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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을 대충 본 다음에 바로 앞에 커다란 건물로 이동합니다. Resnick Pavilion. 건물은 큰 데 아직 계획이 잡히지 않았던지, 혹은 창고로 주로 쓰고 있는지 건물의 일부에서만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현대 미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하와이 깃털 공예(Royal Hawaiian Featherwork)라는 이름의, 날로 먹는 현대 미술이 아니라 노동집약적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더라구요. 


아름답게 치장하고 싶다. 권력이 있는데 어찌 서민들과 똑같은 차림을 할쏘냐? 라는 지배자의 심리는 태평양 한가운데 아름다운 섬이라고 다를리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하와이는 주변에 교역할 만한 국가도 없고 아름다운 보석도 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치장을 했을까요? 권력이 있으면 아랫것들을 족치면 뭔가 답이 나오는 법. 마침 하와이에는 화려한 색감의 깃털을 지닌 새들이 제법 많았던 거에요. 


"저 깃털을 모아서 장식을 하면 되겠네."


뭐 어느 천재가 낸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수렵민족의 경우 깃털로 지위를 나타내거나 하는 건 원래 흔한 일이었으니까요. 하와이의 새들에게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지만요. 


어떤 깃털이 사용되었을까요? 왼쪽의 빨갛고 검은 깃털을 가진 새가 하와이에서 가장 흔한 새 을위이(`I`iwi), 오른쪽이 노란색 깃털을 얻어내는 아키아폴라우(`Akiapōlā`au) 입니다. 뭐 이것만 있는 게 아니고 제법 여러가지 새들의 깃털을 모아서 장식품을 만들거나 심지어는 옷도 만들었습니다. 아후울라(Ahu 'ula)라는 이름의 개노가다 노동 집약적인 깃털 공예의 탄생이었죠.


예전에는 많았지만 지금은 멸종된 것으로 보이는 오아후 아키알로아(Oahu 'akialoa)라는 새입니다. 18세기 이 그림을 그린 요하네스(Johannes Geradus Keulemans)가 방문했을 때는 비교적 흔했다고 하더군요. 


하와이 마모(Hawaii Mamo)라는 새입니다. 역시 너무 잡아먹고 이들이 사는 숲을 파인애플 농장으로 바꿔 버리는 통에 멸종한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멸종한 위위(Hawaiʻi ʻōʻō)라는 새입니다. 새들이 그리 크지 않죠. 이들에게서 깃털을 빼내서 옷이나 모자를 만들려면 몇 만마리를 잡아야 했는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와이 원주민들은 새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새를 사로잡은 다음 깃털만 빼고 놔주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들의 깃털을 장식용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유럽 상인들이 떼거리로 잡기 시작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고, 파인애플 농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서식지 마저 줄어서 싸그리 멸종해버렸다고 합니다. 


마히올레(Mahiole)라는 이름의 깃털 모자입니다. 참고로 제가 대충 한글로 써둔 것지만 하와이안 오리지널 발음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 모자는 Kalani'Opu'u라는 18세기 말 하와이 추장이 쓰던 것이라고 하네요. 도대체 저 모자 하나를 짜려면 새 몇마리를 잡아야 될까요? 견적도 나오지 않습니다. 모자위의 노란 깃털은 위위나 마모라는 새의 깃털인데 한 마리에서 10개 정도의 노란 깃털이 나왔다고 하네요. 적어도 수백마리 이상이라는거죠.


모자만 만들었느냐? 이런 추울 때 쓰면 좋을 것 같은 망토도 있습니다. 뭐 하와이에서 추울일은 별로 없었을 듯 하지만요. 


하지만 역시 끝판왕은 아훌~라(Ahu 'ula)라고 불리는 이런 왕들이 쓰는 망토입니다. 아훌라는 후에 깃털 공예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죠. 이정도 노란색, 붉은 색 깃털을 얻으려면 거의 20만 마리 분의 새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마치 고대 그리스 스타일 같은 투구입니다.


전사들이 쓰는 투구와 망토를 쓴 백인 그림입니다. 뭐 별로 용맹해 보이지는 않네요. 


검은색 깃털로 짠 망토도 있습니다.


역시 왕들이 쓰던 다른 망토. 


왕녀들이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위의 백인 남성이 상당히 얼빠진(안어울리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비해서 이쪽은 좀 어색해 하는 (모델이 되는게 어색했겠죠) 기색은 있지만 피부톤에 잘 어울리는군요. 


주로 왕족 여성들이 썼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런 망토들입니다. 색이 참 곱죠. 백년은 넘은 것들인데 잘 보존이 되어 있다는게 놀랍네요. 새 깃털이 저렇게 오래가는 물건이었나요? 무늬도 나름 다채롭고 다양합니다. 


또다른 전사들이 쓰는 헬멧. 실제 전쟁할 때는 방어력이 없었을테니 이런 걸 쓰지 않았겠죠. 의식이나 축제, 제사 때 썼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외 깃털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들입니다.


이 망토는 무지 멋지긴 했는데 하와이 공예품은 아니라고 합니다. 깃털부터 다르죠? 1930년대 공작새 등의 깃털로 만든 것으로 19세기 영국을 방문하는 하와이 왕에게 선물로 전달된 것이라고 하네요. 한눈에도 아주 달라보이고, 색감, 무늬도 훨씬 더 멋집니다. 뭐 공예 난이도면에서는 좀 더 쉬웠을 수 있는게 새의 깃털로만 짠게 아니라 울과 실크 등이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생전 처음 보는 독특한 하와이 공예에 감탄하면서 다음 볼거리를 찾으러 갑니다. 이거... LACMA를 끝내려면 꽤 오래걸릴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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