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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루거 다음 코스는 브루클린 뮤지엄입니다. 여행 스케줄을 짤 때 막판까지 


1) 브루클린 뮤지엄을 갈까?

2) 덤보 쪽에서 한다는 주말 벼룩시장을 갈까?


고민했었는데요 여행 당일에는 날씨가 제법 무더웠기 때문에, 고민없이 미술관 쪽으로 (=실내) 결정했습니다. 동행분이 햇볕에서 야외 활동에 매우 약하신지라. 


웅장한 건물이죠? 규모로 치면 뉴욕에서 MET 다음으로 큰 뮤지엄이라고 합니다. 1895년 건축되었으니 백년을 제법 넘은 건물이네요. 하지만 2004년 현대화 단장을 한답시고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건물 앞에 유리벽으로 된 편의시설을 만드느라 옛 건물의 품위를 망쳤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고 하네요. 


유리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렇게 욕먹을 정도로 나빠보이지는 않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밝기도 적당하고, 공간도 넓어보이고 이용하기에 참 편하게 만들었는데요?


표를 사는 공간. MET는 이제 뉴욕주 주민 이외에는 입장료를 내야하지만 여기는 도네이션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전통을 유지하고 있군요. 다만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전설적인 팝스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이 전시회는 유료더군요. 현대 팝스타에 별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았습니다.


자, 브루클린 뮤지엄을 둘러볼까요? 마침 1층에서는 'Blue'를 주제로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퀄리티 높은 공예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인상깊은 것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청나라 광서제 때 만들어진 사자모양 향로, 공예수준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청 시대 물건 답네요. 


꼬리의 정교함도 인상적입니다. 향을 피우면 입과 꼬리 쪽으로 연기가 올라왔던 듯 하네요. 한 번 불을 피워보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입니다. 


정원 의자.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구리의자로, 구리 위에 그림을 그리고 다시 금장식을 덧입혔습니다. 


행사 때 쓰던 술병이라고 합니다. 청나라 18세기 무렵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주로 제례 용으로 쓰였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는 별로 찾아보기 힘들지만, '불감'이라는 불교용 휴대용 예배당(?)으로 추정되는 물건입니다. 한국의 불감이 작고 소박한(금이기는 하지만) 것이라면 건륭제 때 만들어진 이 불감은 무척 화려하고, 부처의 모습도 한국과는 많이 다르네요. 용으로 감싼 기둥 등에서는 도교의 영향도 느껴지구요. 


기둥에 용이 바구니를 물고 있습니다. 청나라 시대 물건으로 귀부인 댁에 꽃을 전달할 때 쓰던 꽃바구니라고 합니다. 꽃을 뇌물로 전달할 때 쓰면 효과가 딱이겠네요. 판사님. 저는 단지 꽃을 선물로 드렸을 뿐인데요.... 


청 건륭제 시대, 국화무늬가 양각된 꽃병. 이런 색감 참 좋아라 합니다.


브루클린 뮤지엄 2층에는 자그마하게 '한국관' 코너가 있습니다. 연꽃모양 고려청자가 눈에 띄더군요. 색감이나 모양, 장식 모두 훌륭합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황란 작가의 작품입니다. '동풍'이라는 제목인데요, 한국의 지붕 곡선을 '비즈'로 표현했습니다. 


보시면 하나하나가 비즈를 연결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크기도 꽤 크기 때문에 그야말로 '개노가다급' 작품이죠


한국관 한쪽 구석에 있던 백남준씨의 작품. 한눈에도 표가 나죠? 한국은 부품이 없어서 백남준씨 작품을 꺼놓고 전시한다는데 (구형 브라운관 TV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없어져서) 여기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장소라는 중정입니다. 매주 첫번째 토요일에는 여기서 공연을 하거나 DJ를 불러 광란(?)의 댄스파티를 하기도 한다고 해요. 


벽에는 예술 작품이 걸려있는 넓은 공간. 이 미술관 최고의 기념사진 촬영지이기도한 곳입니다.


브루클린 미술관 4층에는 새클러 페미니스트 아트센터가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계열의 작품을 전시하고 탐구하기 위한 미술관인데요 메인 작품이 바로 'Dinner Party'입니다. 담당 큐레이터가 잡지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영구히 전시하기 위해' 페미니스트 아트센터를 건립했다고 할 정도로 중요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새클러 센터 큐레이터 인터뷰 기사(Bazzar)


지금은 박물관 주위가 잘 정비된 고급 주택지입니다만, 브루클린 미술관이 설립된 1895년부터 1900년대까지, 이 지역은 백인들의 중심인 맨해튼이나 뉴저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흑인 커뮤니티가 강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을 감안했는지는 몰라도, 브루클린 미술관에서는 상대적으로 마이너리티의 작품들을 가급적 열심히 전시했다고 해요. 그런 사상이 기반이 되어 한국관이 설립되었고, 여성주의 작품을 전시하는 페미니스트 아트센터가 들어서게 되었다고 하네요. 


작가는 주디 시카고, 페미니스트 미술의 대모 격이라는데 저야 잘 모릅니다. 제가 헤브라이즘 계열의 미술작품을 참으로 싫어하는 데 극한으로 단련된 손재주나 광기에 가까운 번뜩임이 담긴 미술작품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이라든지 하는 일방적인 사상을 강요하는 작품 대부분에 별 감흥이 없거든요. 


작품 사이즈가 매우 크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었기 때문에, 70년대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오랫동안 고정된 전시장소가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다고 합니다.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페미니스트 아트센터를 설립하고 나서야 영구 전시장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럴만 하네요. 삼각형 모양의 테이블의 한 변 길이만 약 14.5미터나 되기 때문에 큰 전시실 하나를 고스란히 차지합니다. 


이 작품은 남성은 하나도 없고 1038명의 여성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39명은 만찬에 주빈으로, 나머지 999명은 시간, 공간상의 제약으로 바닥에 이름을 금빛 글씨로 적어두었다고 하네요. 최후의 만찬이든 뭐든 예술 작품에서 여성은 시중을 들거나 빠져야 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여성이 주빈이라는 거죠. 미국적인 작품이라 아시아인은 하나도 없지만 그게 작가의 당시(70년대) 한계였겠죠. 어쨌든 한국적으로 해석하면 차례상이라는 작품을 만들고, 남자가 일하고 여성이 조상을 모시고 절하는 의미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거 같습니다. 


39명의 예술가 중에는 에밀리 디킨슨, 버지니아 울프처럼 저도 알고 있는 여성도 있었지만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테이블보, 접시 모두 하나 하나를 역사속의 여성에게 헌정했다고 보면 되는데, 위 사진은 소저너 트루쓰(Sojourner Truth)에게 바쳐진 테이블입니다. 흑인 노예로 태어났지만 노예 해방 폐지론자였을 뿐 아니라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는데요, 읽어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진심이 담긴 연설입니다. [링크]


링크: 디너파티 작가별 접시 이미지


당시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는 외설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고 해요. 39명의 여성 예술가 하나하나마다 독특한 상징의 접시를 만들어 두었는데, 그 상징이란게 여성의 성기를 이미지화 한게 분명했거든요. 이 테이블은 수잔 B 안쏘니(Susan B. Anthony).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있음을 주장한 여성 참정권 운동가라고 해요. 


여성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에델 스미스(Ethel Smyth). 20세기초 활동한 분이라 이 분 영상은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링크]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테이블, 접시 뿐만 아니라 테이블 보도 의미를 담았는데요, 아래 테이블보의 문양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Lighthouse'를 형상화했고, 테이블 보는 쉬폰 원단으로 만들었는데 평소 울프의 섬세한 성격을 반영한 선택이라고 하는군요. 접시의 모양, 색은 그녀의 문학에서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라는데, 뭐 그렇다고 주장하니 그런가보다 해야죠. 


브루클린 뮤지엄은 이집트 유물로도 유명합니다. 대영박물관, MET와 겨룰만 하다는데 실제로 수준 높은 유물들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많았다면 자세히 하나하나 구경했겠지만 관광객에게는 그런 사치는 허용되지 않죠. 언젠가는 뉴욕에 살면서 주말이면 여유있게 미술관을 구경해보고 싶습니다. 


여성형 스핑크스 머리 (Head from a Female Sphinx)입니다. 보통 스핑크스는 이집트의 적을 멸하는 존재로 아누비스처럼 수호신의 의미를 지니는데, 대부분은 남성형이지만 이 전시품은 여성형입니다. 눈은 귀신처럼 뻥 뚤려있는데 원래는 큰 보석으로 장식되었을 것이고, 약탈당했을거라 합니다. 코는 굴러다니던 중 파손되었을 것이고, 턱이나 입술 쪽은 18세기 고고학자들이나 도굴꾼들이 수리했을거라 하네요. 눈 아래도 수리한 흔적이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녹니석(Chlorite)으로 만들어졌는데, 고대 중동지역에서 조각상으로 흔히 사용되던 녹니석은 이름처럼 원광은 '녹색'에 가까운 색을 띄고 있습니다. 알루미늄, 철, 마그네슘 등의 광물질로 이루어져 매우 단단하며 정교한 조각에 사용되죠. 특이한 점은 정성들여 광을 내면 녹색의 원광이 위의 조각상처럼 검은색으로 변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고대 문명의 신비라는 돌항아리 입니다. 실제 도자기처럼 돌의 내부를 둥글게 항아리 모양으로 파내서 만든 것이라 변변한 가공도구도 없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요? 제 생각은 '못하면 죽이는데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입니다. 이집트 파라오는 신으로 숭배 받았고 신이 시키는 명을 이루지 못하면 죽임을 당했을 테니 당시 이공계(?) 장인들은 죽기 싫어서 하지 않았을까요?


이 돌의 소재는 각력암(Breccia)입니다. 위에 보는대로 퇴적암이 강한 압력을 받아 생성된 것으로 무늬가 아름다워서 현대에서 대리석 대용으로도 많이 쓰입니다. 부엌 싱크대 소재나 식탁 상판 소재로 수입되기도 합니다. 각력암, 녹니암은 그렇다치고 이집트 인들은 조각상으로 쓸 수 있는 최고의 단단한 암석 섬록암도 자유 자재로 가공 했었습니다. 그들은 철기도 없었는데 어떻게?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들 보다 더 단단한 강옥(corundum)과 수정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모스 경도는 기억하시나요? 다이아몬드를 10으로 했을 때 암석의 단단함을 나타내는 수치인데요, 강옥/황옥이 그 다음이지요. 


강옥은 알루미늄 화합물로 여기에 불순물이 얼마나 섞이냐에 따라 루비, 토파즈 등의 보석이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학설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보석들을 연마제로 이용해서, 조각의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가공했다고 합니다. 물론 자세한 방법까지는 전해내려오지 않지만요. [참고 논문 링크]


동행분이 당시 이 이야기를 듣기 싫어해서 블로그에 써둡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세뉴세레트 3세 파라오 상입니다. 


편마암으로 만들어진 남성 신 조각상 (Statuette of a Male Deity). 성기 부분이 분명히 강조되어 있고 턱수염이 성기보다 길게 표현된 게 특징입니다. 


여인의 미이라 마스크. (Mummy Mask of Woman). 시원 시원하게 그려진 얼굴이 인상적입니다. 


이집트 미술품 말고도 아시리아, 페르시아의 유물들도 있습니다. 로스엔젤레스 라크마(LACMA)에서도 본 님루드(Nimrud)라는 지역의 왕궁터에서 출토된 부조네요. 왕궁의 벽을 장식했던 부조를 뜯어온 건데, 그 왕궁 유적은 IS가 박살 내 버렸었죠. 약탈품이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뜯어온 게 다행이다 해야하나요? 


브루클린 미술관은 서양화 쪽 소장품이 약하긴 하지만, 고대 이집트 미술품은 훌륭했습니다. 동행분이 피곤하다고 하셔서 4층, 5층 상당부분을 거의 못보았지만, 못본 작품들을 보려고 이 곳을 또 찾을지는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뉴욕에서 미술관하면 MOMA, MET이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귀중한 레벨의 제품이 딱히 있는 건 아니어서요. 물론 저처럼 브루클린에서 점심, 저녁을 다 먹을 요량이라면 그 사이에 시간을 보낼 멋진 대안이기는 합니다. 


그럼 이제 저녁으로 피자를 먹으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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