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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이동하기 위해서, 링링 저택 부지 전체를 돌아다니는 코끼리열차(?) 비스므리한 전기차에 탑승합니다. 플로리다는 어느 공원에 가도 이런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은퇴한 연세 지긋한 분들이 많아서겠지요? 아니면 미국 문화가 원래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평소같으면 걸어가겠지만, 구경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전기차에 탑승합니다.


달려갑니다. 이런식으로 차를 운전하거나, 입장객을 안내하는 분들은 대부분 연배가 지긋하신 멋쟁이 신사분들인데요 아마도 이 지역에 사는 분들이 (대부분 여유있는 재정을 가지고 있고 은퇴한 분들) 파트타임잡으로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링링 아트 뮤지엄의 전경입니다. 존 링링씨가 수집한 미술품을 보관할 곳이 부족하게 되자 아예 미술관을 세워 보관하기로 합니다. 사진은 좀 작지만 규모는 상당히 거대합니다. 예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나절을 보아도 보기힘든 걸작들이 수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건물과 정원 자체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참고로 이 미술관은 31개의 주제를 가진 전시실에 3000여점의 그림과 조각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각상이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중앙정원도 참 유명하지요. 



뭐... 아쉬운점은 제가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은 '바로크'시대 작품이 핵심이라는 점이지요. 링링은 유럽에 드나들면서 바로크 시대(16세기 말 ~ 17세기 초)의 예술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해요. 주인장 취향이 그러니 바로크 시대 작품들이 많지만, 전 이 시대의 작품이 영 짜증나거든요. 바로크 시대의 작품은 '왕과 교회'가 중심이 됩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작품은 주제부터도 맘에 안드는데다가, 르네상스 시대 작품의 대표적 특징이던 공대적인 정교함 (미술학도들은 화를 낼지 모르지만 전 그렇다고 봐요.^^)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화가가 그린 인상을 중시하는 세태로 변했지요. 귀족적인 예술에서, 화가나 작가 자신의 감정이 좀 더 드러나는 시대로 움직이는 과도기스러운 느낌인데... 그런데 주제는 "왕과 교회"거든요. 그러니 저는 이 시대의 그림을 상당히 어정쩡한 상태의 동거라고 봅니다. 화풍은 작가를 좀 더 드러내려 하지만, 주제는 그러지 못했던 시대. 이런 불일치가 그림 전반에 드러나기 때문에 맘에 드는 작품이 별로 없는 시대입니다. 물론.. 없지는 않지만, 그런 좋은 작품이 이 플로리다 시골구석까지 와 있는 경우는 드물지요. 


물론 이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이 형편없다는 건 아닙니다. 반 다이크, 루벤스, 벨라스케스 등 훌륭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지만.. 제 취향이 아니라는 소리지요. 


입구로 들어가면, 루벤스 갤러리라고 불리는 거대한 방이 나타납니다. 이 미술관의 특징은 주제별로 방의 구조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에요. 작품에 맞춰서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인테리어와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루벤스의 방은 천정 높이도 특별히 높습니다. 2012년에는 안트워프의 로얄 뮤지움과 협력해서 무려 75편의 루벤스 그림 특별전도 진행했었다고 하는데요... 예, 뭐 별로 좋아하는 화가는 아니지만, 그런 전시회를 놓치면 아깝지요.


정면에 보이는 그림은 'Abraham과 Melchizedek'라는 그림입니다. 그림이 너무 작은 분은 '링크'를 눌러보시길. 아브라함이야 아랍과 유대계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그 아브라함일테고, 멜기세덱(Melchizedek)는 당시 살렘(예루살렘)의 왕이었다고 합니다. 이 두사람은 창세기에도 등장하지요. 중세시대에 이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은 그림으로 여러번 그려졌고, 그 대표작이 바로 루벤스의 이 그림인 거죠. 중세나 일부 교회의 교파들은 멜기세덱을 단순히 '예루살렘의 왕'으로 해석하지 않고 지상에서 구원을 행할 권능, 신권으로 해석하기도 한답니다. 즉,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만나서 신권을 행사할 권리를 받은 것으로 해석하지요. 또는, 아브라함이 그가 약탈한 (승리하고 돌아오는 으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물품의 1/10을 바쳤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브라함 역시 그를 신으로 인정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당시 유럽의 많은 신학자들도 멜기세덱을 신의 권능을 가진자로 해석했기 때문에, 이 그림에도 그런 분위기가 나타나있죠. 


라지만... 제가 보기엔 그냥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318명의 병사와 약탈하고, 보복이 두려우니 당시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멜기세덱에게 1/10을 조공으로 바친 것뿐이 아닐까 합니다. 왕에게 공물이 돌아갔으므로 왕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아브라함에게 보복하려고 하면, 이를 함께 막아줄 의무를 가지게 된 것이죠.  


온통 성모님, 천사들 투성이.... 천사가 사자를 길들여 타고 있습니다. 루벤스는 모두 11장의 Triumph of Eucharist라는 부제가 붙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는 당시 스페인 국왕의 딸이 그려달라고 한 것이라는데요, 존 링링은 그 중 5개의 그림을 사서, 이 박물관에 전시해 두었습니다. 이 루벤스 갤러리는 그 그림들을 모아둔 방이지요. Eucharist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시던 그 만찬을 말하는 거라는데, 나머지 6장 중에 4장은 벨기에에, 2장은 프랑스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루벤스를 좋아하시는 분이면 이 박물관을 방문하는 게 정말 큰 경험이 되겠지요. 위 그림은 그 11장의 시리즈중에 "The Triumph of Divine Love"라는 작품입니다. 두 마리의 사자(표정 죽이죠?)가 끌고 있는 수레에 타고 있는 여성은 '자선'을 상징합니다. 마차 밑에 아이는 뱀을 불태우고 있는데 이는 신성모독을 없애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요. 그리고 마차의 바퀴살은 지고한 천사장 '세라프'를 상징하는데, 이는 세라프가 사방팔방으로 화살을 쏘아 악마들을 처지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라지만 저는 태양신의 전승이 기독교에 남아있는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당시의 이런 대형 그림들은 하나의 화가가 그리는 법이 없었고, 모두 '공방'에서 팀으로 그려졌습니다. 루벤스와 이름없는 제자/동료들이 그린거죠. 후세 연구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사자에 타고 있는 발가벗은 어린이의 얼굴은 루벤스가 직접 그린 부분이라고 하네요.  


위의 말씀드린 열한장의 시리즈 중의 하나인 "Triumph of Catholic Faith"입니다. 교회가 모든 다른 것에 대해서 승리한 걸 의미한다고 해요. 위의 그림에서 애를 12명 주렁주렁 나은 여인은 '자선'을 상징했고, 마찬가지로 수레위의 여인은 '신념(Faith)'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모든 다른 지식에 우선한다고 보셔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아요. 다른 지식은 '이단'은 아니고 철학, 과학 등을 의미하는게... 아이러니하죠. 수염난 남자가 '과학'을 상징합니다. 이 남자가 들고 있는게 아스트롤라베(Astrolabe) 에요. 당시 천문 관측을 하던 기구지요. 그 옆에 머리가 반쯤 벗겨진 사람은 철학을 의미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얼굴을 그린거라고 해요. 그 뒤에는... 황당하게도 '시인'입니다. 얼굴만 보이는데, 월계관을 하고 있지요. 계관시인--;;;과 화가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나봐요. 종교와 시와 툭탁거릴 꺼리가 있나요? 그 다음에 끌려오는 사람은 여인인데, '자연'을 의미합니다. 잘은 보이지 않지만 가슴이 여러개 달려 있다고 하네요. 수레 위에서 파란 수도사복을 입고, 십자가를 들고 있는 천사(랍니다-_-)는 예수님의 신념을 바로 세우고 지탱하며, 수레 뒤에 날고 있는 천사가 들고 있는 횃불은 신념의 승리를 밝히고 있답니다.


무언가 페르시아 분위기가 나타나는 대리석 탁자. 자세한 설명은 읽지 못했네요.


네명의 에반게리온 전도사 (Four Evangelists). 여기서 네명의 전도사란 'New Testament(신약성경)'를 저술한 예수님의 네명의 제자 Matthew, Mark, Luke, John을 나타냅니다. 우리식으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지요. Matthew는 사람, Mark는 사자, Luke는 소, John은 독수리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위에서도 보았지만 양쪽에 도리아 양식의 기둥이 있는데요, 이것은 바로크 시대 극장에서 흔히 보이는 구조라고 합니다. 배우들은 왼쪽으로 들어와 오른쪽으로 퇴장하는데 이 그림은 위 네 전도사가 왼쪽에서 들어오는 듯 그려져 있습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전도사가 John인데, 그의 상징인 독수리가 발톱으로 낚아챌 듯 날고 있습니다. 그 옆에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있는 전도사가 Matthew, 금빛옷을 입고 있는 Mark. 그 뒤로 사자가 한마리 있죠. 마지막에 뒤에 소 뿔이 조금 보이는 가장 왼쪽 전도사가 Luke입니다. 중세시대 4명의 전도사 이름은 아이들이 침대로 가기전에 평안을 비는 주문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대충 이런 식이죠. 

Matthew, Mark, Luke and John,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시여)

Bless the bed that I lie on. (제가 누울 잠자리에 은총을 내리소서)


17세기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제작자는 잘 모르겠네요. 

갤러리 1/2를 나가는 문입니다. 문 하나하나도 개성이 있습니다. 다른 그림도 많이 있지만, 1시간만 남은 상태에서 제대로 구경하기는 정말 어려워서 휙휙 둘러보기만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이 미술관을 구경할 때는 거의 하루를 잡아야 할 거 같네요.


무언가가 비싸보이는 중세시대 장신구.


이 방은 후기 고딕/르네상스 예술품을 모아 둔 곳입니다. 벽의 장식이 앞서와 많이 다르지요?


작품 하나하나 찍고, 읽어볼 시간도 없이.. 내가 여기 왔구나--라는 식으로 넘어갑니다. 워낙 흥미가 없는 시대였기에. 


르네상스와 플로렌스 시대의 예술품을 모아둔 갤러리입니다. 역시 눈에 띄는 작가의 작품이 없으니.. 바로 지나갑니다. 


아직도... 봐야할 갤러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Lettuccio. 침상, 평상, 긴의자 등을 가리키는 말 같습니다. 중세시대 귀족들이 즐겨쓰던 낮잠용 침대라고 하네요. 가급적 화려하게 만드는게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귀족 양반들의 돈지랄이란 참. 이 의자는 1514년 플로렌스의 명가 메디치 가문과 스트로찌(Strozzi)가문의 자제들의 결혼을 축하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호두나무로 제작되었는데 세공솜씨도 정말 훌륭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나저나 저 위에 접시는 어떤 것들인지 모르겠네요.



이제 겨우 갤러리 6,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입니다. 


정말 관심이 있는 작가들이 없으니 패스합니다.-_-;; 


살바토르 로사, 나폴리와 로마를 중심으로 17세기에 활동하던 화가의 자화상으로 해석되는 그림입니다. 암흑시대라고 하지만 미술관을 돌아다니다보면 이렇게 한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이 있기 마련입니다. 전쟁을 그린 그림을 주로 그렸다고 하는데... 유럽/미국 다른 박물관에서 이 화가의 그림을 두어번 본 듯한데 기억은 나지 않네요. 


Francesco del cairo, 역시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화가입니다. 뭔가 어벙한 여인네의 얼굴이 독특하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어두운 배경과 얼굴과 가슴을 비추는 하얀 빛이 극명히 대조되어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유대여인은 잔혹하게 칼로 Holofernes의 얼굴을 찌른 상태입니다. Holofernes는 바빌론의 장군이름이라고 하네요. 즉 적장을 유혹해서 죽인 이스라엘판 논개네요--;;


갤러리 8, 이탈리아의 바로크 예술. 화려해 보이는 방이네요.


블루 마돈나. 한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입니다. [링크]를 누르면 좀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Carlo Dolci의 그림입니다. 17세기 플로렌스를 대표하는 화가중에 한명입니다. 말이 필요없이 마돈나의 고고하고 온화하며, 어딘가 슬픔이 담긴 표정을 너무 잘 잡은 그림이에요. 실제로 존 링링 부부가 가장 아낀 그림이라고 하네요. 저에게도, 이 미술관 초반 9개 갤러리에서 가장 인상깊은 그림을 하나 고르라고 하면, 이 그림을 택하겠습니다. 


Pietro da Cortona의 그림. Hagar and the angel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르네상스의 그림은 이런 거지요. 저 그림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이를 가진 몸종 하갈을 쫓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성서를 아시는 분은 잘아시는 이야기입니다만, 성서의 이야기를 조금 각색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아이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세계 역사에 남을 가장 나이 많은 불임부부였죠. 당시 유목사회는 아들이 없으면 부족 중에 지혜로운 자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풍습이 있었기에 아마도 부족 중에 세력이 강한 이들은 "우리 아들을 후계자로..~" 이러면서 치열한 로비를 했을거라 짐작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를 거부했죠. 부족에서 신의 말씀을 듣는 제사장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만이 댈수 있는 핑계로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어." 듣는 입장에선 기가 막히겠지만 신의 말씀이 그렇다는 데 어쩔 수 있나요? 하지만 유력자들 간에 불만은 확산되었겠고 후계자 다툼도 있었겠지요. 결국 이러다 쿠테타라도 일어나는 게 아닌가 걱정한 아브람은 아내 사라의 종이었던 '하갈'을 첩으로 들여 아이를 가지기로 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가 85세였다는데, 신의 축복은 과연 대단한 것이었던지 하갈은 '이스마엘'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꾸란과 성서, 그리고 다양한 기록들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하죠. 예를 들어, 아브람이 제물로 바치려던 아들이 누구인가? 라는 것입니다. 꾸란에서는 이스마엘, 바이블에서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고 하죠. 어느 쪽이든 인간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은 대체로 사악한 신이 그런짓을 하는데 이런 점을 봐서 구약의 야훼는 신약의 신과 절대로 동급으로 보기 어렵죠. 뭐 어쨌든 여기서 종교적인 내용을 시시콜콜 따질 건 아니니  그 이야기는 접어두고, 하여간 사라는 하갈에게 질투를 품게 됩니다. 뭐 자기는 아이를 못가졌는데 몸종이 떡 하니 가져버렸으니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저 여자가 문제였어." 라는 쑥덕거림도 들렸겠지요. 그리고 몸종인 하갈을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바이블에는 이 장면을, 하갈이 아들을 낳고 방자해져서 주인인 사라를 멸시해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고하자 '네 몸종이니 맘대로 하세요.' 라고 했다는데... 당시 노예제에서는 주인이 노예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웃기는 일이지요. 사라 입장에서는 이스마엘만 남기고 하갈을 죽이고 싶었지만 남편의 아이를 가진 여자니 주위의 눈을 봐서 함부로 죽이지 못했다는 게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후에 사라의 나이 90세에 이삭이 태어납니다. 뭐 기적은 항시 있는 일이니 믿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아들이 태어났으니, 사라에게 장자인 이스마엘이 눈의 가시가 된 거야 당연지사. 자신의 세력을 이용하여 하갈을 내쫓는데 성공합니다. 역시 바이블에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고 희롱하였다.. 그래서 사라가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쫓을 명분을 얻었다고 되어 있었는데, 뭐... 이것은 사도 바울의 견해에 불과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이스마엘과 이삭이 함께 놀았다! 정도로 기술되어 있거든요. 뭐 그 히브리 본문도 워낙 여러판이 있고 이말 저말이 달라서.-_-;;; 어쨌든 두 아들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부족에서 사라의 세력과 유대를 굳건히 하기 위해 이스마엘을 내쫓는데 동의합니다. 하나님이 그리 말씀하셨다는 명분으로요. 바이블에는 아브람에게 "네 재산은 이삭이 물려받을 거야. 그리고 이스마엘은 네가 쫓아내도 수많은 자손들을 낳게 다 안배가 되어 있으니 너는 걱정할 거 없어."라고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꼬드겼다고  예언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뭐 천하에 못된 아비이긴 하지만 당시 부족국가제에서 있던 일을 현대 관점으로 비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 건국때 동명왕-유리왕-백제의 시조 온조의 예를 들어보아도 그렇습니다. 


어쨌든, 부족의 후계자가 나타나고 무사히 젖을 떼자 (당시 아이들은 그 전에 많이 죽었습니다. 영아사망률이 높은 시기여서, 어느 정도 나이가 차기 전에는 이름도 안주고 키우던 시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젓을 뗄 정도까지면 어느 정도 살아갈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겠지요.) 사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냈고 아브라함은 사라 세력의 지지가 필수적이었기에 이를 묵인합니다. 낙타하고 양식이나 좀 줘서 쫓아냈으면 하는 게 아르라함의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사라는 그것조차 안된다고 하고 약간의 빵과 물만 주어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냅니다. 그리고 그 앞에 천사가 나타나 예언합니다. 네 자손들에게 넘치도록 석유를 내려줄 것이다.예 어쨌든, 저 장면은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 앞에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아랍 12부족의 시조가 될것이다 라고 예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별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순간이 이슬람, 유대교가 나뉘게 된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이런 비인간적인 이야기를 미화하고 있으니 제가 중세그림에 대해 별로 흥이 안나는 것도 당연하지요. 바로크 시대 미술작품 이야기는 이만하기로 하고, 다음에는 제가 방문한날 링링 미술관에서 열렸던 특별 전시회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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