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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뮤지엄이 1,2층만 오픈한 상태였기 때문에 예상과 다르게 구경을 오래 하지는 못했습니다. 1층은 로비층이니 실제로는 2층, 탄호이저(Thannhauser) 갤러리만 구경한 셈이었죠. 나와서보니 저녁 먹기까지는 아직 이른 시간, 그리고 미술관을 둘이나 연달아 보아 피곤했으니 달콤한 걸 먹어주는 건 호모 디저트쿠스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겠지요. 점심 때 먹은 디저트는 이미 뱃살로 변했을테니까요.
그런데 뭘 먹을까요? 10년 전에도 느꼈고, 이번 여행으로 확신을 가졌지만 뉴욕은 디저트가 강한 도시가 아닙니다. 따라서 어퍼 이스트 쪽에서 디저트를 먹으려면 브랜드를 믿고 "라뒤레"나 "메종 뒤 쇼콜라"를 가는 게 바른 소양을 가진 인간이 할 일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미쳤던 걸까요? 가는 길에 메종 뒤 쇼콜라 샵이 있는 것을 보았고, 구글지도에서 라 뒤레가 멀지 않음을 확인하였음에도 레이디엠(Lady M)을 가버린 것이었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렸음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더군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무얼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Pater, dimitte illis : non enim sciunt quid faciunt. Dividentes vero vestimenta ejus, miserunt sortes)
익히 알고계시는 크레이프 케이크입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레이디M을 무작정 방문한 거죠. 레이디M 케이크는 한국에서 2014년인가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먹고나서 갸우뚱했죠. 뉴욕을 뒤집어 놓은 대단한 디저트라는 데 고작 이걸로? 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알고보니, 한국 레이디엠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들어온 베이커리가 아니라, 라이센스 계약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기사 링크] 기사에는 자세한 내용이 없지만, 레이디엠의 브랜드를 사용하고, 레시피를 알려주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허. 기가차네요. 얼마나 돈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사용하는데 품질관리도 제대로 안하고 계약했다는 건가요? 한국 소비자를 얼마나 무시하는 건지 알만합니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의 제품에 별다른 자부심을 가지는 거 같지도 않군요. 하지만, 레이디 엠을 들어갔을 때는 어느 정도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본고장의 맛은 훨씬 더 좋겠지. 라구요.
기본 크레이프 케이크에, 밤 크림, 초컬렛 등을 추가한 변종들이 있습니다. 이런 건 먹을 필요조차 없죠. 못 만든 영화 속편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매장이 좁은데 유명해서, 사람 참 많네요. 반정도는 동양인, 대부분 중국 관광객들로 보입니다.
간신히 자리잡고 앉아서 시킨 크레이프 케이크. 음 먹을만하긴 한데, 한국 수준에 비해서 확연히 차이나게 좋은 것도 아니네요. 생크림도 크레이프도 잘 만들었지만, 어차피 레시피 자체가 아주 어려운 게 아니어서 딱 보는 그대로의 맛입니다. 게다가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문제는 크레이프 케이크 말고, 추가로 주문한 것들에 있었습니다. 다른 케이크 수준을 보고 싶어서 몇개 시켰는데, 맛을 보니 울화가 치미는 수준이라 사진을 찍어둔 건 이 몽블랑뿐이네요.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걸 먹어야 했을까요?
티팟, 티백을 우린다음 티백은 빼고 주는데, 물의 온도, 차의 우린 수준 어느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맛없어요.
마셔보진 않았지만 커피도 그렇다는군요.
정리하겠습니다.
1) 크레이프 케이크는 '와~'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케이크로서 기본은 합니다. 먹을만해요.
2) 함께 먹는 차, 커피가 모두 거지같은 레벨입니다.
3) 크레이프 및 그 변종 말고 다른 케이크는 절망적인 수준입니다.
4) 거기다 유명해져서 줄까지 서야하니 더더욱 가고 싶지 않네요.
그래서,
1)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뉴욕 Lady M의 크레이프 케이크를 먹어야 겠다. -> 차, 커피 시키지 말고 그냥 드세요. 아니면 테이크 아웃하세요.
2) 뉴욕에서 크레이프 케이크만 먹으면 된다. 라는 경우면 뉴욕에 진출해 있는 HARBS를 가시는 것도 괜찮지요. 크레이프 케이크는 양쪽이 비슷하고 거기도 차는 별로 맛이 없었습니다만, 줄을 서지는 않아도 되거든요.
추가로,
여기에는 올리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전부 크레이프 및 그 변종만 시키고 다른 것을 주문한 사람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구나. 제가 어리석었던 것이었네요. 간판 메뉴만 맛보았다면 Lady M은 크레이프는 괜찮은데, 차, 커피는 형편없구나! 정도의 비교적 좋은 이미지로 기억이 되었을텐데, 구색 갇추기로 가져다 둔 해괴한 메뉴들을 시켰기에 더 인상이 나빠진 것이었군요. 변종 크레이프를 시키는 손님들을 '재미없는 속편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폄하했는데 제가 더 멍청했던 것이었습니다.
못된 호기심으로 후회할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앞으로 더욱 케이크를 정진(?)해서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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