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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외국인도 데려가기 좋은 서울 레스토랑 런치메뉴, 이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음식 전문가도 아닌데다가 이런 글을 쓸만큼 런치메뉴를 많이 먹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처지라 (일해야죠^^) 마음만 앞섰고 실제로 글을 쓰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써놓은 다음 가게가 문을 닫거나 갑자기 수준이 떨어지는 (주방장이 다른 가게로 옮기거나 뭐 여러 이유가 있었죠.) 일도 있어서요. 그래도 원체 쓰고 싶었던 주제였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글을 시작해 봅니다. 

먼저 첫글로 고른 식당은 이태원에 있는 '이스트 빌리지', 컨셉이 많이 모호한 한식을 표방하는 레스토랑입니다. 이스트 빌리지라는 뉴욕 지명에서 따온 식당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밥집 개념이 아니라 뉴욕의 Bar와 함께하는 레스토랑과 같은 식당을 목표로 하는 것 같습니다. 한식으로는 최초로 미슐랭 별을 달아 화제가 되었던 뉴욕의 '단지'가 아마 목표로 하는 컨셉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음식 자체야 이 식당의 권우중 쉐프님과 단지의 '김훈' 쉐프님과는 완전히 다르지만요.

사실, 이런 개념의 한식 식당이 잘 되기를 바라는터라 이 식당을 칭찬하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쓰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다녀올 때 마다 느낌이 좀 틀렸거든요. 개업 후 한달 쯤 되었을 때 첫 방문했는데 그때 느낌은 '다시 오기 쉽지않겠군'이란 느낌이었고 최근 방문들에서는 '음식이 많이 안정화 되었네.'라는 긍정적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마음에 안 드는 점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스트빌리지에 관해서는 두 개의 글로 소감을 써보려고 합니다. 먼저 평일 런치코스를 먹었던 경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런치코스는 아니고, 코스 비슷하게 나오는 '쉐어'라는 메뉴를 먹은 겁니다. 

첫번째 메뉴, 한우 샐러드입니다. 채소와 배, 한우는 1+ 채끝 부위입니다. 스테이크를 손질하고 남은 부위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1인분이라지만, 양은 상당히 많습니다. 소스가 좀 특이한데 매실청, 들기름을 베이스로 한 소스라고 합니다. 어느 한정식 집에 가도 샐러드에는 천편일률적으로 흑임자와 키위 (설탕을 숨은 재료로 해서) 등을 활용한 달디 단 소스가 나와서 참 질색인데, 이 가게 쉐프는 독자적인 소스로 승부하시네요. 맛을 떠나서 참 감사했습니다. 서울 시내 레스토랑에서 소고기와 함께 나오는 샐러드 중에서는 맛에서나 양에서 손꼽을 만하지 않을까 싶네요.

함께 먹으라고 주는 대저 짭짤이 토마토, 부띠끄 블루밍도 그렇고 '대저' 토마토라는 브랜드를 요리에 활용하는 예가 늘고 있는 듯 하네요. 좋았습니다만, 차라리 섞어서 주지시 이리 따로 주시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접시에도 여유는 되어보이는데 아마 항상 있는 메뉴가 아니라 계절 한정으로 주시는 거라 따로 내오시는 것 같은데, 그럼 그 부분을 서버분들이 충분히 숙지를 하시고 서빙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냥 '곁들여 드십시오'가 아니라 서빙 멘트에 '계절감'이 좀 들어가야 받을 때 더 즐거울 테니까요. 

두번째 메뉴입니다. 총알 오징어 통찜! 두 마리나! 코스 중 유일하게 마음에 안들었던 요리, 차라리 소스 없이 그냥 주시면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의 어린싹이나 소스나 총알 오징어의 맛과 조화를 이루기에는 너무 약해서요.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막내 회집에서 '오징어 통찜'을 난생 처음 먹어보고 감동한 적이 있는데 이 총알 오징어 통찜의 내장도 꽤나 맛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날만 그랬는지 제것만 그랬는지 내장의 진한 맛보다는 비린내가 좀 심해서 실망이었습니다. (이날 오징어 상태가 좀 나빴던 걸 수도 있지요.) 두 마리나 주셔서 더욱 먹기 곤혹스러웠던....


마지막 마무리는 밥입니다. 반찬으로는 백김치가 나옵니다. 돌솥에 담겨 나오지만 돌솥에서 한 밥은 아니라 비빔밥처럼 이미 해둔 밥과 채소를 섞어서 다시 돌솥에 담아 내오는 방식입니다. 고사리와 나물, 들기름이 조화를 이루어 꽤나 맛있고 양도 적당합니다. 위에 사진에는 좀 적어 보이지만 저는 만족스러웠거든요. 함께 나온 백김치와도 잘 어울리고요. 

백김치는 젓갈없이 담그는 줄 알았을 정도로 젓갈 맛이 약하지만 잡맛이 없어서 솔솔 집어먹게 됩니다. 쉐프님 말씀으로는 까나리 액젓이 소량 들어간다고 하시더군요. 약간의 단맛을 내기 위해 매실청이 들어가고 (이집에서 단맛나는 재료는 엿기름과 매실청이 전부 입니다. 설탕은 안쓰시는 듯 합니다.) 3일 정도 숙성시키기 때문에 산미도 있는 편입니다. 어쨌든 맘에 들었다는 말씀.

런치 메뉴 중 가장 가격이 싼 이 '쉐어'메뉴의 가격은 부가세 10% 포함하여 16,500원에 위와 같이 삼찬으로 구성된 코스가 제공됩니다. 한식은 '밥'이 메인이라는 개념이 강하기에 고기와 해물전체 하나씩에 밥이 메인으로 나오는 구조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디저트는 아쉽게 포함되지 않습니다. 음료를 한잔 따라주긴 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디저트의 개념은 아니라서요. 이 집은 쉐프나 직원이 매일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장을 봐서 조리하기 때문에 자주 메뉴가 바뀝니다. 아마 계절이 바뀌거나 총알 오징어가 들어오지 않으면 위의 해산물 전체는 다른 걸로 바뀌겠지요. 

외국인들에게도 소개하기 어렵지 않은 수준의 한식당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 인테리어도 나쁘지 않고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한식을 소개하기에 괜찮은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한식 하면 한정식 집에서 복닥복닥 차려주는 푸짐함만을 연상하시는 분께는 분명 아쉬운 음식상이 될겁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색다르게 꾸민 한식 코스는 분명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메뉴에도 '다른 곳에서 먹기 힘든 특별함'이 있고요. 아쉬운 점은 이 집 요리가 그렇지만, 먹고 나서 별다른 인상이 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소비자의 대다수는 이 가격대 이상의 한정식하면 '푸짐한 무언가'를 연상할텐데 그런 기대를 '새로움'으로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여기 쉐프는 그 새로움을 찾기 위해 많이 노력하시는 것 같고요, 그런 노력끝에 '민들레 국수'와 같이 성공적인 메뉴가 나오기 시작했죠. 


* 해당 식당은 신사동으로 옮겨갔고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음... 솔직히 다녀올 때마다 느낌이 좀 틀렸다고 위에서 썼는데, 솔직히 칭찬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가게였었죠. 점심 메뉴 중에 가장 싼 건 이태원에서 나름 경쟁력이 있었는데 신사동으로 옮긴 후에는 이 메뉴가 유지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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