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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기헤이(八代目儀兵衛). 八代目은 말그대로 8대째 사장임을 의미합니다. 1대 창업주의 이름이 '하시모토 기헤이(橋本儀兵衛)인데, 이 분이 1787년 쌀가게를 창업했다고 합니다. 1787년은 막부에서 관정개혁(寛政の改革)이 있었던 시기인데 잇다른 흉년으로 막부에서 쌀에 대해 관리를 강화하던 시점이었지요.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든가, 지방마다 쌀을 비축하게 한다든가... 이런 혼란한 시기에 뭔가 기회가 보였기 때문일까요? 남 다른 상재가 있었기 때문일까요? 자세한 스토리야 모르지만, 어쨌든 교토 부근에서 창업한 쌀집은 나름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2백년을 버텨온 모양입니다. 


세대를 넘기고 넘어 8대째 사장인 橋本隆志(하시모토 다카시)는 쌀가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꿈을 가지고 2006년 8대 기헤이(八代目儀兵衛)라는 이름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쌀집 8대 후계자) 잘 드러낸 회사명인데요 선물용 쌀을 온라인으로 파는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을 교토에서 선보인 후, 긴자에 지점을 내고, 최근에는 나리타 공항점도 오픈했다고 하네요. 


됴코니까 당연히 긴자점을 방문했습니다. 여기로 갈까 저번에 식사에 실패한 아코메야 주방으로 갈까 고민하다 이쪽을 골랐습니다. 


문이 열리기 전에 가면 이름을 적는 노트가 있습니다. 11시 오픈하기 5분전에 호명을 해서, 없는 사람 이름은 가차없이 지워버립니다. 에쉬레에서 너무 시간을 보낸 탓에 미리 이름을 써둔게 아무 소용이 없었죠.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가게가 크지 않아서 16석이 전부라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가게 입구에서 오늘 사용하는 쌀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금박입힌 쌀로 장식했는데, 저는 먹는 걸로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가격은 5kg에 4,490엔. 45000원이라고 하면, 조선향미 가격이 8kg에 세일해서 38,000원이니 단순 비교해도 제법 비싼 가격입니다. 


기헤이의 세일즈 포인트는, 단순히 전국 최고의 쌀이 아닙니다. 밥을 했을 때 가장 맛있게 지어지도록 여러 고급쌀을 '블랜딩'했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충청도에서 난 추청과 철원 오대미, 강화도 고시히카리 등을 섞어서 포장한다음 판매하는 거지요. 

 

翁霞 라는 상품명으로 판매하고 있는 쌀인데, 기헤이 웹페이지에서 이 쌀의 특징을 이렇게 보여주네요. もっちり는 쌀의 '찰진 정도'를, やわらかめ는 '부드러움'을 의미합니다. 흠. 밥을 하면 찰기가 있다는 의미는 알겠는데 부드러움은 어떤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가마도상. 일본식 밥을 짙는 옹기솥입니다. 고슬고슬한 밥을 원할 때 쓰면 좋은 도구지요. 무쇠솥과 비슷한 밥맛이 나온다고 합니다. 내부 사진은 제대로 찍지 못했는데 실제로 약 10개 정도의 가마도상이 가스불 위에서 계속 끓고 있더군요. 


자리에 앉으니 차가 나옵니다. 찻줄기가 선걸로 봐야하나요?


40분 가까이 기다려서 간신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손님이 줄 서있는 동안 계속 밥을 하고 있지만, 나오는 데 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더군요. 생선구이 2종과 밥 (세금포함 1,520엔)입니다. 작은 연어토막구이, 이면수 토막 구이, 반찬 조금, 밥이 나옵니다. 작은 나무상자 안에는 김이 들어있었구요.


메인인 생선구이와 무우갈은 것 조금. 연어구이야 괜찮은데 이면수 구이는 양만 많고 퍼석합니다. 그래도 15000원 가까이하는 한상인데 이런 급식같은 수준의 생선을 주는건 좀 자제했으면 합니다.


반찬 3종. 양이 적지만 뭐 일본이니까요. (안짜게 먹으면 건강에 좋다니 참고 먹어야죠)


뱅어말린 것과 채소 절임


기대하고 고대하던 밥!


흠. 맛있는 밥입니다. 맛있는 밥인데 먹는 순간 '우와~'하고 감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개인 취향차일 걸로 보이는데 뭐 사람마다 다르겠죠.


250엔을 추가하면, 계란을 한알줍니다. 무려 250엔. 豊後の息吹이라는 브랜드명을 가진 족보있는(?) 계란인데, 豊後란 오이타현의 옛 지명이라고 합니다. 息吹는 호흡. 즉 오이타의 호흡. 뭐 시적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맛은 어떨까요? 참고로 프라이 해주는 게 아닙니다. 저거 날계란이에요. 날계란을 뜨끈한 밥위에 올려먹는거죠. 일본 만화에서 가끔 나오는 취식법.


노른자 상태가 튼실합니다.


밥을 반쯤 먹다 투입. 나머지 밥에 살살 비비면서 먹습니다. 처음 가보면 시켜볼만 하네요.  맛있긴한데 그렇게까지 감동적인 계란은 아니었습니다. 미국 파머스 마켓에서 나오는 계란중에 더 맛있는 것들도 맛본적이 있었기 때문에... Texas Austin에 있을 때 2007년 이네요. Vital Farms이라는 회사가 막 설립되었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미국 전역에 계란을 팔 정도로 커졌지만) 파머스 마켓에 가면 아침마다 그날 아침에 나온 계란들을 가져와서 팔았는데... 아직도 거기 비견될만한 계란을 먹어본 적이 없네요. 거기다 저렇게 비싸서야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잖아요?


리필을 하면 밥위에 누룽지를 좀 얹어줍니다. 사람마다 올려주는 양이 다른데 운이 좋으면 많이 받는 듯 합니다. 저는 조금만 주더군요. 쳇! 


맛있는 밥이었습니다. 수직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한국에서 좋은 쌀/물로 주물냄비에 제가 짓는 밥과 차이가 많이나냐면... 그런건 잘 모르겠네요. 한국쌀이 도정기술이 일본에 비해서 딸리고, 잘 보관한 좋은 쌀을 구경하기 어려워서 겨울지나면 맛이 크게 떨어지긴 하는데... 그래도 와! 하고 감탄할만한 밥은 아니었습니다. 제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죠. 


뭐 그래도 싹싹 다 먹었습니다. 쌀이 고슬고슬하지 않고 찰기가 많게 지어졌는지, 밥그릇에 다닥다닥 달라붙어서... 숫가락이 없으니 젓가락으로 한점 한점 떼서 먹어야했네요. 그건 좀 짜증났습니다. 오차즈케 방식으로 먹으면 편하겠지만 물 말아먹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네요. 


어쨌든 일본의 맛있는 쌀이라는 궁금증 하나를 해소했네요. 맛있는 두부도 해소하고 싶은데 그건 교토에 가야 해소될 거 같습니다. 이제 오늘 여정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 오오에도 골동품시장으로 가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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