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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는 제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케이크샵이 열 개 있었습니다. 뭐 더 있는데 추리고 추렸죠.


1. 스위츠 가든 유지아지키(Yuji Ajiki)

2. 파티스리 료코

3. 아테스웨이 (à tes souhaits!)

4. 히데미 스기노

5. 파티스리 파리 세베이유 (patisserie Paris S'eveille)

6. 켄즈 카페 도쿄

7. 오봉뷰탕 (au bon vieux temps)

8. 사다하루 아오키

9. 필립 마르콜리니

10. 키르훼봉


이렇게 10개 입니다.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긴자에서 주로 노는 바람에 히데미 스기노를 비롯한 넷만 다녀올 수 있었네요. 못가본 가게는 다음을 기약하고, 가본 곳 중 가장 감탄스러웠던 곳 히데미 스기노를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그저 감동스러웠던 "무스 케이크의 끝판왕!"이랄까요?


긴자에서 약간 떨어진 교바시역에서 내립니다. 12월인데 은행나무가 아직 단풍을 자랑하고 있네요. 도쿄 날씨는 확실히 한국에 비하면 온화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완전 오피스 영역, 케이크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지역입니다.  


교바시역 바로 앞에 있는 국립필름센터, 영화팬들에게는 상당히 유명한 곳이랍니다. 오래된 일본 영화도 틀어준다는 데, 일본어도 모르니 저야 관심없지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케이크 먹고 배부른 사람이 되겠습니다. 


사진 건너편에 테라스에 뭔가 풀, 나무들이 있는 빌딩은 도쿄가든스퀘어 빌딩입니다. 한달에 한 번, 핸드메이드 상품을 판매하는 '핸드메이드 마르쉐'를 하는 곳으로도 알려져있죠. 


히데미 스기노 도착.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픈해 있었지만 평일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매장 유리 정면에 80년대 만들던 결혼식 케이크 같은 게 있는데요, 왜 이런 게 있는거죠? 설마 대표작?


유리 창 안쪽으로 보이는 인테리어는 평범합니다. 동네 흔한 가게 같은 느낌이네요.


히데미 스기노 케이크 샵에서 느낀점 둘.


하나! 줄 선 사람이 없다고 좋아할 수 없습니다. 주변 회사들 '손님 접대용'으로 엄청 많이 팔립니다. 평일 문열자마자 오피스룩을 입은 사람들이 박스 단위로 10개, 20개씩 사가서 문 연지 20분도 안되서 Sold-out되는 케이크가 생기더군요. 다행히, 히데미 스기노에서는 '매장에서만 먹고 갈 수 있는 케이크'가 있어서 그걸 먹으면 됩니다.


둘! 일본 손님들은 케이크를 먹는데 정말 정성을 들입니다. 섬세한 동작으로 고급 스테이크 먹는 것처럼 나이프로 썰고 조금씩 맛을 음미하더군요. 대가의 작품을 맛보는 느낌으로 집중해서 먹는달까요? 이런 분위기라면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래 쪽에 있는 케이크가 앙브로아즈 (ambroisie)입니다. 


1991년 파티셰 월드컵 (Coupe du Monde de la Patisserie)에서 일본팀 (당시 히데미 스기노 파티셰가 팀 대표였다고 함)이 우승했을 때 작품이자 이 샵의 대표 케이크로,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불사의 음료 암브로시아를 이름으로 사용했네요. 케이크 단면 구조가 멋진데 사진 촬영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전 케이크 사진도 찍은 적이 없는데 (촬영금지라니까요?) 지나가는 고양이가 찍었는지 휴대폰 안에 이상하게 사진이 남아있더군요. 판사님. 이 사진은 고양이가 찍은 사진입니다. 


케이크 내의 대략적 구조는 이렇습니다. 대충 그린거니 틀린다고 뭐라지 마세요. 층층이 다채로운 요소들이 들어있습니다. 외부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자신의 케이크가 망가지는 게 싫어서라고 하던데 이해가 갑니다. 무스케이크의 대부분 들어가는 제누아즈나 젤라틴의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는 스타일이어서 들고가면 바로 출렁거리다 무너진다고 하네요. 


크게보면 쇼콜라 + 피스타치오 + 라즈베리의 조합인데... 입에 넣고 맛을 보는 순간 탄성이 터졌습니다. 단언컨데 "제가 먹어본 케이크 중 가장 완벽한 밸런스를 가진 케이크"였습니다. 라즈베리, 프람보아즈, 혹은 카시스의 새콤한 맛으로 쇼콜라의 씁쓸함, 달콤함, 지방의 맛을 잡아주는 계열의 케이크를 지금까지 안먹어 본 것도 아닌데 이 케이크가 보여주는 조화는 차원이 다르네요. 


Component: 다크 쇼콜라, 라즈베리, 피스타치오 등

Type: 무스 케이크

Creamy or Richness: Strong. 쇼콜라의 진함(rich)이 강함

Acidic: Normal. 다크 쇼콜라에 라즈베리가 강한 맛이겠지만 다크 쇼콜라의 맛을 보완한다는 역할에 충실해서 산미가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음

Earthy: None, 쇼콜라를 먹을 때 가끔 느껴지는 짙은 테루아 맛은 느껴지지 않음  

Floral: None, 꽃향기를 느낄 수 없음

Alcohol: 전반적으로 알콜이 사용된 것으로 보이나 (쇼콜라 스폰지에 알콜 풍미가 느껴졌음), 향미가 강하지 않았음.

Melt: Normal, 젤라틴 사용량을 최소화해서 일반 무스에 비해서 빨리 녹는다는 느낌은 없었음

Balance: Excellent. 전체 적인 조화가 완벽에 가까움

Taste: Excellent


역시나 대표작 중 하나라는 '에베레스트(エヴェレスト)'입니다. 암브로아지는 '신의 음료'였고, '에베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은근히 이름에 자신의 케이크에 대한 자부심을 표시하는 듯 하네요.


기억에 의존하는 거라... 틀릴 수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에베레스트는 케이크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의 히데미 스기노 버전입니다. 딸기 대신 라즈베리와 구운 아몬드 조각이 샹티크림 위에 올라가있죠. 아래 층에 있는 건 화이트 치즈 무스(무슨 치즈인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와 산미를 느낄 수 있는 베리 계열의 잼입니다. 양쪽 사이에는 맛의 완충지대로 작용하는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스폰지 케이크가 있죠. 맨 하단은 비스킷(Biscuit joconde)이 맛을 받쳐줍니다. 치즈무스와 생크림의 조화가 멋집니다. 버터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스폰지 케이크에서는 알콜의 맛이 약하게 느껴졌습니다. 


Component: 라즈베리, 샹티크림, 치즈 무스, 붉은 과일(라즈베리, 카시스, 커런트) 잼 등

Type: 무스 케이크

Creamy or Richness: Normal. 치즈맛이 강하지 않음. 산뜻함

Acidic: Normal. 크림맛을 방해하지 않은 정도, 치즈의 맛과 샹티크림의 맛을 잘 잡아줌

Earthy: N/A, 쇼콜라가 들어있지 않으므로 관계없음

Floral: None, 꽃향기를 느낄 수 없음

Alcohol: 확신하기 어려움

Melt: Well. 생크림과 치즈 조합이고 전체적으로 진하지 않으나, 입에서 부드럽게 녹음

Balance: Great. 전체 적인 조화가 훌륭함

Taste: Very Good


세번째 케이크입니다. 디플로맷 (diplomat, ディプロマット). 제과 하시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커스터드크림과 생크림(혹은 샹티크림)의 조합으로 만들어져서 디플로맷이라는 이름을 썻나봅니다. 그리고 아래 커스터드 크림에는 술에 절인 과일이 박혀잇고, 크림층 아래에도 럼이 들어간 시럽이 들어있습니다. 이거... 먹기 힘든 케이크네요. 일단 알콜향이 먹어본 것 중에 강하고, 먹는 사람이 시럽을 어떤 비율로 커스터드, 샹티크림과 함께 먹느냐, 혹은 건과일은 먹느냐 안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사진 각도가 안 좋아서, 하나 더. 생크림 위에 럼으로 조린 말린 청포도, 자몽, 자두, 오렌지가 올려져 있습니다. 다른 케이크와 달리 내부와 외부 차이가 없어서 단면도는 생략합니다.


Component: 커스터드, 말린 과일, 럼 시럽

Type: 무스라기 보다는 디플로맷 크림 케이크?

Creamy or Richness: Normal. 커스터드 맛이 아주 강하지는 않음. 계란맛은 상당히 느껴짐

Acidic: Little. 건과일이 들어가 있지만 술맛이 나서 신맛은 잘 느낄 수 없었음

Earthy: N/A, 쇼콜라가 들어있지 않으므로 관계없음

Floral: None, 칼바도스, 럼 등을 많이 써서 사람에 따라서는 알콜에서 꽃향기를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못느낌.

Alcohol: 강함

Melt: Normal 

Balance: Weird. 그렇게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Taste: Not Bad. 일단 술 성분이 너무 많아서 먹기가 좀 괴로움. 술많이 먹는 사람은 다르게 느낄지 모르겠음.  


멀찍이서 고양이가 찍은 사진밖에 없네요. 커피가 들어간 아라비쿠(Arabique, アラビック)입니다. 사실 제가 가장 감탄하고 맘에 들었던 케이크이기도 합니다. 역시 초콜렛이 진하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커피맛이 중심이 되는 케이크입니다. 


단면입니다. 맨 아래 쇼콜라 제누아즈에는 깔루아같은 리큐르가 들어간 거 같습니다. 쇼콜라 무스 위주인데 전체적으로 쇼콜라에 아라비카 커피맛이 은은히 배어 있습니다. 그위에 옅은 커스타드 크림 무스, 그리고 진하게 추출한 커피 젤리가 전반적인 맛을 잡아줍니다. 전체적으로 쇼콜라 글라사주에도 커피맛이 추가된 듯 합니다. 커스타드 크림으로 커피와 멋지게 조화를 이룬 케이크입니다. 


Component: 다크 쇼콜라, 커피, 바닐라무스

Type: 무스 케이크

Creamy or Richness: Strong. 쇼콜라와 커피무스의 강한 조화

Acidic: Little. 다크 쇼콜라의 맛을 커피의 산미로 보완. 멋지다. 

Earthy: None, 커피. 쇼콜라를 먹을 때 가끔 느껴지는 짙은 테루아 맛은 느껴지지 않음  (솔직히 이거 느끼는 사람은 괴물들임, 난 못느낌)

Floral: None, 꽃향기를 느낄 수 없음

Alcohol: 깔루아 등이 사용됨

Melt: Normal

Balance: Excellent. 전체 적인 조화가 완벽에 가까움

Taste: Excellent


라무르 (Larme, ラルム). 히데미 스기노의 몽블랑 케이크. 프랑스어로 라무르는 '눈물'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니 밤케이크 이름을 뭐 그렇게 지었답니까? 뭐 어쨌든 이름에 맞추기 위해 케이크 형태도 사각이나 원형이 아니라 약간 물방울 형태라고 하네요. 눈물샘에서 떨어지는 눈물방울 형태라는데... 넘어가겠습니다.  (프렌치로는 라흠므에 가까운 발음이라고 하네요. 어디서 h가 싶어서 프랑스 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아서 봤더니 라~흠므 그렇게 발음합니다. 어려워요. 외국어란)


맨 위의 밤은 마롱글라쎄 정도의 당도는 아닙니다만 유사한 성격을 가집니다. 장식용으로 얇은 쇼콜라 플레이트가 같이 있고, 그 아래 진한 쇼콜라 크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 아래 농도가 다른 2개 층의 밤 무스 크림이 있습니다. 아래쪽이 더 농도가 짙고, 위층은 부드럽게 녹을 정도의 느낌입니다. 


Component: 밤조림, 밤크림, 쇼콜라크림

Type: 무스 케이크

Creamy or Richness: Normal. 마론크림이 마음에 들만큼 진하지는 않음

Acidic: Rarely. 산미를 느낄 요인이 없음

Earthy: None, 커피. 쇼콜라를 먹을 때 가끔 느껴지는 짙은 테루아 맛은 느껴지지 않음. 밤먹는다고 날리도 없고.

Floral: None, 꽃향기를 느낄 수 없음

Alcohol: 뭐가 사용된건 알겠는데 사용된 알콜은 잘 모르겠음.

Melt: Normal.

Balance: Not Bad. 밤 위주, 전체 적인 조화를 어떻게 설계했는지 이해가 어려웠음

Taste: Good


이제 먹어본 케이크 다섯개 중 마지막 하나입니다. 위 사진의 중간에 있는 딸기딸기해 보이는 케이크가 스보아(スーボワ)입니다. 위에 올라가는 과일들은 딸기, 라즈베리, 그리고 블랙커런트(=카시스)입니다. 


내부 구조는 이렇습니다. 카시스 무스와 바닐라 무스,  그리고 맨 아래는 비스퀴 조콩드, 비교적 간단한 구조입니다. 맛있는 케이크인데 히데미 스기노면 좀 더 놀라게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네요.


Component: 카시스 무스, 바닐라크림

Type: 무스 케이크

Creamy or Richness: Little. 바닐라 크림은 진하지 않음

Acidic: Strong. 카시스 과일의 산미

Earthy: None 없다니까

Floral: 카시스에서 뭔가 꽃향기를 맞는 용자가 있을지 모르겠음

Alcohol: 뭐가 사용된건 알겠는데 사용된 알콜은 잘 모르겠음.

Melt: Normal.

Balance: Good. 바닐라 크림과 카시스 무스 조화. 기발하지 않지만 이해하기 쉬움

Taste: Good


다음에 가면 아라빗쿠, 앙브로지아 둘은 꼭 먹을 것 같고, 에베레스트는 고민할거고 나머지 둘 보다는 안먹어 본 걸 먹어볼 듯 하네요. 


케이크와는 별도로 아침 간식으로 먹으려고 피낭시에를 테이크아웃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구움과자를 팔고 있더군요. 다만 구운과자에서도 다양한 리큐르를 쓰고 있기 때문에 술 향기가 상당히 강합니다. 


미니 커피 파운드 케이크. 파운드 케이크 자체에서 커피맛이 느껴지며, 견과류가 들어갔고, 밤크림이 올려져 있습니다. 셋 밖에 안먹어 보았지만, 이중 가장 맛있게 먹었던 과자입니다. 

 

위 접시 셋 중 왼쪽 아래 것은 필립 콩티치니의 피낭시에 입니다. 오른쪽 둘은 히데미 스기노의 구움과자인데, 이름을 적은 메모지를 잊어버려서 무슨 맛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위의 피낭시에는 알콜향이 강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둘 다 맛있는 건 물론이구요.


이전 이야기에서 썼듯이 피낭시에가 필립 콩티치니의 먹어본 제품 중에서는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히데미 스기노에 비하면 많이 부족합니다. 히데미 스기노 쪽이 밸런스 잘잡힌 맛을 추구했다면, 필립 콩티치니는 그저 버터를 때려부운 맛 정도 되는 걸로 느껴졌습니다. 


"맛있는데 필립은 좀 단순하네."  히데미 스기노를 먹고, 다음으로 필립 콩티치니를 먹은 제 솔직한 소감입니다. 


너무 찬양(?)일변도의 경험이었는데, 다음에 일본에 갔을 때도 똑같은 느낌인지는 두고봐야겠네요. 어쨌든 지금은 히데미 스기노가 제 인생 케이크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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