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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벽있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집에 더 이상 쌓아둘 공간이 없거나, 자랑하기 위해서, 혹은 세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미술관같은 시설을 건립합니다. '페기 구겐하임'의 수집품으로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 독특한 형태 만큼이나 뒷 이야기도 다채로운 미술관입니다.  


들어보셨겠지만, 그 뒷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철강/광산업계의 거물(벤자민)이 타이타닉 호 침몰 때 죽음

2) 유산을 물려받는 딸(페기)이 2차대전이 일어나자 화가, 갤러리를 돌아다니며 미술품을 전쟁의 위협 속에 싸게 구입

3) 이후 숙부(솔로몬)가 자기 것과 조카(페기)가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하기위해 미술관을 만듬

 

지나치게 간추린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이전 글에서 다녀온 노이에 갤러리도 그랬고, 구겐하임 미술관도 미술품 덕후들이 수집 + 자랑 + 세금절약이라는 쓰리콤보 목적을 위해 만들어 진 곳이라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물론 현대 부자들이 미술품을 구매하기 위해 남태평양의 조세포탈지대를 이용하는 기법에 비교하면 이 미술관이 기획되었던 1940년대 당시의 세금절약 기법은 귀여운 수준이었겠지만요. 


일요일이라 줄이 길군요. 줄이 길어진 이유는 노이에 갤러리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보안이 엄격한 이유도 있습니다. 한명 한명 가방을 모두 조사하거든요. 


솔로몬 구겐하임은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중 한 명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에게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는 미술관을 지어달라."라고 요청했고 (돈이 많으니 뭔 소린들 못하겠습니까?) 프선생은 고딕양식으로 웅장하게 짓던 그 시기에 참으로 현대적인 미술관을 지어버립니다. 


미술관 완공은 1959년, 건축주인 솔로몬은 1949년 사망했고, 건축가 프랭크 선생마저 완공을 6개월 앞둔 1959년 91세의 나이로 영면합니다. 그리고 '다른 건물이랑 다르게' 만들어진 이 건물은 한동안은 조롱거리가 되어야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 선생이 미술관 설계 컨셉을 발표했을 때도 말이 많았지만 잘나가는 예술가란 작자들은 에고가 너무 강해서 그런지, 자기 미술을 전시해주는 장소도 트집을 잡아야 직성이 풀리나봅니다. 몇몇 예술가는 내 작품을 이런 괴상한 곳에 전시할 수 없다는 성명까지 발표했으니까요. 



가운대 공간을 텅 비워놓고 6층까지 꼬불꼬불 원형의 복도로 이어지는 공간은 달팽이로부터 모티브를 얻었다는 말도 있고, 바빌론의 건물 지구라트에서 컨셉을 잡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저는 솔로몬, 프랭크 선생보다도 핵심 인물이 덜컥 죽은 다음 얼토당토 않은 항의, 수모를 감내하며 미술관을 운영해야 했던 재단직원들이 참으로 고생을 많이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옳은 소리도 가끔하지만 역사를 보면 기레기스러운 헛소리도 많이한 뉴욕 타임즈는 아이스크림 같다고 이 건물을 조롱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지요? 


아쉽게도 제가 갔을 때는 구겐하임 미술관 복도에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느라, 그 유명한 나선통로는 이용할 수 없었고, 탄하우저 컬렉션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탄하우저는 부유한 미술상으로 많은 미술품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구겐하임처럼 부자는 아니어서 미술관을 건립하기는 좀 형편이 안되었는지 자신의 컬렉션을 구겐하임에 장기임대해 주었다네요. 


지금쯤은 제대로 배치가 되어있겠지요. 미술작품이 가득 담긴 빨간 콘테이너 상자가 1층에 가득 가득하네요. 


출입이 금지된 나선형 계단. 경사는 약 3도이고 사람들은 6층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면서 복도에 전시된 미술품을 감상한다고 합니다. 저도 걸어보고 싶었는데, 다음번에 기회가 있겠죠. 예술가들이 항의 성명을 발표한 이유가 이 완만한 경사의 계단인데요, 사람들이 3도 기울어진 공간에 서 있으므로 똑바로 감상할 수 없다는 없다는 논리였죠. 지금에서야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당시에는 저런 소리가 먹히는 경우도 있었나봐요. 


공사 관계자들만 출입이 가능하더군요. 


못가는 손님들은 사진만 찍습니다. 


그림은 인상적이었던 것 다섯 점만 소개하지요. 먼저 한눈에 딱 떠오르는 작가지요? 바실리 칸딘스키의 'Around the Circle'입니다. 음악을 색과 추상으로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나타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다채로운 색, 보고 있으면 어쩐지 즐거워지는 리듬감. 작은 기호들이 꼭 다양한 음표가 떠다니는 거 같지 않나요? 


폴 고갱, 바닐라 숲의 남자와 말


이 그림은 꼭 한번 실물로 보고 싶었는데 이유는 '바닐라 숲'이라는 제목 때문입니다. 고갱이 뒷배경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화가는 아니니 만큼 제대로 된 바닐라 나무나 열매를 묘사할리는 없죠. 그게 이 그림의 주제도 아니구요. 아마 그림을 보면 고갱은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았는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하고 멋진 곳에 있었는지 짐작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타히티의 바닐라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최고였으니까요.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1891년, 고갱이 타히티로 간 첫해입니다. 타히티 섬에 바닐라가 전래된건 1848년, 대량의 농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가 1880년 경이라고 하니, 이 그림은 아마 타히티에 도착한 고갱이, 고장 특산품(?) 구경을 하러 갔던 바닐라 농장에서 보았던 느낌을 화폭에 담은 것이겠지요. 쯧쯧.. 그런 멋진 장소에 갔으면서도 바닐라가 아닌 말과 사람에게나 관심을 쏟다니. 실망이에요. 고갱화백님. 


까미유 피사로, 퐁투아즈의 은둔지 (The Hermitage at Pontoise). 인상파 느낌은 약하다고 하지만, 여유로운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맘에 들더군요. 구겐하임의 이 그림외에도 이번 여행에서 메트로폴리탄에서 이 사람의 걸작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풍경속으로 녹아들고 싶은 그런 그림들이었습니다. 


쉬라. 문 (The Gateway). 보는 순간 '헉' 소리가 났던 그림입니다. MOMA에 있는 'The Echo'와 함께 크레용(Conte Crayon)으로 그려진 쉬라의 걸작품입니다. 사물을 보고 그 풍경, 느낌의 한순간을 정말로 붙들어 내서 관람객의 뇌 속으로 직접 전달하는 듯, 인상적인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작품은 피카소의 '다림질하는 여인' 이었습니다. 보는 순간 그림에서 박력이 느껴지는 일은 흔치 않아요. 청색시대 끄트머리에 표현한 노동자의 암울함이 그림 전체에서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구겐하임을 나오기 전에 이 그림을 떠나는 게 아쉬워서 몇 번이나 보고 다시 그 앞에 가서 다시 보고... 


앞서 노이에 갤러리의 아델레 블로후 바우어의 초상과 정말 대조되는 그림이죠? 하루에 전혀 다른 두 그림으로 이렇게 깊은 인상을 받다니,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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