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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이때가 오전 9시 쯤이었을 거에요. 아침 식사거리 케이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습니다. 역시 아침은 케이크죠!


사실, 원래부터 아침을 케이크로 먹을 계획은 아니었어요. 호텔 조식은 신청 안했고, 긴자 백화점 식품관에서 문 닫기전 타임세일 할 때 도시락을 사서 아침을 먹자! 라는 완벽한 계획을 잡아두었었죠. 근데 사람이 계획대로만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예정에 없이 케이크를 사버렸고, 그럼 먹어야죠. 그래서 이날의 아침 메뉴는 필립 콘티치니의 케이크였답니다.  


긴자 식스 지하 2층, 필립 콘티치니 매장입니다. 


필립 콘티치니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디저트 쉐프로 일하다 2009년 꿈의 디저트(La Patisserie des Reves paris)라는 이름의 샵을 오픈했습니다. 하지만 2013년 회사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나오게 되었고, 현재는 디저트 레시피를 유료(?)제공하기만 할 뿐인 관계라고 합니다. 이후 그는 2017년 4월 파리와 도쿄에 새롭게 자신의 이름을 딴 Philippe Conticini Gâteaux d'émotions라는 새로운 디저트 샵을 오픈하지요. 감동의 케이크라는 의미라고 해요. 현재 도쿄 신주쿠 NoNewMan에는 꿈의 디저트 샵이 있고, 긴자 식스에는 필립 콘티치니의 샵이 들어와 있습니다. 옛 가게와 새로운 가게가 한 도시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도쿄의 디저트 시장이 얼마나 거대한지 말해주고 있네요. 


지난 2017년 10월 신라호텔에서 필립 콘티치니(Philippe Conticini Gâteaux d'émotions)를 초청했습니다. 그때 몇몇 케이크를 먹어보고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어요. 더구나 가격은 왜 그리도 비싼지. 


위 사진의 케이크는 Comme Un Fraisier, 콤 엉 프레지에라는 이름이었는데, 이 케이크를 먹으면서 굉장히 혼란스러웠거든요. 딸기 맛이 별로인 것도 맘에 안들었지만 크림(Creme Patissiere)을 제대로 만든게 맞나? "마스터가 만든 케이크가 아니라 마스터의 레시피를 보고 연습한 케이크 아냐?"라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였으니까요. 


필립 콘티치니 신라호텔 버전의 슈인데요, 아니. 일단 비싼 재료 쓰는 걸로 소문난 파티셰가 한국에 와서는 국산, 뉴질랜드산 버터를 쓴다는 것부터 말이 안되지 않나요? 


이 때의 아픈 기억 때문에 이번 도쿄 여행에서 필립 콘티치니를 방문할지 말지 망설였는데, 긴자 식스 백화점이 마음에 들어 자주 들리다 보니, 지하에 있는 그의 매장이 싫어도 눈에 띄더라구요. 덕분에 두 번이나 방문해 버렸네요. 


자! 그래도 여긴 필립 콘티치니의 본진이니까 뭔가 다르겠죠. 두근두근하며 첫번째 케이크를 꺼내봅니다.


Noisette Chocolate. 헤이즐넛 초콜렛 케이크입니다. 그래요. 아침에는 이렇게 견과류를 먹어줘야하는 겁니다. 초콜렛 무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무스 안에서는 기분 좋게 씹히는 층-아마도 씹는 촉감을 만들어주기 위해 헤이즐넛 프랄린을 넣어준게 아닐까 짐작되네요.-이 들어있었습니다. 뭔가 신맛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확실하진 않구요. 먹을 때 실망스러워서 단면 사진도 안찍고 기록도 안해서 기억이 불확실 하네요. 기억 나는 건 패스트리 도우부터 무스까지 굉장히 섬세한 케이크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술 수준이 높은 건 알겠는데 왜 만든 케이크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씹는 견과류 + 쇼콜라 조합은 결국 크런치 초콜렛 계열의 디저트로 저는 분류하는 데, 이 계열의 최고봉인 피에르 에르메의 Plaisirs Sucres처럼 확 느껴지는 게 없었네요. 


참고로 이 케이크 값은 현재 환율로 7,000원이 좀 안됩니다. 크기가 작긴 했지만 생각보다 저렴하더군요. 신라호텔에서 팔아먹을 때는 대부분 12,000 ~ 14,000원 했으면서 말이죠. 허허. 재료도 싼 거 썼으면서. 


첫번째에 실망했지만 굴하지 않고 두번째 케이크를 꺼냅니다. '바닐라 패션' 이것도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케이크에요. 표면이 참 섬세하군요. 


바닐라와 코코넛이 들어간 무스, 그리고 내부에는 패션 후르츠 퓌레가 얇게 들어있습니다. 그 밑에는 견과류와 깨 등이 들어간 비스킷이 있고, 마지막으로 도우가 있습니다. 하아... 난해하군요. 바닐라 무스와 퓌레 존재감이 또렷하지 않은데 내부에 비스킷, 그 밑에 크러스트가 있어서 베이스 역할을 해주는 도우의 양은 너무 많아요. 밸런스가 맞지 않다는 거죠. 그래도 위의 헤이즐넛 쇼콜라에 비하면 그마나 좋았는데 먹고 나면 인상이 희미해져버립니다. 이런 게 필립 콩티치니의 특징일까요? 


신라호텔 이벤트 이야기를 자꾸 꺼내는 건 이 글 취지에 맞진 않지만 섬세함의 차이를 비교해 보시죠. 2017년 10월, 신라호텔에서 판매한 필립 콩티치니의 케이크입니다. 집에 가져오다가 뭉게진 건 그렇다치고 일본과 비교해서 마무리 수준이 많이 차이납니다. 필립 콩티치니의 레시피가 섬세해서 구현이 어려워서 그렇겠지만 이렇게 거지같이 만든 케이크를 비싼 가격을 받고 팔아먹지 않았으면 합니다. 보고있나 신라호텔


세번 째 아침식사 케이크 입니다. 시트론 타르트입니다. 이건 가져 오면서 부서져 버려서 아쉬웠습니다. 시트론이 들어간 디저트를 좋아하는 편이라 이름을 보자마자 집어왔는데 위의 둘과 달리 이건 만족스럽네요. 타르트 위에 올려진 견과류 베이스의 단맛과 시트론의 신맛이 잘 조화를 이룹니다. 


가장 기대했던 타르트 타탱. 보는 즉시 "이건 사야해!"하면서 샀는데 한 입 먹고 나서 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사과의 당도가 약하군요. 뭐지? 하고 레시피를 보다가 놀라버렸네요. 레몬 즙, 바닐라빈, 버터로 소스를 만들어 사과를 절이는데 상큼한 맛을 더 우선하는 것 같고, 버터, 설탕 양이 월등히 적습니다. 카라멜로 단맛을 보충해 주긴 하지만 사과향을 살리고 단맛을 입히려는 노력은 최소화 하는군요.  이런 맛을 필립 콩티치니는 고급스럽다 생각하는 듯 하네요. 실제로 일본 보그(VOGUE)에서 긴자 식스의 샵을 소개할 때 문구 중에, "달지 않은 품위있는 맛, 은은한 사과향"이라고 그의 사과 디저트를 소개하고 있더군요. 전 디저트를 먹으면서 품위 따윈 생각하진 않는 사람이라 참으로 난해하더군요. 생각보다 가격이 그리 높지 않은 건 환영할만 한 일이지만, 이 사람의 가게를 또 가게 될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라고 말하고, 긴자 식스를 다음 날 또 가는 바람에 다시 들려버린 필립 콩티치니입니다. 뭐 온김에 소문이 자자한 보르디에 버터를 사용한 '르 피낭시에 보르디에'를 구경했습니다. 사고 싶었지만 너무 비쌌기 때문에 일반 사이즈로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사이즈의 피낭시에는 보르디에 버터가 아닌 다른 버터를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쇼콜라 버전 피낭시에도 팝니다. 하나같이 좋은 재료를 때려붓듯이 사용해 만든 것들이죠. 문득 켄즈 카페 도쿄의 쇼콜라와 이 쇼콜라와 어느 쪽이 더 좋을지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켄즈 카페는 갈 시간이 없어서, 그리고 필립 콩티치니는 비용이 만만찮을 듯 해서 포기했습니다. 


딸기 피스타치오 밀페유. 색감이 예뻐서 한번 쯤 먹어보고 싶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네요. 역시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케이크가 맘에 들었으면 이것도 확 질렀을지 모르는데 모험을 하기에는 케이크에서 느낀 실망이 너무 컸거든요. 


필립 콘티치니 디저트 바. 사실 굳이 이걸 먹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다리가 아파서 좀 쉬어가고 싶다는 동행분의 말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리가 여기더군요. 뭐 어쩔 수가 없죠. 이번 도쿄 여행 중에 먹으면서 돈이 아까운 곳이 두 곳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여기였다고 미리 말씀드릴게요. 


필립 콘티치니는 1994년, 파리 미슐랭 레스토랑에 베린(Verrine)을 소개해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셰프가 정성들여 만든, 유리잔에 들어간 디저트가 저건데요.... 보는 순간 '저게 파르페와 뭐가 다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걸로 유명해 졌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냥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최초로 파르페를 디저트로 내 놓은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안들더군요. 프랑스 사람들은 파르페에 무지해서 그냥 저게 신선하고 새롭게 보였던 걸까요? 디저트의 내용물을 시각적으로 다 즐길 수 있도록 유리잔에 수직으로 배열한 참신한 발상... 아 그게 파르페잖아요!


필립 콘티치니의 디저트 바 메뉴에도 아예 베린 파르페(Verrines Parfait)라고 써 있다구요!!!!! 누가 저게 뭐가 다르고 새로운 건지 설명 좀 해주면 좋겠네요. 


파르페 하나에 가격은 20,000원이 넘어갑니다. 뭐 한국도 파르페 요즘 만원쯤 하나요? 긴자에서 먹는거니 2만원이면 안 비싸다고 할 수도 있지만, 도쿄 디저트는 오히려 한국보다 싼 느낌이어서 더 비싸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생크림이나 딸기 모두 최고품을 써서 만들었다면 요소 하나하나를 먹으며 감탄했을지도 모르는데 섬세하긴 한데 감탄스러운 요소는 단 하나도 없었어요. 


맛이 없지는 않았어요. 없지는 않은 데 뭔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도 없었습니다. 케이크와 마찬가지로 섬세히 쌓아올린 건 알겠는데 그게 뭘 위해서인지 알 수 없어요. 위대한 예술 작품과 같은 건데, 제가 예술을 몰라서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지도 모르죠. 


설명하기도 귀찮은데 필립 콘티치니가 일본에 잘 어울리는 과자를 목표로 개발했다는 '쿠랏쿠네'입니다. 이름 자체가 일본 이름이에요. 하나에 3,000원 정도하는 비싼 과자인데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크런치 류의 디저트입니다. 바삭하는 식감과 초컬릿의 맛. 나쁘지 않았는데 좀 비싸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 가격을 내고 꼭 이걸 먹어야한다고 보기에는 도쿄에는 초컬렛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너무 많으니까요.


위의 사진은 또 다른 날, 아침식사로 먹은 필립 콩티치니의 피낭시에.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게 이 피낭시에 세트입니다. 헤이즐넛, 쇼콜라, 아몬드, 바닐라 였던가? 아몬드가 두 개 였던가 기억이 잘 안나네요. 이건 추천 품목입니다. 물론 다음에 가지 않을테니 전 먹을 기회가 없겠지만요. 


편식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필립 콩티치니의 피낭시에와 히데미 스기노의 피낭시에, 다쿠아즈를 함께 먹었습니다. 제가 아침식사로 케이크만 먹지 않았다는 훌륭한 증거죠. 사람은 케이크로만 살 수 없고 빵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겁니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고요. 


이번 여행에서 에쉬레 버터 하우스 (Echire Maison du beurre), 필립 콩티치니, 히데미 스기노 세 샵의 마들렌, 피낭시에를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셋 다 모두 개성적이고 훌륭한 맛을 보여주었습니다. 먹은 순서대로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먹은 건 에쉬레의 피낭시에였습니다. 좋은 와인을 맛보는 것처럼 버터의 향이 점차 치고 올라오는 좋은 피니시를 보여주더군요. 에쉬레와 비교한다면 저는 콘티치니가 더 맘에 들더군요. 케이크에서는 힘을 뺀 것처럼 보였지만, 피낭시에에서는 좋은 풍미를 보여주더군요. 가격은 셋 다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히데미 스기노의 신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이 단순한 과자에서 맛을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쌓아올릴 수 있는 건지. 


필립 콘티치니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기승전 히데미 스기노가 되어버렸네요.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이었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아직 일정 상 써야할 가게와 장소가 너무 많이 남아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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