는데 그동안 컵케이크를 우습게 본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버터크림 맛이 정말 깔끔하고 부드럽게 입안으로 넘어가네요. 카시스 컵케이크($3)였는데, 크림에서 조금의 짜증스러운 맛도 나지 않고 맛있습니다. 다음 번에 가도 하나 쯤 더 골라서 먹어볼 듯 하네요. 


티라미스를 사와서 먹어보았습니다. 뭐 생각했던데로 마스카포네 치즈와 커피의 향이 좋습니다. 생크림따윈 들어가지 않은 좋은 맛입니다. 생각해보니 생크림이 안들어 간걸 좋아하긴 하지만 들어갔는지 안들어갔는지 먹어보는 걸로만 알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마스카포네치즈가 듬뿍 들어가긴 했지만 생크림이 들어갔는지 여부는 모르는 걸로. 


밀푀유를 골랐습니다. 이름은 라즈베리 나폴레옹. 밀푀유는 케이크 만드는 솜씨를 보기위해 처음가는 제과점에서는 종종 고르는 제품인데 이건 좀 실패였습니다. 아니 아주 나쁜 맛은 아니었고 솜씨도 좋았는데 전 좀 더 힘있기를 원했거든요. 


카라멜라이즈한 퍼프 패스트리. 나쁘지 않더군요. 이거 제대로 만드는 가게가 거의 없지요. 뭐 여기도 상태가 만점은 아니지만 자르는 과정에서 이렇게 부서지고 갈라진거라 짐작합니다. 퍼프 패스트리가 자르기가 힘들단 말이죠. 씹어보면 제대로 만든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바닐라빈 크림 + 생크림의 디플로맷 크림과 라즈베리 젤리, 라즈베리 크림이 퍼프 패스트리와 조화를 이룹니다. 디플로맷 크림을 쓴 이유는 알겠네요. 확실히 제 취향은 아니지만 퍼프 패스트리에는 이 쪽이 더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다고 봅니다. 합격점!


초콜렛 글레이즈와 꽃 모양으로 오려붙인 초콜렛 공예 솜씨가 나쁘지 않네요. 안에도 아주 다크한 초콜렛 맛이 좋았습니다. 피에르 에르메나 장 폴 에벵에는 미치지 못해서 좀 아쉬웠지만요. 


에서 말씀드린 자허 토르테. 초콜렛과 아프리콧의 조화가 멋졌습니다. 다음 번에는 아마도 못먹어본 애플 타르트 타탕을 구매하겠지만 이 케이크도 맘에 드네요.


가장 만족감이 높았던 라벤더 케이크입니다. 그러고보니 라벤더가 이때 제철이었나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라벤더를 쓴 녀석들이 맘에 들었고 케이크도 그랬네요.


내부를 보시면, 화이트 초콜렛 무스와 레드 푸르트 퓌레가 가득합니다. 역시 밀가루 따윈 쓰지 않은 건강한 케이크. 다음 번에 가서도 있으면 또 선택할 듯 하네요.


마카롱 포장은 약간 사이즈가 작습니다. 뭐 다섯개만 사서 그렇긴 하지만요.


솔티드 카라멜, 카시스, 망고, 바나나 포스터


망고, 피스타치오, 얼그레이 마카롱. 나쁘지 않습니다. 가장 맘에 든건 사진에는 안나왔지만 솔티드 카라멜과 그랑크뤼라는 두 개의 마카롱이었습니다. 


나쁘지 않긴 한데 이건 꼭 먹어봐요 라고 추천하기는 쉽지 않네요. 솜씨는 좋지만 이 마카롱이 '여기서만 먹을 수 있다.'라는 건 잘 모르겠거든요. 좋은 재료와 맛을 낸건 맛는데 피에르 에르메에 비긴다면 아니긴 하지만... 뭐 하나에 $2.5 = 3,000원이 좀 안되는 가격은 매력적이네. 정도로 생각합니다. 아니 맛있어요. 맛있는 마카롱이긴 한데 기억에 남는 그런 건 아니었다는 거죠. 그래도 가성비가 높으니 다음번에 가면 또 한 박스를 사올겁니다.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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