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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버나댕에서 밥을 먹은 다음에, 이날도 오후 내내 MET에서 보냈습니다.. 라고 하지만, 프렌치 레스토랑의 풀코스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리고, MET는 문을 5시 쯤 닫기 때문에 고작 두어시간을 구경했을 따름이네요. 뉴욕에 살았으면 정말 MET 회원은 무조건 했을 것 같습니다. MET 다녀온 이야기는 쓰기 어려우니 또 넘어가고-_-;;;;


르버나댕에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지만, 저녁을 굶을 수는 없는 법. 마침 Twitter에서 누가 디 파라(Di Fara)피자가 오늘 행사가 있어서 손님이 별로 없다!라고 써두었기에 '앗싸!' 하고 출발하기로 합니다. 피자는 어떻게든 먹을 수 있지만 줄은 서기 귀찮잖아요? 라지만... 자리에 앉지 못하고 To-Go만 가능하다는 말을 보지 못했네요. (먼산-_-)


Di Fara Pizza는 이번 여행 중에 방문한 식당 중 맨해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던 레스토랑입니다. MET 뮤지엄에서 나와서 Q 라인을 타고, Avenue J라는 역까지 1시간쯤 걸렸네요. Avenue J라니 누가 이 지역을 개발했는지 참 성의없게 이름을 붙였네요. Avenue A부터 Z까지 있답니다. 


이 부근은 Park Slope라는 지역인데요, 공립학교 수준도 높고 이웃들 소득이 전반적으로 높아서 브루클린 쪽에서는 살기 좋은 동네로 통합니다. 2010년 뉴욕 매거진에서는 이 지역을 살고 싶은 동네 1위로 꼽기도 했다는군요. 도쿄로 치면 기치조지같은 곳인가봅니다. 한국은 분당 정도? 잘 모르겠네요. 건물들이 미국스럽지않고, 영국 런던 교외에서 본 것과 비슷하군요. 방 3개 정도있는 아파트가 여기서는 가장 저렴한 집 축에 속하는데도 가격은 70만~100만 달러. 가격이 만만치는 않습니다. 알아보니 여기는 Park Slope중에서도 집값이 좀 싼편인 지역이고, 북쪽 Prospect Park쪽으로 가면 비싼 집들이 많다는군요. 3~5백만 달러 집들이 즐비합니다. 역시 공원이 있는 쪽이 비싼건 만국 공통이네요.


Di Fara 피자가 보입니다. 정말 줄이 별로 없네요. 


사전에 얻은 정보대로, 손님은 없었는데 아뿔싸 앉아서 못먹고 To-Go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유명한 매장이라 그럴듯한 파티인줄 알았더니 나중에 보니 동네 주민 몇명이 애들 데리고와서 생일파티하는 거더군요. 아니 손님이 몇명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한 매상을 포기하고 저렇게 하는게 가능할까요? 1959년부터 60년 이상 운영하는 동네 친화적인 가게니까 가능할 거 같습니다. 


하지만 To-Go만 가능한데 호텔로 돌아가려면 1시간은 걸리고, 남의 가게에 들어가 음식을 먹을 수도 없죠. 피자는 뜨거울 때 먹어야 하는 법.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영어 잘하는 동행분이 가게안에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보니, 다행히 바로 옆의 가게에 앉아서 먹어도 된다고 하네요. 같은 가게인데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설명을 안해주니 모르죠.)


조각피자를 먹지 않을거면, 선택은 간단합니다. 처음 가면 무조건 Regular Pie (하지만 전 Classic이란 말에 혹해서 Classic Pie 시켰다가 후회했어요)를 시키면 됩니다. 일반 토핑과 스페셜 토핑이 있고, 스퀘어 피자가 더 푸짐하다는 사람도 있는데 고민하실 거 없습니다. 그냥 레귤러 파이. 토핑은 안해도 치즈와 바질은 올라갑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피자 장인이 아닐까요? Domenico Demarco. 이탈리아에서 이민와서 고생하다가 1959년 이 가게를 차렸다고 합니다. 가게 이름은 변호사가 멋대로 지어줬는데 (사업자 등록할 때 변호사가 맘대로 정해서 썼다고 해요) Demarco -> 발음이 디마르코니까 Di, 동업자 이름 Farina를 멋대로 줄여서 Fara. 둘을 조합해서 이름이 디 파라(Di Fara)라고 지어서 등록했다는군요. 아마도 돈을 많이 받는 변호사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1978년에 동업자의 지분을 사서 혼자 운영하는 가게가 되었지만 이름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고 하네요. 하긴 20년가까이 붙여온 이름이면 정이 들만도 하지요.


여기 가게는 말이죠 석탄, 장작? 다 아니고 전기오븐을 씁니다. 상표도 다 떨어져나간 낡은 기계인데 거기서도 맛을 잘 뽑아내시나 봅니다. 마이애미에서 먹은 피자도 전기로 굽고, 전기도 잘만쓰면 맛이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네요. 도우에서는 단점이 있지만요. 


오늘 파티를 한다고 해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뒀는데 동네 단골(할아버지가 얼굴을 아는)은 예외인가봐요. 그냥 들어가서 먹더군요. (추측일뿐, 저 사람들이 어떻게 들어가서 먹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창문밑에 학생이 숙제로 만든 듯 한 수준의 메뉴가 붙어있습니다. 인테리어에 투자하는 가게는 아닙니다. 수익율이 무척 높겠군요. 뭐 메뉴가 뭐든 처음가면 무조건 레귤러 파이. 


장인의 손길. 대략 하루에 200개 정도 피자를 만드는데, $32가격에 음료를 포함해서 1개당 매출을 $40잡더라도 $8,000/일 매출이네요. 가족기업으로는 충분한 수치입니다. 발이 불편해서 아들들이 돕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중국계 미국인으로 보이는 분이 조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럽네요. 저도 무료로 1년 정도 봉사하고 한국와서 분점 차리고 싶습니다... 라지만 넌 재능이 없어라는 말을 듣고 쫓겨날듯.


바로 옆은 아니고 옆의 옆의 가게입니다. Di Fara Dolce Fatts라는 커피숍이에요. 여기서도 이날 행사가 있는데, 동네에 사는 작가분이 책을 내서 출판 기념회를 하는 모양인데 아직 손님이 안와서 그냥 들어가서 먹어도 괜찮다고 해서 먹었습니다. 작가분께는 좀 죄송하더군요.


이분들은 캐나다에서 피자 먹으로 왔다던가?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긴 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여기도 넓지는 않습니다. 테이블이 3개 정도 있던가. 그래서 대부분은 투고로 그냥 피자를 들고가야 했습니다. 단골들 외에는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구요. (물어보기 전에는 가르쳐주지 않음)


피자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3만원이 넘는 피자치고는 서빙이 참 미국스럽죠? 남대문 시장 피자라 불러도 되겠어요. 갑자기 배달하시는 분이 저런 쟁반 50개를 머리에 이고 시장통을 걸어다니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포장 박스. 할아버지와는 닮지 않았죠? 먹다 남으면 여기 넣어서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Di Fara라는 문구조차 없습니다. 그냥 대량으로 생산하는 물품을 싸게 가져온 듯 하네요. 피자 만드는 것 이외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가게였습니다. 


이건 아까 사진의 옆 사람들이 주문한 레귤러 파이입니다. 3종류의 치즈를 가루로 만들어 올린다고 하고, 토마토 소스도 참 투박하게 뿌렸네요. 생각보다 바질잎은 적습니다. 


제가 주문한 클래식 파이는 도우가 다릅니다. 실수였어요. 토핑이 몇가지 더 들어갔고요. 다음에 갔을 때는 무조건 레귤러 파이를 주문하려고 합니다. 


클래식 파이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맛있었습니다. 도우는 특이했는데, 가장자리가 바삭바삭한 과자 같았고 안의 도우는 아주 아주 얇은 일반 피자였습니다. 다만 레귤러 파이보다 너무 얇아서 마지막에 올리브 오일을 뿌렸는데, 치즈에서 나온 수분이 전기오븐에서 충분히 날아가지 않아서 가장자리를 빼놓고는 질척한 느낌이었습니다. 


도우는 좀 실망스러웠는데, 토핑은 훌륭했습니다.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훌륭했네요. 특히나 놀랐던 건 치즈와 토마토소스의 비율이었습니다. 로베르타스에 비하면 치즈양도 많고, 토마토소스 양도 많은데 둘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더군요. 이 정도면 다른 건 필요없이 치즈+토마토+바질만으로 구성된 레귤러 파이가 최고의 평가를 받는 이유를 알것 같습니다. 


피자 사이즈가 커서 저거 하나를 둘이 나눠먹고 이미 배가 불렀지만, 레귤러 파이도 먹어보고 싶어서 다시 주문을 하려고 했는데, 직원분이 후회하지 않을거라면서 갈릭피자를 주문하라고 하더군요. 레귤러도 궁금했지만 도우는 똑같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이게 대박이었습니다. 


와. 끝내줍니다. 평생 먹은 피자중에서도 손꼽아 줄 듯.... 아니, 이걸 능가하는 피자가 생각이 안나네요. 로마에서 먹었던 피자보다도 더 임팩트가 있습니다. 레귤러파이보다 치즈의 양은 좀 더 많아지는 것 같은데, 거기에 올린 갈릭, 그리고 썬드라이드 토마토의 맛과 향이 장난이 아닙니다. 도우는 로베르타스를 따라가지 못하지만요. 


다음에 가면 레귤러를 먹을지 마늘, 말린 토마토가 올려진 이 피자를 먹을지 고민하겠네요. 뉴욕에서 먹은 피자중 롬바르디스는 평범했고, 로베르타스는 훌륭했지만, 이 피자는 감동이었습니다. 지금도 먹고 놀랐던게 기억이 남네요. 다만...  전기 오븐이 아니고 화덕으로 구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돌아오는 길, 역 주위의 숲에 안개가 자욱했는데 사진에는 별로 남지 않았네요. 


디 파라 피자는 라스베가스에 진출했다 실패한 이후 분점을 두지 않았는데 2018년, 6월 5일, 월리엄스버그 North 3rd Street Market이란 곳에 처음으로 분점이 생겼다고 합니다. 주인 할아버지밑에서 피자를 배우던 아들이 둘 있는데, 두 아들은 아마 거기서 피자를 굽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본점을 장남이, 차남이 월리엄스버그 지점을 맞게 될까요? 뭐 그것까지야 제가 알바 아닙니다만.


그런데 이 할아버지. 분점이 생기면 홍보도 좀 하고 그래야지. 아무런 정보가 없네요. Eater에서도 취재하면서 조용히 분점을 오픈했다고 기사를 쓸 정도니. 아니 자그맣게 안내문구 하나만 붙여도 SNS로 열나게 홍보가 될 집인데 홍보 쪽으로는 별 관심이 없으신 거 같습니다. 


https://ny.eater.com/2015/11/19/9764420/dom-demarco-di-fara

http://north3rdstreetmarket.com/


분점은 맨해튼에서 상당히 가까우므로, 피터 루거 스테이크로 점심을 먹고, 주변에서 놀다 저녁에는 피자를 먹는 스케줄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꼭 피자의 '스키바야시 지로'할배같은 느낌이어서 말이죠. 지로 할배의 스시를 먹으려면 예약도 힘들고, 돈도 30만원 이상 드는데 이 할아버지 피자는 $30몇달러만 내면 되잖아요? 돌아가시기 전에 뉴욕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먹으러 가볼 생각입니다. 다음에 갈 때 까지 건강하게 일하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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