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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가장 기대를 한 르 버나댕을 점심에 방문했습니다. 호텔에서 길 건너면 바로 있는 레스토랑이라 느긋하게 방에서 노닥거리다 밥먹으러가니 편하더군요. 2017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레페르베상스 등 프렌치를 두엇 방문했는데, 동행분이 괜찮지만 르 버나댕은 못따라가네! 라고 평해서 엄청 기대를 하고 갔습니다. 


르 버나댕은 잘 알려진대로 1972년, 프랑스에서 쉐프 Gilbert Le Coze와 그의 여동생 Maguy가 파리, Bernadin 거리에서 오픈한 식당이라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Les Moines de St. Bernardin이었는데, 1986년 뉴욕으로 이전하면서 원래 이름에서 버나댕만 남기고 이름을 변경했다고 하네요. 하긴 미국 고객들에게는 Les Moines 어쩌고 하면 너무 길지요. 1994년 오너 쉐프인 Gilber가 급성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하고, 이후에는 Eric Ripert가 쉐프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 직원 성희롱 문제로 고소당한 상태인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르 버나댕의 분위기가 느껴지십니까? 서빙은 정말 쓰리스타 레스토랑이 무언지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뭐... 3스타 레스토랑을 두어번 가본 주제에 할말은 아닌 것 같지만... 원, 투스타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바로 이틀 전 방문한 델 포스토나 마레아의 경우는 친절하긴 한데, 이탈리안 사람들의 특징일지 10년 지기같이 친근하게 굽니다. 가끔 접시를 다룰 때 소리를 내든가 하는 기본적인 실수를 종종 저지르기도 하구요. 반면, 르 버나댕의 서비스는 음식을 가져오고, 물어보고, 서빙하는 타이밍 하나하나가 군더더기가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말투조차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모든 웨이터들이 알맞은 톤으로 미소를 지으며 응해줍니다. 다른 레스토랑이라고 울상인 표정으로 응대한 것은 아니지만 델포스토는 설명을 시작하면 상당히 말이 많고, 묻지도 않은 개인의 의견이 들어간다든가 했고, 레페르베상스는 공손하지만 묻기 전에는 대답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좀 있었는데 여기는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궁금할 것 같은 것은 설명해주고 (다른 테이블의 경우는 설명이 짧은 것도 봤습니다.) 혼자서 외롭게 있는 손님은 자주와서 대화상대도 해주고 서비스도 좀 더 가져다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그 손님이 팁을 많이주는 걸로 이미 공인된 경우겠지만요) 


테이블마다 고객에 맞춰서 서비스를 해주고 전혀 어색하거나, 부담되지도 않게 물 흐르듯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테이블의 생화 장식. 꽃이 어엿브기도 하여라.


Bernardaud에서 만든 Ecume 시리즈 접시입니다. 도쿄 레페르베상스도 같은 접시를 썼죠. '거품'이라는 의미라고 하네요. 접시 가장자리의 오돌도톨한 무늬가 거품을 나타냅니다. 


아뮤즈부쉬로는 대여섯 요리가 예쁘게 나오는 걸 좋아하는터라, 맨 처음 투박하니 크루통과 발라먹을 연어 리예뜨를 가져다주니 속으론 좀 뜨악했습니다. 


시작부터 좀 실망스럽네. 좀 이쁘고 다채로운 거 못주나? 속으로 생각했는데 와! 연어 리예뜨. 이게 물건이었습니다. 아주 살짝 열만 가한 듯한 연어와 훈제한 연어 두 종류를 크림치즈와 섞어 리예뜨로 만들고, 차이브와 같은 허브를 섞은 단순한 것인데, 그것만으로 왜 이렇게 맛있는 것이란 말입니까? 정신없이 퍼먹고 리필하려다가 간신히 참았습니다. 코스는 길고 여기서부터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여러 종류의 빵을 가져다 줍니다. 


적덩히 골라봅니다. 전부 나름 괜찮은 수준이었습니다. 미국 레스토랑에서 기대할 수 있는 딱 그정도? 델 포스토의 바게띠니가 너무 특별한 것이겠죠.


동행분은 크뤼그를 시킵니다. 


저는 뭔가 칵테일(알코올 없는)을 시켰는데 맛은 별로였네요. 


버터의 온도는 알맞게 서빙되어 옵니다. 


빵에 발라먹으니 나름 괜찮지만, 대단한 맛은 아니었기에 맛만 보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이정도 빵으로 배가 부르면 돈이 아깝죠.


코스의 시작입니다. 캐비어 타르타르. 


방어를 이제 하마치라고 부르는 건 미국 레스토랑에서는 흔한 일인가 봅니다. 재료 설명에 대놓고 Hamachi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방어인데, 일본에서는 40cm 전후되는 방어를 관서에서는 하마치, 관동에서는 이나다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하마치를 세비체풍으로 조리했다고 할까요? 좀 더 잛게 썰고, 레몬, 라임맛 나는 산미있는 소스로 재우고, 소스 자체는 젤리처럼 만들어서 덧붙여두었습니다. 서양에서는 Sea lettuce라고 불리는 갈파래속 식물(그냥 파래의 한 종류)을 넣어 두었구요. 위에 올린 것은 Osetra Caviar입니다. 철갑상어 알이고, 당연히 양식입니다. 


소감은? 코스 중에 가장 임팩트가 약한 요리였습니다. 캐비어를 많이 먹지 못해서 좋은지 잘 모르겠다! 정도?  더구나 생선살을 저렇게 잛게 다진게 맛이 없진 않지만 제대로 된 방어회를 알고 있다면 굳이 저렇게 먹진 않지요. 다만 물회 같은 것 대신 이렇게 잘게 다시고, 세비체 풍으로 조리한 회덥밥 같은 걸 만들어주면 서양인도 먹지 않을까 생각은 합니다. 


두번 째 요리는 랑구스틴(Langoustine). 크고 튼실합니다. 먹어본 랑구스틴 중에서는 제일 좋은 놈이 아니었나 싶네요. 


발사믹에 트러플을 약간 섞어서 뿌려주네요. 


해체해서 먹습니다. 오. 멋지네요. 랑구스틴을 동남아 레스토랑 여기저기서 먹었을 때는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이 놈은 끝내주는 맛입니다. 


크뤼그를 다 먹고 화이트 와인을 글래스로 주문했습니다. 해산물과 잘 어울린다네요.


뭐 저야 맛을 보지 못했지만 색은 예쁘더군요. 


조개(Scallop)관자 요리였는데, 조개 모양의 접시에 나왔습니다. 올려진 야채는 Sea beans라 불리는 바다 해조류 같은데 한국어로는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군요. 조개관자는 버터로 조리했는데 이 버터가 요즘 일본풍의 영향으로 많이 쓰는 Bonito Butter입니다. 가다랭이 포를 끓여서 만든 다시를 진하게 조린다음, 버터와 레몬즙과 섞어서 일개월 정도 같이 숙성시켜 쓰는 버터라고 합니다. 감칠맛은 확실하겠네요. 


버터 소스를 부어줍니다. 정말 감칠맛이 폭발하네요. 조개 관자를 이렇게 맛있게 먹어본 적이 있던가? 라고 생각하게 될 만큼 대단한 맛입니다. 일본 요리가 서양 해산물 요리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 지도 알게된 요리였습니다.


광어 (halibut)가 나옵니다. poached했다고 메뉴에 써 있는데 토막낸 생선의 살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끓는 물에서 조리해야 합니다. 보통 일본풍의 영향으로 껍질을 남겨두는 데, 여기서는 껍질은 미리 제거했네요. 하얗고 붉은 것은 무우입니다. 소스 자체가 일본풍으로 무우와 생강 다시라고 메뉴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무우도 일본어 발음 그대로 Daikon Giner Dashi라고 설명하더군요. 


소스는 일본 풍인데, 일본 레스토랑의 그 맛을 능가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일본 레스토랑 생선요리 이상의 폭발적인 감칠맛이에요. 일본에서 먹은 생선요리들이 잘 구워졌지만 뭔가 불만이 있었는데 이 요리를 먹고보니 알겠네요. 먹는 사람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강한 맛이 있습니다. 헬리벗도 괜찮게 요리할 수 있네... 정도의 느낌으로 먹었는데 (지금까지 미국 레스토랑에서 먹은 헬리벗 요리는 그렇게 만족스러운 맛이 아니었거든요.) 나중에 델 포스트에 또 가서 헬리벗을 먹고 헬리벗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하게 됩니다. 헬리벗은 참 맛있는 생선이에요. 미국 대부분 레스토랑이 거지같이 요리해서 그렇지. 


이번 여행에서 맛을 들인 '오이'가 들어간 칵테일. 이름은 모르는데 오이가 들어간 알콜없는 칵테일로 해달라고 하면 대부분 레스토랑에서 비슷한 맛을 만들어 가져오더군요. 오이 모히또(Cucumber Mojitos), 혹은 오이-생강-모히또(Cucumber Ginger Mojitos), 오이모히테일(Cucumber Mocktail)이라고 불리는 모양입니다. 6월이라 시원한 느낌도 좋고 부담도 없고, 괜찮은 칵테일이네요. 술 못마시고 오이는 좋아하는 분께 추천합니다. 


기대하던 요리가 나왔습니다. Dover Sole. 서대와 비슷한 생선인데 서대보다 훨씬 크기가 크다고 합니다. 예전에 폴 보큐즈에서 먹었던 Filet De Sole Aux Nouilles의 Sole보다는 작아 보였는데, 맛은 이쪽이 훨씬 강하고 좋았습니다. Shallot이 들어간건 비슷했는데 Lemon맛의 소스로 잘 정리를 해주더군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던 생선이여!


메인입니다. 생선요리와 고기요리가 함께 나왔네요. 사이즈 좀 보세요. 이게 고양이 간식이지 어디 사람먹을 겁니까? 라지만 코스요리니 배가 부르긴 하더이다. 그런데 요리 이름이 "Hawaian Walu and Japanese Waguy" 네요.


뭐라고? 이거 먹어도 되는건가? Walu는 하와이에서 불리는 이름이고 미국에서는 oil fish, 한국에서는 기름치, 진짜 이름은 Escolar라고 불리는 물고기인데요, 한국과 일본에서는 식용으로 쓰는게 금지된 생선입니다. 생선을 잘 모르는 서양인이라 몰라서 쓰는 건 아닐테고 왜 이런 걸 메인 메뉴로 내놓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 물고기의 지방은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왁스 에스테르(Wax Esters)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무슨 말인가하면.... 이 물고기의 지방은 플라스틱처럼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성분입니다. 그래서 먹으면 어차피 소화 못시키고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 설사 등을 하기도 한다고 해요. 어쨌든 조금 먹으면 문제가 없어서 옛날에는 참치로 속여팔거나 회덥밥용으로 쓰이기도 한 모양이에요. 그런 물고기를 도대체 왜 해산물 전문 식당에서 내는거죠?


곁들임은 토마토가 들어간 롤입니다. 


와인소스를 부어주더군요. 와규는 A5, 녹아내리는 듯 한 맛이었고, Walu도 선입견없이 먹어보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여기저기 알아보니 왜 뉴욕 몇몇 쉐프들, 심지어는 그래머시 태번(Gramercy Tavern)의 John Schaefer도 Walu를 즐겨 사용한다고 하네요. 그 이유는...


요리하기가 쉽고 (지방이 많아서 오버쿡 되기가 함듭니다.) 

더 중요한 것은 "먹어도 살 안찌는 생선!이래요."


말씀드렸죠. Wax Ester는 조금 먹으면 탈이 나지 않고, 다 배설되버립니다. 소화되서 혈관을 막아 혈관질환을 일으킬 확률도 없어요. 뉴욕의 요리사들은 그걸 Selling Point로 잡았다고 합니다. 기름진 지방의 맛만 느끼세요. 살은 절대 안찝니다. 와! 다이어트 식품의 극의라고 아니할 수 없네요. 감탄합니다. 서양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이여!!!


자. 이제 디저트 코스입니다. 메이플시럽을 곁들인 블루베리와 요거트입니다. 블루베리에 요거트는 제가 아침마다 먹는 음식이지만, 여기 요거트는 무려 '훈제'한 요거트네요. 요거트를 훈제해서 메이플 시럽과 섞은 블루베리 퓌레를 가운데 담고, 곁에는 요구르트와 으깬 크래커를 섞은 것과 블루베리를 곁들였습니다. 향을 즐기기에는 좋은 디저트였는데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은 들었네요. 하지만 디저트로는 어울립니다. 


요거트를 훈제가 뭐냐고 유튜브를 찾아보니 진짜 훈제를 하는군요.  


두 번 째 디저트, 루봐브(Rhubarb). 


맨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은 리몬첼로(limoncello) 소르베. 리몬첼로는 이탈리아 남부의 레몬으로 만든 음료라고 하네요. 그 밑에 있는 하얀 것은 마스카포네 치즈로 만든 Crémeux, 소스처럼 뿌려준 것은 루봐브 마말레이드입니다. 흔히 알고 있는 마말레이드보다는 액체 상태에 가까웠지만요. 


이전의 훈제 요거트와 마찬가지로 무난한 디저트였습니다. 코스로 나오는 생선요리처럼 놀라운 맛은 숨어있지 않네요. 별 셋 레스토랑이라도 이정도면 되겠지?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미냐르디즈와 차, 커피 등을 시켰습니다.


초컬렛, 마카롱, 젤리, 하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초콜렛 베이스였던 것 같군요. 뭐 이것들도 그럭저럭. 


차는 깔끔하게 나오지만 대단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디저트는 평범했지만, 별 셋 레스토랑답게 서비스도 훌륭하고 요리도 멋졌습니다. 특히나 일본적 요소를 가미해 감칠맛을 강화한 요리들은, 원산지(?)인 일본 레스토랑의 세련된 맛을 때려눕히는 듯, 강한 맛이 일품입니다. 뉴욕에 갈 때면 또 들리고 싶네요. 사실 이 날 점심을 먹고는 너무 만족해서 바로 이틀 뒤 저녁을 예약하고 (테이블은 만석이라 Bar자리로 예약했었네요.)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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