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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기대에 가득차서 자리에 앉아 요리를 기다립니다. 뭐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이니 생일날이라고, '빵~빠라 빠라빵' 어쩌고 하는 효과음과 함께 'Congraturation!' 음악이 나오거나 종업원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만돌린을 켜며 Happy Birthday to you를 합창해 줄리도 없죠. 하지만 맛있는 음식으로 저에겐 충분합니다. 어디까지나 이건 '저를 위한 선물'인 것입니다.

이날 먹은 메뉴는 http://www.bocuse.com/upload/File/auberge/Carte-Menus-uk.pdf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시킨 메뉴는 Grande Tradition Classique, 일인당 210유로라는 끔찍한 가격입니다. 뭐 음료로 와인 한 병 잘 못시키면 300유로는 가볍게 넘어가버리는 메뉴라 눈물을 머금고 와인을 포기합니다. 시켜봤자 제 주량으론 다 마시지도 못할 게 뻔하고요. 그렇다 해도 비싸고 또 비싸지만 속으로 되뇌어 봅니다. '생일이여! 생일!' (뭐 생일이 아니래도 시켰을 거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긴 합니다.) 그리고 저렴한 스파클링 워터로 참아 보기로 합니다.

사실, 워낙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식당이라 음료는 꼭 와인을 주문하지 않아도 되요. (웨이터는 와인을 주문하도록 열심히 유도합니다만^^) 미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Diet Coke를 주문하기도 한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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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클링 워터는 Depuis 1778, 맛은 딱 스파클링 워터 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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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뮤즈 부쉬라며 가져다 준 것, 스프가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메뉴에 나와 있지도 않고, 웨이터가 설명을 해주었는데 프렌치로만 뭐라 말하고 가서-_-;;; 하지만 스프 자체는 맛이 무척 좋았던 것만 기억합니다. 슈는 별 맛 아니었습니다. 뭐 어차피 스프가 메인이고 슈는 적셔 먹는 용이니까요.

솔직히 무척 실망스러웠는데요 스프 맛이야 좋았지만, 달랑 이거 하나라니요. 다른 분들의 방문기에는 세 종류의 어뮤즈 부쉬 이외에도 세가지 테린이 나왔네 어쨌네 했는데 전 달랑 이거 하나 였습니다. Paul Bocuse쯤 되는 식당에서 손님 차별할 리도 없고 (설마 하는건가?) 아마 메뉴가 교체된 거겠지요. 옆 테이블도 똑같이 나왔거든요.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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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바게트, 갓 구운 고소한 바게뜨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저냥한 수준. 사실 여행하면서 프랑스에서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놀라왔던 것은 바게뜨였어요. Eric Kayser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La Maison Kayser(프랑스 사람들이 줄 서서 사갑니다.)에서 파는 바게뜨를 먹고 "바게뜨가 이리 맛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만... 이 식당의 바게뜨는 그 정도는 아니더군요. 아니 별 셋인데 그 정도는 되야하지 않나?

뭐 좋았던 점은 대부분 유럽 식당이 빵을 먹어도 돈을 내는 데 Paul Bocuse는 워낙 비싸서인지 빵 값을 따로 받지를 않더군요. ^^ 아. 코스를 시켜서 그런가? 그런데 빵은 정말 그냥저냥이었습니다. 단 한 종류여서 고르는 재미마저 없었던. 뭐 이 다음에 먹을 게 많으니 한 종류로 제한한 것도 고객을 위한 배려일 수 있겠습니다. 사실, 디저트 코스를 제대로 먹으려면 이 편이 더 바람직 할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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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케이스가 무척 예뻤습니다. 아! Paul Bocuse의 모든 접시나 그릇은 Villeroy & Boch에서 주문 제작하는 거에요. 팔기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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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뭐... 뭐지? 이 큼지막한 버터 덩어리를 맛보는 순간부터 의문이 구름처럼 증폭되어 갑니다. 별 셋 식당의 버터가 왜 이 정도 밖에 안되는거죠? 염분이 적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제가 좋아하는노르망디 지방의 버터보다 맛이 없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프렌치의 기본이 되는 놈이다보니, 그리고 그 동안 먹어온 버터에서 맛을 증폭시키며 기대하다보니, 거기다 처음 가보는 쓰리스타 레스토랑이니 '신이 내린 버터'급을 기대해 왔던 게 사실이었거든요. 뭐 이런 식이죠.

"식탁 바로 앞에서 버터를 분리해서 줄지도 몰라-_-' 만든지 10초-_- 밖에 안되는 버터.. 꺄아~-_-"
"갓 만든 버터와 갓 구운 빵의 향긋한 하모니..."
"어떤 정도의 염도일까? 너무 짜운 것은 싫은데..."

머리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갔지만, 정작 나온 건 어지간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으니.. 실망스러울 수 밖에요. 제 기대가 너무 컷던 것이죠. 어쨌든 위 버터는 '신'이 만든 버러~가 아니고 '인간'이 만든 '버터~'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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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llop of foie gras, pan-cooked and served with verjus sauce and lightly browned potatoes
메뉴를 처음 보았을 때는 조개 관자가 나올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프와그라를 얇게 편 놈이 나온다는 소리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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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에 올려진 장식은 Fried된 감자입니다. 웨이터가 crusty하다고 설명했는데 한마디로 감자칩이란 소리죠.^^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짜요. 하지만 놀랄만큼 완벽히 여분의 기름을 제거했고, 또 새콤 달콤한 소스와 함께 먹으면 나름 조화롭습니다. 이 요리에 쓰인 Verjus sauce는 덜 익어서 신맛이 강한 포도로 만든 소스를 말하는데요, 소스와 균형을 맞추기위해서 살짝 조린 포도와 사과를 첨가해 두었네요. 소스 자체는 너무 훌륭했습니다. 장식 밑에 있는 게 푸와그라에요. 먹어 본 푸와그라 중에선 손 꼽을만한 품질이더군요. 그리고 그 밑에는 감자 팬케익 정도 될까요? 재미있었던 건 이 요리의 각 요소를 따로 따로 먹으면 별 맛이 없는데 한꺼번에 잘라서 한 입에 털어넣으면, 놀랄만큼 조화롭습니다. 감자와 프와그라가 이런 조화를 이룬다니... 

하지만 전채 자채로는 좀 불만스러웠던 게, 식욕을 자극하는 맛은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사실 전 위에서 말한 다른 분이 먹어본 세가지 테린을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특히나 폴 보큐즈 양반의 특기라던 프와그라 테린을요. 하긴, 그 테린 메뉴도 식욕을 자극하는 건 아니었으니 이 식당 컨셉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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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와 소금통(열어보지 않아서 뭔지는 모름)은 이런식으로 정리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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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ffle soup V.G.E.
메뉴에는 1975년 대통령을 위해 창안한 요리라고 도어 있죠. 한 마디로 빵 속에 스프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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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면 이렇게 뜨거운 스프가 김을 모락모락 내뿜습니다. 트뤼플뿐만 아니고 깍둑썰기를 한 Beef와 몇가지 야채를 베이스로 한 스프입니다. 트뤼플 향은 진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그건 소고기 육향에 가려져서 그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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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적셔 먹는 것보다 그냥 스프만 먹는 게 훨씬 맛이 있습니다. 나름 건더기가 많기에 스프만 먹어도 상당히 배부른 메뉴에요. 따뜻하기도 하고 무거웠던 속을 풀어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사실은 이 요리는 Paul Bocuse를 대표하는 요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메뉴 가운데서 단품으로 가장 비싸기도 하고요. 일인분에 80유로라는 가격이죠. 그리고, 이 요리를 먹어본 건 행운이기도 하구요. 1975년 폴 보큐즈는 요리인으로서는 최초로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게 됩니다. 그 기념 만찬회는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 궁에서 열렸는데, 폴 보큐즈가 그 만찬회에서 대통령에게 대접했던 요리가 바로 이 요리라고 합니다. 아마도 Paul Bocuse 요리 인생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요리겠죠. 엘리제 궁의 자존심 강한 요리사들이 자신들의 주방을 양보한 건 그 때 단 한 번 뿐이었다고 해요. 이 요리는 엘리제 궁에서 처음 세상에 선보인 역사적인 요리인 셈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특별한 맛과 향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너무 미숙해서 일까요? 전 아직 프렌치를 잘 이해 못하는 것 같아요. 따뜻하고 맛있는 스프지만 감탄스러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하긴 별 셋의 코스요리라 해서 매번 고객을 깜짝 놀라게 할 필요는 없겠죠. 요리사의 의도는 아마도 손님이 메인을 먹기 위해 위의 상태를 기분 좋게 풀어주기 위한 게 아닐까 하고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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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ts de sole aux nouilles fernand point
Sole은 우리 나라 말로 하면 '참서대'라는 생선이라고 합니다. Sole은 넙치과 생선으로만 알았었는데 가자미목 참서대과로, 넙치나 도다리와는 다른 생선이네요. 이 요리는 사실 Paul Bocuse의 스승인 Fernad Point 페르낭 포앵이 고안한 요리라고 해요. 그렇다면 이 요리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셈이죠.

Paul Bocuse의 요리를 먹으면서 놀란 점은 소소의 완벽함이었습니다. 이 요리는 크림과 토마토를 사용한 소스로 알고 있는데요, 크림과 토마토를 조화한 소스가 이리 맛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항상 스파게티를 만들 때마다 치즈 베이스의 크림 소스로 할까? 토마토를 쓸까? 고민했는데 이 소스를 만들 줄 안다면 한 번 사용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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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선 요리 자체로는 불만이 컷습니다. 일단... 생선이 맛이 없었어요. 씹는 맛은 잘 살아있었지만 소스가 진했기 때문에 소스의 맛에 묻혀 생선 맛이 어떤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동양적인 생선 요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요? 스페인의 생선요리들은 너무 좋았는데, 프랑스 생선 요리는 아직 이해를 못하겠군요.

한국 요리 가운데, 참서대를 꾸득꾸득하게 말린 후에 쪄서, 양념해서 내 놓는 반찬이 있습니다. 생선의 매력은 그쪽이 훨씬 더 잘 살아있던 기억이 나네요. 소스 자체의 완벽함은 폴 보큐즈를 따라갈 곳이 별로 없겠지만, 참서대의 매력을 그 소스가 정말 살려주는 느낌은 아니었다는 거죠. (모르면서 뭔가 아는 것처럼 쓰려니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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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적한 페투치니스런 면입니다. 이탈리아 스파게티와는 좀 다른 컨셉의 요리인 듯 한데, 별 맛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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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Bocuse의 부인인 마담 Bocuse가 손님들 사이를 계속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 프랑스 어 한 마디 못하는 저에겐 그저 인사하는 정도가 고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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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jolais winemaker’s sherbet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와인 소르베, 보졸레로 만들었더군요. 알콜 도수가 일반 소르베보다 높아서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날 코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이 놈이었어요. 좀 서글프더군요. 별 셋 식당에서 호화로운 만천을 즐기면서 생선과 고기요리 사이에 나오는 셔벗이 제일 맘에 든 정도라니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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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드디어 메인 요리가 나왔습니다. 원래라면 Bresse chicken cooked in a bladder à la Mère Fillioux
가 나와야 했습니다만, 그리고 그게 Paul Bocuse의 간판 요리의 하나입니다만, 제가 스테이크를 맛보고 싶어서 주문을 변경했습니다. 프렌치 팬들이면 '아아! 아쉽다!'라고 탄식할지도 몰라요. 제가 안 고른 Bresse chicken은 정말 유명한 요리거든요. 

대신 제가 고른건 이 당시의 메뉴에는 나와 있지 않은 요리에요. 이날 메뉴에 씌여있는 요리는 전부 Veal (송아지)거나 어쨌든 프와그라를 곁들인 Beef 메뉴는 없었거든요. 아마도 푸와그라를 곁들인 쌰또브리앙(Chteaubriand-소의 안심) 스테이크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소스는 그리스비앙 소스겠네요. 데미그라스 소스라고 보기엔 너무 진하고 짰습니다. 뭐 샤또 브리앙 레시피에는 데미 그라스 소스를 쓴다고 되어 있는 것도 있고 그리스비앙 소스를 쓴다고 되어 있는 놈도 있으니 주방에 물어보기전엔 정답을 모르는 거겠죠.

소스에 곁들여 있던 것인 Terragon (타라곤)인지 Shallot (샬롯)인지 짐작도 못하겠습니다. 트뤼플일 수도 있지만 촉감이 딱딱했기에 그건 아닌 듯 하고요.. 솔직히 소스가 너무 진하고 짯기 때문에 뭔지 맛과 향을 느끼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와인 안 시킨걸 후회했지만 여행 경비가 별로 안남아서-_-;;; 무리를 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하지만 역시 스파클링 워터론 이 진한 소스를 상대하기에 역부족이더군요. 뭐... 안심보다는 등심을 좋아해서 샤또브리앙 부위가 별로 맘에 안들어서 모든 게 불만스러웠을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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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요리를 제대로 즐기려면 와인을, 그것도 보르도나 상급 브루고뉴를 함께 해야지 않을까 싶어요. 소스 맛이 그냥 먹기엔 너무 진해서, 고기맛을 완전히 지워버렸거든요. 때문에 실망스런 요리가 되어버렸습니다. 프렌치 고급 식당에 가면 와인의 선택은 필수인 듯 합니다. 역시! 전 별 셋쯤 되면 와인을 안시킨 손님을 고려해 줄 줄 알았는데 별 셋이라서 오히려 자신의 맛을 지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에게 이 스테이크는 전혀 맞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소금과 약간의 허브로만 익힌 야성미 강한 스테이크에 익숙해 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Prime급의 고기를 Dry Aged해서 숙성시킨 Ribeye를 소금간만으로 구우면 그 맛이 기가 막히지요. 거기에 익숙해져서, 때문에 진한 소스로 고기 맛을 덥는 듯 한 이 스테이크는 별로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와인을 시켰다면 아마 그 평가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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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면입니다. 완벽하게 주문대로 미디엄 레어, 육즙도 완벽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저 푸와그라의 두께를 보세요. 아마도 최고중에 최고 품이 아닐까 합니다. 입안에 넣으면 그 상태로 스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 환상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먹어본 프와그라중 최고였어요. 흔히 한국에서 맛보는 Foie Gras de Canard(오리 간)가 아니라 foie gras d'oie (거위간) 이라는 이야기겠죠.

하지만, 이 요리에서 제가 가장 놀란 건, 생애 최고였던 큼지막한 프와그라가 아니라 저 아래 감자였습니다. 세~네개가 사이드로 곁들여져 있었는데, 전 이토록 완벽하게 익혀진 감자는 먹어보지 못했어요. '완벽하게 익혀졌다.' 그 말 이외에는 어떤 수식어도 덧붙일 수 없네요. 감자의 모양도 쌍동이처럼 동일하게 다듬었더군요. 레스토랑에 가면 감자나 당근을 깎는 걸 배우게 되는데, 일류 레스토랑일 수록, 완벽하게 동일한 모양으로 다듬어져서 나옵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호텔에서도 이렇게 완벽하게 동일한 녀석을 먹어 본 적이 없어요. (뭐 제가 먹어본 요리들은 결혼식용 연회요리였으니 수준이 낮았던 걸 수도 있어요.) 어쨌든 고급요리점이면 가장 기본으로 해야하는 요소를 완벽히 가지고 있는거죠. 감자의 모양이 동일한 건 모양 문제뿐만 아니라 맛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열을 가함으로써 감자를 익힌 상태를 똑같이 만들 수 있는거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말 완벽하게 다듬어지고 익혀진 감자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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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명하고도 또 유명한 디저트 코스입니다. 먼저 Paul Bocuse의 자랑이라는 치즈 코스에요. 프랑스 각지에서 가장 유명하고 맛있는 치즈들만 골라놓았다고 소문이 높습니다만, 저야 치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라서 크리미 해보이는 것 3종을 맛보고 마쳤습니다. 사실 케이크 쪽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치즈로 배를 채우고 싶지 않았거든요.

위에 있는 치즈 전부를 선택해도 상관없기 때문에 치즈를 좋아하시는 분이면 무척 고민하실 거에요. 영국 고든 램지에 갔을 때, 어느 노신사분이 무척이나 망설이면서 치즈를 고르고 그에 걸맞는 와인을 새로 주문하시더군요. 치즈를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겠죠? 아마 이 치즈 카트는 프랑스의 자랑이자 문화의 정수일지도 모릅니다만... 전 케이크가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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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크리미한 치즈라니, 블루 치즈는 아직 열을 가하지 않으면 먹지 못하지만 이런 치즈라면 환영이지요. 솔직히 메인 디쉬보다 치즈쪽이 더 감동적이었어요. 미국에서도 Whole Foods에서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꽤 비싼 치즈들도 여럿 맛보았지만 이 치즈들을 능가하는 건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뭐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걸요. 사실 하나 더 시켰었는데 사진을 찍지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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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테이블에서 디저트 코스를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7개 정도의 디저트 카트가 테이블을 포위하고, 그 가운데서 고르면 웨이터가 서브해주는 방식이에요. 사진은 잘 나오지 않았는데 실제로 보면 무척 호화찬란해 보입니다. 사실 이 요리 스타일이 프렌치의 고전 스타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식과도 비슷하달까요? 나폴레옹 시대, 외교를 담당했단 탈레랑(Talleyrand)의 전속 요리사인 마리-앙통 카렘(Marie-Antoine Carême)이 확립했던 스타일로, 테이블위를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해서 손님들의 탄성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프랑스에서 현재처럼 하나씩 요리 맛을 즐기게 된 건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서 라고 합니다. 유르반 드보아(Urbain Dubois)라는 요리사가 러시아의 추운 날씨에서는 한꺼번에 요리를 내는 방식이 어렵기에 하나씩 요리를 대접하는 러시아 방식을 배워와서, 파리에서 적용한 게 호평을 받아 이후 정착된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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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다음과 같은 곁들임 과자를 내 옵니다. 위에 한 층이 더 있었는데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네요. 솔직히 이때는 상당히 배가 부른 상태여서, 이 곁들임 쁘띠들은 먹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다음 번에는 웨이터에게 차를 이 시점에서 주문해야겠어요. 보통은 디저트를 다 먹으면 차 or 커피를 물어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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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먹어본 것 가운데 가장 맘에 들었던 초코 무스입니다. 하긴 일류 초콜릿숍에서는 이 메뉴를 먹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네요. 씁쓸하면서도 기분좋은 초컬렛의 느낌입니다. 디저트 가운데선 이게 최고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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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브륄레, 잘 만들었습니다만.. 전 먹기 직전에 바로 구워주는 크림 브릴레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습니다. 별 셋 쯤 되는 식당에서 위의 설탕껍질을 구운지 10분이 넘어 보이는 걸 카트에 밀고 가져와서 서빙해주다니... 실망스러웠어요. 별이 없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이런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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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를 달라는 말에 이런 식으로 예쁘게 서빙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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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렛 케이크. 역시 다른 일류 초컬릿 가게에 비해 별로였습니다. 당연한 결과일까요? 저쪽은 초컬릿계의 세계 대표급이고 이 곳은 아무리 별 셋 레스토랑이라지만 파티셰로 일하는 것은 고작 2~3명, 당연히 초컬릿과 케이크, 타르트, 빵, 아이스크림 모든 분야에 정통하는 건 한계가 있죠. 게다가 일정 수준이 넘은 사람은 자기 가게를 열길 원할테니까요. 가령 마카롱만 해도 La Duree에 비해 못하잖아! 라고 하는 건 좀 억지스럽지요. La Duree 마카롱은 가격대도 높고, 훨씬 전문적으로 만드는 데다 보다 좋은 재료를 쓸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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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210유로 메뉴와 다른 메뉴의 차이점은 이 메뉴를 시키면 폴 보큐즈씨가 직접 나와서 기념 촬영을 해준다는 거죠. 다녀오신 분들은 이걸 보고 여전히 폴이 정정하게 요리를 하고 있다.. 고 감격하시는 분이 많은데요, 폴 보큐즈씨 (현재 83세의 고령)가 하는 일은 '함께 사진 찍기' 정도가 고작입니다. 물론 메뉴를 짜거나 새로운 레시피를 만드는 일은 하실 수 있겠지만 주방에 들어가지 않은지는 오래 되었다고 합니다. 식당 관계자에게 물어 보았으니 틀림 없을 것이고, 택시 기다리면서 30분간 주방을 엿보았는데 폴 보큐즈씨는 보이지 않았으니... 증거도 있는 셈이죠. 게다가 일단 사진 찍을 때 맡아보았지만, 음식 냄새가 몸에서 전혀 안났거든요.

그나 저나 제 옷차림은 정말로 등산복이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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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셋이라기엔 너무 평범했던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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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베리를 곁들인 칵테일, 리큐르가 너무 강해서 (전 술에 약하니까요.^^) 조금 먹다 말았습니다. 유일하게 남긴 디저트가 되겠네요.


말 그대로 열대과일이었습니다.^^


미슐랭의 별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요소는 서빙인 듯 합니다. 사실, 별 하나와 별 셋의 요리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이라면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도 일반인들에게는 무리죠. 물론 가격차이 있기 때문에 재료의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별 하나 레스토랑에서는 저렇게 두꺼운 푸와그라 따윈 절대 쓰지 못할거에요. 하지만 맛의 차이가 그리 크냐고 하면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가장 달랐던 건 서빙의 수준이었어요. 미국에서 top-class 레스토랑을 가면 수석 웨이터 정도는 되어야 생기는 관록이 모든 웨이터들에게 붙어 있는 듯 했습니다. 서빙의 목적은 그래요, '가능한 고객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 때문에 미국에서 처럼 'Is everything OK?' 같은 평범한 질문은 절대 하지 않죠. 유럽에선. 그네들의 서빙은 마치 예술가들의 동작 같습니다. 하나 하나가 기품이 있어요. 물론 그런 태도가 꼭 편안하지만은 않습니다. 험한 식사예절에 익숙한 저같은 범인에게는 좀 불편하기도 했지만요. 

위의 사진은 Green Tea를 타주는 웨이터의 모습입니다. 기품있죠?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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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는 좀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아마 홍차는 잘 알겠지만 녹차는 잘 모르는 듯 하군요. 역시 한국/일본에서가 아니라면 녹차는 다시 주문하지 않을 듯 합니다. 역시 서양에선 본고장 홍차를 주문해야 정답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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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210유로에 스파클링 워터와 차를 포함해서 이리 나왔습니다. 팁을 포함하면 250유로 정도 (팁이 짜게 준 편이지만 정말 돈이 없었어요.-_-) 주고 나온 듯 하네요. 대부분 이런 식당에선 20% 정도는 주는 게 예의라고 하니까요.

다 먹고 나서, 비가 오는지라 쩔 수 없이 택시를 부르기로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주방을 훔쳐봅니다.


오오오! 그득그득한 Mauviel 주방기구, 구리 주방용기마다 구리 색감이 조금씩 다른 데, 저 색감은 아무래도 Mauviel인 것 같아요. (물어보진 않았으니 알 순 없지만, 제가 가진게 Mauviel이라^^)


구리 용기가 그득하죠? 모두들 바쁘게 바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계 요리사도 한 명 있긴하더군요. 일본 혹은 중국 사람으로 보이던데 일본인일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그럼 왜 생선요리가 그따위 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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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사진은 뒤쪽 화장실 가는 길, 주방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고 이 사진은 레스토랑 정문 쪽에 있는 유리창을 통해 찍은 사진입니다. 입구 도어에도 있는 마스코트가 여기 저기 보이죠?



활기찬 주방이로군요. 앞에는 다양한 요리들 -아까 스테이크에 곁들여 있던 감자찜도 있군요. - 이 다음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참 아름답더군요. 그보다 구리 냄비들 정말 탐납니다.


비가 그쳐서 중간에 택시를 내리고, 밤비가 내리는 리용, 강가를 걸어봅니다. 조명도 아름답고 분위기도 괜찮아요. 사람이 없어서 무섭다는 것만 제외하면-_-;;;


리용의 밤 풍경, 아름다운 도시지만... 마음 속에는 실망이 가득합니다. 다른 원스타 레스토랑 세곳을 가는 게 훨씬 더 보람있었을 거에요. 아마 Paul Bocuse와 저와는 맞지 않는 거겠죠.

정리하자면,

*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큰 법. 별 셋이라고 신의 요리를 내는 건 아니다.
* 완벽한 소스, 완벽한 밑준비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입맛과 꼭 맞는 건 아니다.

* 치즈 코스는 완벽, 하지만 난 치즈에 아직 익숙하지 않음
* 와인을 안 시키면 코스의 매력이 반감되는 건 역시 프랑스스러움. 스페인은 안 그랬는데.
* 디저트는 실망, 세계 top-class 레벨의 디저트가 골고루 나오는 건 절대 아님. 뉴욕의 식당에선 거리의 빵/케이크 샵이 워낙 형편 없어서 레스토랑 쪽이 맛있었지만 프랑스나 일본에선 잘 나가는 파티셰는 자기 가게를 갖기 때문에 레스토랑 쪽이 오히려 떨어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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