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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화이트 쉐프가 운영하는 마레아로 셋째날 저녁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마이클 화이트는 뉴욕에서 알아주는 문어발 쉐프입니다. 식도락 시장이 거대한 미국에서는 흔한 일인데 인기있는 쉐프가 2nd, 3rd 브랜드를 계속 만들어서 식당을 차리는 거죠. 물론 그러다가 망하는 경우도 흔합니다만, 마이클 화이트 쉐프는 성공적으로 맨해튼에만 Marea, Ai Fiori, Vaucluse, Osteria Morini, Nicoletta, Costata and The Butterfly 등 7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면, 레스토랑 자체의 매출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비지니스 인사이더에 의하면 [링크], 뉴욕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레스토랑은 Tao Downtown인데, 2016년 연 매출이 $3300만 달러, 한국돈으로 대략 370억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하나의 레스토랑이 성공하면 그 네임밸류를 빌려서 2, 3 레스토랑을 개업할만하죠. 한국에서는 벽제갈비가 봉피양을 만든게 비슷한 컨셉이겠네요. 참고로 벽제갈비 전체 매출은 450억선이지만, Tao Downtown의 매출은 '단일 레스토랑'의 매출입니다. 체인점 전체 매출이 아니고요!


마레아 위치는 컬럼버스 서클 부근입니다. 센트럴 파크 바로 건너편에 있죠. 입구는 평범해서 찍지 않았고,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좌석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접시, 포크 등을 보관해두는 곳의 옆 자리였거든요. 계속 서버들이 접시, 포크를 가져갔다 새 걸 뒀다 하는 통에 좀 소란스러웠습니다. 나름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인데, 좌석간 거리도 지나치게 가까운 느낌이었구요. 


웰컴디쉬.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답게 웰컴 디쉬도 새우가 등장하네요. 어느 종류의 새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쌀과자 비슷한 식감의 칩 위에서 나름 존재감을 보여주더군요. 워낙 빠르게 먹어치워서 소감이고 뭐고 잘 기억이 안나내요. 뭐 대단한 맛은 아니었구요. 


빵이 나옵니다. 뉴욕에서 빵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역시 여기도 그럭저럭. 맛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만 부족해요. 이런 선입관은 Del Posto에 가서 바뀝니다만. 


동행분은 와인을, 술을 못마시는 저는 무알콜 칵테일을 주문합니다. 보통은 바텐더가 즉흥적으로 만들어주는데 여기 칵테일은 좀 별로였습니다. 


결국 물리고 다시 주문했는데 (이것때문에 자리가 좀 나빴어도 팁을 제대로 줌) 그럭저럭 하네요. 이름이나 재료는 기억이 안납니다 여기 칵테일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텐더에게 칵테일에 대한 기호를 알려주고 어필하면 괜찮은 칵테일이 오는데, 아무거나 가져오라 했을 때는 바텐더도 정보가 없으니 최근 인기있는 걸 주기 쉽지요. 


전채로 시작합니다. 타르뗄레따(TARTELLETTA). 굴 튀김. 초절임한 정어리와 곁들임으로 잠두콩(fava bean). 밑받침은 멕시코 풍의 또띠야였던 걸로 기억됩니다. 


잠두콩 다진 것. 흠. 이건 왜 줬지? 라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절임한 생선은 맛이 있었는데 굴이나 잠두콩은 특별한 맛이 없었습니다. 다음에 가면 시키지 않을 듯 하네요. 


전채로 또 하나. 두 사람이 갔으니 전채도 둘입니다. 크리스피한 느낌으로 튀긴 소프트 쉘 크랩이 주인공인 몰레체(MOLECHE)라는 요리입니다. 


소프트쉘 크랩의 껍질을 더 먹기 편하게 살짝 두들겨 부순 상태에서 튀겼는데, 튀김옷이 피페라드인 듯 하네요. 피페라드는 피망(또는 고추)와 토마토를 섞어서 만든 오믈렛을 가르키는 데 이걸로 크랩을 감싼다음 튀긴 모양이에요.  


게는 제법 크리미했습니다. 맛있더라구요. 


푸실리(Fusilli). 사진의 나선형으로 둘둘말린 파스타면의 이름이기도 하고, 마레아의 대표 파스타 메뉴명이기도 합니다. 와인으로 장시간에 걸쳐 뭉근하게 조리한 문어와 본매로우, 토마토 퓨레등이 들어간 파스타죠. 


상당히 기대를 하고 주문했는데 좀 실망했습니다. 문어 맛이 많이 부족하더군요. 좀 더 두껍고 큰 문어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럼 가격이 너무 올라간다고 생각했을까요? 저 안에 문어가 더 숨어있을 줄 알았는데 사진에 보이는 문어가 전부더라구요. 소스도 좀 적어보이구요. 하지만, 이 푸실리 면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역시 곁들임보다는 '면'이 주역이 되어야 하는게 쉐프의 철학일까요? 파스타 프린스라고 불릴 정도로 파스타 조리가 완벽하다는데, 먹어본 파스타 면중 최고였습니다. 잘 조리되고 소스와 조화도 훌륭하더군요. 문어 좀 더 줬으면 인생 파스타였을텐데요.


타글리올리니(Tagliolini), 면이름으로 파스타 메뉴를 붙이는 게 쉐프의 취향인 듯 하네요. 페투치니 비슷한 넓적한 면입니다. 아주 넓적한 건 아니구요. 색을 보면 아시겠지만 달걀이 들어가는 면이지요. 라구 소스에 쓰는게 일반적인 걸로 알고있는데 '프린스 오브 파스타'께서는 오일 베이스로 만들었네요. 


멋진 파스타네요. 이 집 파스타 진짜 잘합니다. 오일에 푹 담궈져 있어서 첫인상은 별로였는데 - 제가 깔끔하게 오일이 묻은 정도의 파스타를 좋아하거든요 - 면의 매력이 정말 잘 느껴집니다. 곁들여진 깔리마리와 클램도 괜찮지만, 역시 주인공은 면이네요. 훌륭합니다. 


이제 메인인 생선 요리가 나옵니다. 사실 그동안 프렌치, 이탈리안의 생선요리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뭐 제가 본고장 생선요리를 많이 못먹어 본 탓도 있고 일본 만화에서 주문처럼 읊조리는 "생선은 일본식 요리가 최고야"에 세뇌 당한 탓도 있겠지요. 또 그동안 미국에서 먹었던 생선요리들에 절망했던 탓도 있겠구요. 유럽에서 먹었던 요리들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플로리다를 여행하면서 미국식으로 헤비하게 만든 생선요리도 분명히 매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예: 플로리다 푸드쉑의 생선요리들[링크]), 이번 여행에서는 일본 레스토랑에서 감히 따라갈 수 있을까 싶은 생선요리를 너무 많이 먹게 되어서 그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네요.


먹는 내내 두부 구이라고 놀리면서 먹은 동행분이 주문한 헬리벗(halibut). 메뉴 명은 헬리벗의 이탈리아 단어인 'IPPOGLOSSO' 입니다. 사실 그 동안 서양의 생선요리라고 하면 저에게는 딱 이 헬리벗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시장에 가도 그냥 모든 걸 '필렛'이라는 이름으로 퉁쳐서 팔고 있고 어디가 맛있는 부위인지도 잘 모르고, 취급하는 것도 섬세하지 않아서 살이 멋대로 뭉게져 있고. 나오는 건 그져 지방이 많고 요리하기 쉬운 부위 뭉텅그려 내오고.


역시나!!!! 맛은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서양인들 생선요리가 이 정도지... 레벨에서 그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 은대구를 먹고는 서양 생선요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MERLUZZO라는 메뉴명의 Black Cod(은대구) 구이였는데 겉면은 말린 포르치니 버섯 조각으로 크러스트한 느낌과 감칠맛을 추가했죠. 그리고 접시에는 역시 감칠맛과 향을 추가하기 위해 올리브 오일에, 다시마 육수 소스가 깔려있습니다. 


일본 요리사들이 서양요리기법을 흡수한 것처럼, 서양 요리사들도 일본 요리의 좋은 점을 흡수하고 새롭게 발전시켜가는 경우가 많죠. 특히나 해산물에서 일본의 레시피는 서양 음식에 점점 섞여든지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음식의 세계화라는 건 이런거죠. 돈 퍼들여서 (상당 부분은 누구 주머니로 챙겨먹고) 떡볶이를 한식 주력으로 하는 따위가 아닌거죠. 이 메뉴도 그렇습니다. 기본 요리 기법은 서양식이지만, 감칠맛을 주기 위해 당근, 다시마 육수로 만든 소스를 추가했습니다. 


메뉴 설명에는 없지만, 감칠맛을 주기위해 콘부지메를 했을 수도 있겠죠. 일본 요리 영향으로 다시마 육수는 이제 식당에서 일본말 그대로 kombu broth라고 표기됩니다. 우마미를 주기 위해서 추가한다는 레시피 소개도 여럿있죠. 


은대구 자체는 여러 번 먹어봤지만 이렇게 맛있는 은대구는, 아니 이렇게 맛있는 생선요리는 흔하지 않지요. 먹어본 생선요리 중 분명히 Top5에는 들어갑니다. 스시까지 다 포함해서 그럴 정도니 말 다했지요. 먹으면서 정말 여러번 감탄했고, 너무 맛있어서 동행분의 헬리벗 구이는 그냥 두부구이처럼 보이더군요. (두부구이도 맛있는게 있지만 풀*원 두부를 구운 두부구이 정도)


디저트의 시작입니다. 먼저 입을 씻기 위해 주문한 피스타치오, 얼그레이 젤라또와 딸기 소르베. 이상하네요. 이탈리아 레스토랑인데 맛이 이것밖에 안되나요? 나쁘지는 않았는데 맛은 별로였습니다. 


CIOCCOLATO. 말 그대로 초콜렛 디저트인데 이탈리아의 도모리 사의 초콜렛을 쓴다고 해서 주문해 봤는데, 이건 나쁘지 않네요. 역시 디저트도 재료빨이 중요합니다. 곁들임으로 아몬드 젤라또와 같이 주더군요. 디저트마다 젤라또가 조금씩 추가되면 굳이 별도로 젤라또를 주문하지 말걸 그랬네요. 


화이트 쇼콜라와 체리 소르베가 위에 놓여지고, 아래에는 마스카포네 치즈가 들어간 파나코타. 나쁘지 않지만 체리 소르베와 파나코타의 매칭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마무리로 차가 나왔습니다. 동행은 커피. 물론 공짜는 아니죠. 차맛은 별로였네요. 레스토랑 레벨에서 맛있는 차 란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마지막 마무리로 주는 초콜렛. 뭐 맛은 그럭저럭. 좋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멋진 파스타와 은대구가 맛있긴 한데, 다음번에 뉴욕에 가면 갈지 말지는 고민이 되네요. 여기 갈 비용이면 델 포스토(Del Posto) 더 갈거 같거든요. 어쨌든 기분좋게 밥을 먹고 약간 쌀쌀한 날씨를 느끼며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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