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바르셀로나 --> 그라나다. 


침대차를 타고, 쿨쿨 깊이 깊이 잠이 듭니다. 침대차에는 도둑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건 10시간 이상을 '앉아서' 와야하는 좌석 자리이야기고 4인 1실로 비교적 편안하게 올 수 있는 침대자리에는 도둑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물론 그만큼 비싸지요.^^)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안되는 법, 저는 제 여행가방 전부를 쇠사슬에 꿰고 침대와 엮은 다음 자물쇠로 잠가버렸습니다. 이 쇠사슬은 스위스, 로마, 파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명의 동생분들로부터 얻은 것인데 (여행하다보면 그런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지요.), 애석하게도 유럽 --> 미국 --> 한국으로 올 때, 미국에 전화번호를 놔두고 왔기 때문에 지금은 연락할 방법이 없네요. 


그래서 안심하고 잠을 푹 자고 일어나보니, 창밖으로 스페인 남부의 건조한 기후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완만한 언덕, 황량함, 밀밭, 올리브 나무들... 그리고 저 멀리엔 5월임에도 높은 곳에는 눈이 녹지 않는다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있습니다. 최고봉인 물아센 산이 3,481m라니 눈이 남아있을만 하군요. 위 사진들에서 그 때 제가 느꼈던 '황량함'을 느낄 수 있으시련가요?

시에라 네바다 산맥, 어쩐지 '시에라' 때문에 여성적 이미지로 다가왔는데, 첫인상은 한국의 산과는 달리 '거절'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산들입니다. 어딜가나 산이 지천이어서 산과 산맥이 높이 이외에는 잘 구분되지 않는 우리네와는 달리, 스페인의 산맥은 펼처진 평원을 갑자기 막아서는 담벼락 같은 느낌이네요. '넘어오지 마!'라고 경고하는 듯 해요. 


그라나다 역에 도착했습니다. 인구는 대략 25만 명의 소도시 답게 역도 소박하군요. 배가 고파서 주변에 아침부터 여는 빵집에서 크로아상을 하나 입에 물고 가방을 끌고 (매는 가방 하나, 여행용 가방 하나) 역을 나섭니다. 정말, 유럽의 길은 매끈하지 않고 돌로 만들어진 길들 뿐이어서, 가방을 끌고 왔다/갔다 하려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제가 가려는 Guest House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역에서 좀 걸어야 합니다. 영어를 아는 분이 거의 없는 스페인 남부라, 손짓, 발짓으로 열심히 설명을 하니 전부 Flag... 뭐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뭔 소리래? 하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좀 더 걸어갔더니 상당히 큰 깃발이 이렇게 나오더군요. 스페인 국기인가요? 그리고 이 다음부터가 그라나다(Granada)의 중심지인 그랑비아(Gran Via) 거리입니다. 그라나다의 주요 버스 노선이 대개 이곳을 지나친다고 하네요.


길은 좁지만 번화가 답게 좋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거리 자체는 무척 깨끗해요. 유럽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도 자동차와 마찬가지 대접을 받아서 차도에서 거뜬히 탈 수 있습니다. 차만 타면 모든 걸 만능으로 아는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참 부러운 광경의 하나에요. 


제가 하룻밤 묵으려는 곳은 Mochi Guest House라는 곳입니다. Mochi 라는 이름은 일본스럽지요? 일본인분이 정착해서 시작한 게스트하우스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 일본분은 뵈지 않고 자녀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민박은 가급적 가지 않는 주의라 호스텔을 이용하는 데, 밥을 주지 않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게다가 운 좋으면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도 있습니다. 도난의 문제가 좀 있기는 하지만 조심하면 상관없고요. 특히, 이 게스트하우스는 평점이 정말 좋았고, 특히 알함브라의 밤 풍경과 시에라 네바다의 눈 덮인 광경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해서 무척 기대하며 선택한 곳입니다. 


위치도 훌륭합니다. 그라나다의 알바이신(Albiacin) 지구에 위치해 있는데, 그 자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보호 지정된 곳입니다. 서울 충무로 한옥마을처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오랫동안 스페인의 이슬람 신도들이 살아와서 그들의 문화와 건축 양식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해요. 

하지만, 그 만큼 골목골목이 복잡한 곳이기도 합니다. 들어가는 골목만 100여개가 넘는다고 해요. 따라서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다른 분들의 여행 경험담에도 위치가 찾기 어렵다는 말이 제법 있기에 철저하게 대비를 합니다. 버스 정류장이 표시된 지도를 보고 '아! 저기서 (니콜라스 광장 - Plaza Nicolas) 버스를 내리면 되겠구나.'하고 감을 잡고 디지털 카메라로 그 부분을 접사한 다음에 '훗훗 완벽해.'라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버스에 올라탑니다만... 세상에 완벽이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알바이신 지구로 버스를 타고 올라갑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한 바퀴를 돌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요. 버스 노선대로 버스가 움직이는 것 같지 않고 몇 정거장을 생략하고 우회하는 것 같습니다. 버스 기사분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한 마디도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짐은 무겁고 당황하는 마음은 깊어집니다. 그리고 쓸데 없이 시간은 흘러갑니다. 


답답한 마음에 비슷해 보이는 위치에서 버스를 내립니다. 내리자마자 이런 이슬람풍의 건물이 들어오네요. 순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코스로 가면 이 건물을 보지 못했을 거잖아요? 유럽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저 기묘한 창문 양식과 지붕을 보세요. 가우디가 뾰쬭한 첨탑을 여럿 세운 집을 지은게 이슬람 건축의 영향이라고 들었는데, 과연 그런 듯 하네요. 

예. 이런 것도 여행의 묘미지요. 긍정적 마인드.... 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제 가방 하나는 여행가방. 바퀴로 돌돌돌 움직이는 건데...알바이신은 오래된 지역이라, 도로 바닥이 다 저렇게 우툴두툴합니다. 즉, 여행가방 끌고 움직이기엔 최악의 지역이라는 의미지요. 감사하는 마음은 30초 만에 허공에 눈 녹듯 사라지고 절로 욕이 튀어나옵니다. 


그래도 제가 내린 곳이 전망 하나는 좋은 곳이었습니다. 알바이신 지구를 넘어 저 멀리 알함브라 궁전과, 


그라나다 시가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꽃들이 이쁘기도 하지요. 콧노래라도 불러볼까요?


결국은 참지 못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았습니다. 이번에는 알함브라가 보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내렸습니다. 하도 헤매기만 하다보니 알함브라라도 봐야 기운이 좀 날 것 같아서요. 요새라고 할 만큼 가파른 언덕 위에서 위압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네요. 저걸 보러온건데.. 

힘은 좀 났지만, 여기는 원래 지도에 나온 게스트하우스와는 전혀 동떨어진 곳이어서,  다시 고생길이 시작됩니다. 두 어시간, 알바이신 지구를 작정하고 헤매다보니...  아아. 로밍이 자유로운 아이폰을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요. 인터넷이라도 되면 잠시 지도를 다시 볼텐데, 전화라도 되면 걸어볼텐데... 어째 공중전화도 잘 안보이더군요. 


헤매고 헤맨 결과, 이렇게 전망이 좋은 포인트까지 찾아냈네요. 와아! 


그리고 문득 뒤를 돌아보니! 어딘가 오래되어 보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 속에 번뜩 기억이 난 거에요. 성 니콜라스 교회라는 지명이. 그리고 거기서 바라보는 알함브라 궁전의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도. 


아아! 전 바보였어요. 게스트 하우스를 물어볼 게 아니라, 부근의 유명한 지명을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한국으로쳐도 서울 시민이면 게스트하우스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명동 성당은 대부분 알고 있잖아요? 

여기가 원래라면, 버스에서 내려야 했던 성 니콜라스 교회의 앞 마당, 니콜라스 광장이었던 거에요. 허허... 저 두 남성분은 무슨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건지는 이 순간에는 관심이 없고, 어젯 밤에 인터넷에서 니콜라스 교회에서 Mochi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어느 친절하신 분이 약도를 그려뒀더군요.) 이제 방향을 잡고 길을 향할 수 있었습니다. 


한참을 좁은 골목을 헤매다 보면 이런 자그마한 간판이 나옵니다. Mochi. 쳇. 애드벌룬이라도 하나 띄워놓으면 어디 덧나냔 말이에요. 


들어가면 이런 분위기입니다. 유럽의 주택답게 꽃이 꼭 있고, 스페인 답게 안마당이 있어요. 먼저온 여행객들이 지도와 프로그램을 보며 수다를 떨고 있더군요. 좋을 때에요. 전 땀으로 목욕을 했는데.

버스가 역에서 안스고 이상한 곳을 돌더라고 말씀드렸더니, 아! 오늘부터 무슨 축제이고 축제기간에는 코스를 변경해서 움직인다지 뭐에요. 기사 아저씨는 저에게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거에요. 어쩌겠어요. 다 제가 멍청해서인걸. 그래도 저만 바보였던건 아니었는지 주인께서 한 말씀. 어쩐지 "오늘 온다던 손님이 몇명 도착하지 않았어요." 에효... 


계단을 따라 방을 올라갑니다. 가방이 무거운데 하필 꼭대기 방을 주네요. 다들 2~3일씩 묵고 간데요. 허.. 뭐 그리 볼게 많담. 전 1박 2일 일정인데 (원래라면, 전 이미 알함브라를 보고 있어야겠지만^^)  


방에서 내려다본 정원의 모습입니다. 아담하죠? 나무 몇그루가 있어서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방으로 들어가니 사제 침대 스러운 2층침대들이 저를 맞이 합니다. 다들 여행나가고 없네요. 물어보니 이 침대들은 주인 아저씨가 직접 톱질하고 못을 밖아서 만든 것이래요. 그래서 매우 튼튼하고 편하답니다. 후딱 옷을 벗고 샤워를 마칩니다. 아아... 상쾌해라.


양말을 빨면서 샤워를 마친 후, 옥상을 잠깐 둘러봅니다. 건너편에 쉴 의자도 보이네요.


어디를 가나 화분으로 집을 장식하는 건 유럽의 기본이자 매너인 것 같습니다. 아담하고 작은 프라스틱 의자지만, 이렇게 보니 꽃의 효과 때문인지 매우 호사스러워 보이네요. 게다가 이 의자에 앉으면!


바로 이런 전망이 보입니다. 멀리 눈이 남아있는 시에라 네바다의 주봉과 그를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있는 알함브라의 모습이. 가장 전망이 좋은 게스트하우스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네요. 오전 내내 헤맨 설움(?)이 조금 누그러지는 걸 느끼며 짐을 정리해 두고, 이제 관광을 나서기로 결정합니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