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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ibio Hotel의 좋은 점은 바로 호텔 1층에 슈퍼가 있을 뿐만 아니라, 2층은 레스토랑으로도 운영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동네의 대표적인 비지니스 건물인 셈입니다. 하몽을 만드는 최고의 돼지고기에 눈이 멀었던 저는 호텔 주인에게 부탁합니다. 최고의 돼지고기를 직접 요리(?)해 먹어보고 싶으니 레스토랑을 좀 빌려달라고요. 스페인 사람 친절합니다. 그거 먹으러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레스토랑 주방을 빌려주겠다고 합니다. 물론 영업을 시작하는 9시 전까지는 비워줘야 한다는 단서를 달아서요. 소금이나 조리도구는 마음 껏 써도 좋다고 합니다. 딱 한가지 빼놓고는 정말 엄청난 행운이었던거죠. (그 딱 한가지는 김치와 밥이 없었다는 겁니다. 햇밭과 꼬마김치라도 있었다면...)   


호텔 주인집 따님의 안내로 정육점까지 가서 고기를 사게 되었습니다. 과연 돼지고기의 왕국 답게 다양한 부위를 구분해서 팔고 있네요.신선한 내장도 있네요. 스페인 사람들은 우리처럼 돼지고기를 다양하게 분류해서 먹습니다. 가장 귀하게 여기는 부위는 Secreto라 불리는 항정살이고 삼겹살은 panceta 혹은 panxeta라고 부릅니다. Secreto와 Panceta를 둘 다 사려고 했는데, Secreto는 없다고 하네요. 레스토랑에서 고급 메뉴에 많이 쓰이니 다 도시로 팔려갔나봅니다. 상대적으로 Panceta는 좀 홀대받는 느낌이지만 한국인에겐 삽겹살이 최고죠. 아쉽지만 항정살은 몇 번이나 먹어봤으니 여기서는 삼겹살 panceta만 맛보기로 합니다. 사실 혼자 먹을 거라 많이, 다양하게 먹기도 곤란하고요.


육가공품의 최 선진국 답게 다양한 햄과 소시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몽이 없는 건 좀 의외군요. 바로 하몽의 성지에 가까이 있는 정육점이. 그보다 아래를 보니 정말 별별 걸 다 파는 잡화점이네요.


Panceta라고 하니까, 최고급품이 있지. 라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기를 썰어줍니다. 궁금하던 게 하나 더 있는데 하몽을 만드는 돼지들은 도살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도토리를 먹고 충분히 살을 찌운 다음이죠. 지금은 아직 도토리가 여물기 전, 과연 지금 여기서 파는 돼지들은 냉동일까요? 아니면.. 스페인어를 한 마디도 모르니 뭐라 묻기가 어려웠죠. 어쨌든 베요타(Bellota)라는 말은 아니까 돼지를 가리키며 Iberico bellota라고 물으니 맞다고 합니다. 생긴 거 보세요. 정말 장난 아닌 고급품입니다.


김치가 아쉬워졌습니다만, 동양인이라곤 일년에 세비야 나가서나 본다는 이동네에서 그런 게 있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1층 슈퍼에 와서 양파와 마늘을 좀 사서 아쉬운 대로 함께 먹기로 합니다. 야채도 지금은 너무 더워서 잘 없더군요. 게다가 쌈야채가 이런 데 있을리가 없지요. 사진의 자주색 진한 옷을 입은 아가씨가 호텔오너이자 레스토랑 주방장이자 이 슈퍼 주인의 따님입니다. 무척 잘 웃고 친절한 아가씨였습니다.


그럼 하몽을 만드는 돼지의 삼겹살은 어떤지 좀 보시죠. 최상급 Iberico Bellota의 삼겹살입니다. 보시다시피 살은 거의 없고, 거의 지방입니다. 지방층이 두껍기도 하죠. 껍질은 우리나라 돼지보다 좀 얇아보이는데 지방이 워낙 두꺼워서 그럴까요?


냉동 아닙니다. 냉장 삼겹살. 살코기가 거의 없는 지방 덩어리. 사고 보니 좀 부담스럽네요. 김치! 김치가 필요한데...


새하얀 지방의 향연입니다.


먹기 전에 해본 "과연 지방이 체온으로 잘 녹나!" 라는 실험입니다. 도토리를 먹고 자란 돼지는 지방의 50%이상이 올레인 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일반 돼지보다도 훨씬 녹는 점이 낮아 체온으로 지방이 녹아내리기 때문에 많이 먹어도 혈관이 막히거나 할 위험은 없다고 하네요. 그런데.. 정말 녹아내립니다.


어느새 녹아내려 손은 기름 덩이가 돼어 버렸습니다. 끝내준다..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돼지의 지방은 대부분이 불포화성이어서 포화성 지방보다 융점이 낮습니다. 그리고 먹이도 융점에 영향을 미칩니다. 가령 동물성 먹이를 많이 먹고 자란 돼지들은 40도 이상에서 녹고, 식물성 먹이를 먹고 자란 돼지들은 낮은 온도에서 녹습니다. 특히 도토리를 먹고 자란 돼지들의 지방 융점은 올레인산 때문인지 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데 http://sietebellotas.com/ 라는 사이트에서는 베요타 돼지의 경우, 화씨 75도, 섭씨로 따지면 24도 정도가 녹는점이라고 하는군요. 사람의 체온보다 돼지의 체온이 좀 더 높기 때문에 (38~42도) 돼지의 지방은 평소에는 반 액체 상태로 있다가 죽이고 냉장하면 우리가 보는 것처럼 밀도가 높은 고체 상태로 변합니다. 완전 액체 상태로 있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식물처럼 100% 불포화 지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물이니 만큼 포화 지방도 포함되어 있죠.


제가 빌린 레스토랑 주방입니다. 보시다시피 후드도 큼지막하게 있네요. 이런 시설에서 뭔가 요리해 보기는 처음입니다. 아니 뭐 요리라고 해봐야 그냥 삼겹살을 굽기만 할 뿐입니다만.


레스토랑 풍경은 이렇습니다. 작고 소박한 지방 레스토랑입니다. 원래라면 주인에게 요리를 부탁해야 겠지만 저는 제가 그냥 구워서 순수한 맛을 보고 싶었습니다. 숯불이 있다면... 했는데, 숯불로는 베요타 돼지의 삼겹살을 구워먹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 불가능한지는 나중에.


슈퍼에서 사온 마늘과 양파를 손질했습니다. 쌈장이라도 있으면 했지만 이런 시골에서 너무 많은 걸 바래선 안되죠.


손질한 돼지고기와,


주인이 찍어먹으라고 준 지중해산 천일염입니다.


굽기시작합니다!


금방 익어버립니다. 역시 레스토랑에서 쓰는 가스불은 집에서 보다 화력이 좋네요.


다 익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흥건하죠? 녹는점이 워낙 낮다보니 불로 익히면 지방이 익지 않고 상당부분이 녹아서 기름으로 변합니다. 대부분 올레인산 성분은 기름으로 변해 녹아내린다는 말씀이죠. 혹시나 해서 맛을 보았는데 저 기름이 아주 맛있습니다. 전혀 돼지기름 같지 않고 산뜻합니다. 사실상 진짜 진미가 저 기름인 셈인데 그냥 버려야 하다니 아까워 죽겠군요. 김치와 밥이 있어서 볶음밥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지요. 삼겹살을 구워 먹는 건 주요 성분인 올레인산을 다 날려 버리기 때문에 베요타 돼지를 먹는 데 최선의 요리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몽이 최고의 평가를 받는 것도 굽는 것보다 저 지방을 손실 없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기름은 맛있지만, 살코기만으로 따지면 '판타스틱'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무척 맛있는 돼지라는 건 분명합니다. 끊임없이 먹어제꼈으니까요.


또 굽습니다.


다 구워지면 먹습니다! 기름 부분은 정말 녹아내립니다. 미처 덜 녹아내린 올레인 산의 효과인가요?


아직 고기는 많이 남았습니다.


클로즈업 사진입니다. 조금 탓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 다음부터는... 예. 고기가 너무 많아서 (거기다 김치는 없고) 좀 힘겹게 먹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거라도 최고의 환경에서 먹지 않으면 그 맛이 반감된다는 데 그런 교훈을 유럽에서 많이 느꼈습니다. 꿈에 그렸던 이베리코 베요타 돼지의 삼겹살을 먹어봤고 맛은 무척 좋았습니다만, 구워낸 돼지 살보다는 돼지 기름이 더 맛있었다는 게 특이했습니다. 한국에서 먹는다면 굽고 나서 꼭 볶음밥을 만들어 먹어야겠군요.

위의 사진은 좀 탓습니다만, 타지 않은 미디움 정도 상태로 굽는 것이 훨씬 맛있었습니다. (한국 삼겹살처럼 팍팍 익힐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 그렇게 구우면, 다 녹지않고 기름으로 변해가는 상태의 올레인 산이 입에서 마저 녹기때문에 그야말로 깜짝놀랄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기생충요? 건강하게 자란 돼지니 없다고 생각해야죠. (헉!)

배가 부르군요. 오늘은 이제 목욕하고 좀 쉰다음에 내일은 하부고로 가서 하몽 탐험을 해 보겠습니다. 여기 오느라 마음 고생, 몸 고생을 너무 해서 오늘은 푹 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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